1단계 금융개혁은 부실금융기관 정리와 적기시정조치제 도입 등 하드웨어 중심, 2단계는 감독제도 선진화에 초점 실물 부문 자 금제공 기능 충실히 하지 못하고, 동북아 금융허브 조성 여전히 구호에 머물러
외환위기 이전 정부는 금융자유화와 겸업화, 그리고 금융개방으로 요약되는 정책 추진을 통해 낙후된 우리나라 금융의 발전을 도모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 추진에도 금융의 선별 및 감시 기능은 뚜렷하게 개선되지 못했고, 금융의 후진성이 외환위기의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게 됐다.
구조조정과 규제 강화 등 제도개혁과 함께 자유화·겸업화·개방 기조 강화 1997년 외환위기는 금융정책 및 감독의 전반적인 개혁을 촉진하는 계기가 됐다. 특히 부실금융기관 정리 등 금융구조조정, 금융산업의 건전성과 금융제도의 안정성 제고를 위한 제도개혁 등이 추진됐다.
외환위기 이후 제1단계 개혁에서는 공적자금의 조성을 통한 부실금융기관 정리, 적기시정조치제의 도입, 금융 부문을 통한 기업구조조정 등 하드웨어 중심의 구조조정이 추진됐다. 이어진 제2단계 개혁에서는 감독제도의 선진화에 초점을 둔 소프트웨어 중심의 개혁이 추진됐다. 여신건전성 제고 및 자산운용의 선진화, 불공정거래에 대한 규제 강화, 회계 및 공시제도의 강화, 지배구조 개선과 같은 조치가 이뤄졌다. 외환 부문의 건전성 제고를 위한 제도 정비도 이뤄졌다.
이렇게 구조조정과 규제 강화 등 제도개혁이 진전됐지만 이전 정부로부터 이어져온 자유화, 겸업화, 개방의 정책기조는 강화됐다. 정부의 금융 부문 개입이 초래한 금융기능 저하에 대한 반성으로 정부의 금융 부문에 대한 직접 통제는 전반적으로 약화됐다. 겸업화 측면에서는 기존의 자회사 방식의 겸업에서 지주회사 방식을 통한 금융그룹이 출현했다. 정부 소유의 금융지주회사 출현은 이후에 민간 금융그룹 형성을 촉진하는 계기가 됐다. IMF의 요구로 가속화된 금융개방에 따라 외국계 금융회사의 국내 진출이 확대됐고 외국인의 포트폴리오 투자도 크게 늘어났다. 아울러 금융구조조정의 결과 금융산업의 집중 및 금융회사의 대형화도 촉진됐다. 금융회사의 경영관행에서도 변화가 뚜렷해졌다. 금융회사들은 부실위험을 사전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위험관리시스템의 구축, 위험관리조직의 강화 등 위험관리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나갔다.
참여정부에 들어와서도 개방과 자율에 기초한 정책기조는 유지됐다. 특히 이 시기에 추진한 동북아 금융허브 전략은 개방과 자율이 뒷받침돼야 성공할 수 있는 정책이었다. 그러나 참여정부는 동시에 금융시스템의 공정성과 투명성 제고를 목적으로 하는 규제는 강화했다. 금산분리의 강화, 금융보험계열사 의결권 제한조치의 강화, 증권집단소송제도의 도입 등이 그것이다.
양적 팽창과 질적 변화 겪은 한국 금융, 금융사 책임경영 기반 취약 등은 여전히 문제 이명박 정부는 금융시스템의 선진화를 통해 경제의 생산성을 촉진하는 동시에 금융이 산업으로서 부가가치 창출에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것으로 봤다. 이를 위해 보다 과감한 규제 완화를 통해 경쟁을 촉진하고자 했다. 금산분리 완화,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산업은행의 민영화 및 정책금융제도의 개혁 등을 추진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하면서 금융정책 방향은 금융경쟁력 강화에서 당면한 위기 극복과 금융시장 안정화로 변화했다. 이후 ‘공정사회 구현’이라는 새로운 국정과제의 추진에 발맞춰 금융소외자에 대한 지원 강화와 금융소비자 보호 등의 정책이 강조됐다.
박근혜 정부는 금융개혁을 4대 구조개혁의 하나로 삼고 핀테크 육성, 서민금융제도 강화, 성과연봉제 시행, 크라우드 펀딩제 도입 등을 추진했다. 박근혜 정부의 금융개혁은 금융시스템의 큰 틀을 변화시키는 개혁이라기보다는 금융기능 강화를 위한 실용적인 각론들의 집합이라고 볼 수 있다.
외환위기 이후 20년 동안 한국 금융은 양적·질적으로 큰 변화를 겪었다. 우선 양적으로 몇 가지 통계만 보자면 금융회사의 금융자산은 1998년 말 1,526조원에서 2016년 말 6,999조원으로 네 배 이상 증가했다. 주식시장(KOSPI) 시가총액은 1998년 말 138조원에서 2016년 말 1,308조원으로 약 10배 증가했다. 금융개방에 따라 외국계 금융회사의 국내 진출이 크게 늘어났고, 외국인의 국내증권 소유 비중도 크게 확대됐다.
금융기관의 건전성 측면에서도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나 부실여신비율은 외환위기 당시에 비해 확연히 개선됐다. 금융의 다양성도 확대됐다. 가계의 여유자금 운용에서 예금 비중은 낮아지고 보험·연금 및 금융투자상품이 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됐다.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비결제성예금 비중은 1998년 말 53.0%에서 2016년 말 38.7%로 낮아진 반면 같은 기간 보험·연금은 18.9%에서 31.8%로, 증권·투자펀드는 9.1%에서 23.8%로 증가했다. 새로운 금융상품과 금융서비스 생산방식도 꾸준히 출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양적 팽창과 질적 변화에도 한국 금융은 아직 해결해야 할 많은 과제를 지니고 있다. 우선 실물 부문이 필요로 하는 자금을 제공하는 기능 측면에서 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지 못하다. 중소벤처기업이나 신용취약계층에 대한 자금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실정이다. 소득 하위 40% 계층의 과거 1년간 금융회사 대출 경험 비중으로 측정된 ‘금융 포용성’에서 우리나라는 13.2%로 미국(23.2%), 영국(22.3%) 등에 못 미치는 실정이다. 둘째, 금융회사가 자율적이고 책임 있는 경영을 할 수 있는 기반이 취약하다. 금융감독 당국의 재량적이고 권위적인 감독관행이 아직도 팽배해 있고, 금융회사의 지배구조 관련 개혁이 추진됐음에도 경영에 관한 내·외부 통제도 불충분하다. 셋째, 금융산업의 경쟁력 제고 및 동북아 금융허브 조성은 여전히 구호에 머무르고 있다. 넷째, 금융회사 영업의 쏠림현상과 이로 인한 잠재적 불안요소 혹은 불필요한 자원낭비 등 문제가 여전하다.
이러한 문제들 가운데 제도적 개선을 통해 나아질 수 있는 문제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한두 가지 제도가 도입된다고 단기간에 쉽게 해결되기는 어려운 문제들이다. 우리나라의 금융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는 제도 개혁에 못지않게 정책 당국, 금융회사의 경영자와 주주 등 이해당사자들이 금융관행, 문화 및 체질 개선을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