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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왜 지금 혁신성장인가?
이천종 세계일보 경제부 차장 2018년 01월호



지난 11월 28일 청와대 영빈관. 문재인 대통령이 국무총리를 비롯한 당·정·청·위원회 인사 80여명과 ‘2017 대한민국 혁신성장 전략회의’를 개최했다. 새 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정부 핵심 인사들이 모여 ‘왜 지금 혁신성장인가?’라는 화두를 놓고 대화한 뜻깊은 자리였다는 평가다. 무엇보다 한국경제가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하려면 혁신주도형 경제구조로 체질을 바꿔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한다.


저성장과 양극화에 직면한 한국경제, 혁신적 결단이 절실

현 정부의 ‘혁신성장 전도사’를 자임하는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회의에서 혁신성장의 의미와 방향, 과제 등을 설명했다. 스토리텔링의 달인답게 감각적인 프레젠테이션으로 혁신을 ‘캥거루 출발법’에 빗대 소개했다.
캥거루 출발법은 단거리 육상 경기의 크라우치 스타트(crouch start)를 말한다. 모양새가 캥거루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1896년 미국의 토머스 버크가 이 자세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에는 스탠딩 스타트가 대세였다. 우스꽝스럽고 낯선 길을 택한 버크의 판단이 결국 옳았던 셈이다. 김 부총리는 “이런 게 혁신”이라고 설명했다.
저성장과 양극화라는 도전 과제에 직면한 한국경제는 지금 버크와 같은 혁신적 결단이 절실하다. 경제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꿔 가보지 않은 길에 첫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돌아보면 우리에게도 혁신의 DNA는 면면히 흐르고 있다. “이봐, 해봤어?”라던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도전정신,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비아냥을 무릅쓰고 반도체 투자를 이끈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의 뚝심은 혁신의 다른 이름이다. “여전히 배고프다”던 애플의 전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와 그 결이 다르지 않다. 1997년 외환위기를 극복한 원동력 중 하나도 혁신 벤처기업의 출현이었다. 혁신의 성공 경험을 간직하고 있기에 우리에게는 새로운 여정이 그리 험난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의 혁신성장은 ‘네 바퀴 성장론’의 한 축으로서 기능한다. 일자리 성장과 소득주도 성장, 공정경제와 맞물려 돌아갈 때 제대로 기능하도록 설계됐다. 이전 보수 정부의 정책 흐름과 궤를 달리하는 것이어서 시장에서는 ‘김동연표’ 혁신성장에 대한 기대와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김 부총리도 이를 의식해 기자간담회와 국회 답변 등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성과 있는 혁신을 강조하곤 한다. 김 부총리는 12월 11일 판교 제2테크노밸리 기업지원허브에서 확대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며 “혁신성장은 거창한 담론보다 작더라도 국민 손에 잡히는 가시적인 성과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혁신성장과 과거 성장전략의 차이점을 가시적 성과 창출에 두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보텀업(bottom-up) 방식으로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는 뒷받침하는 역할을 하겠다는 게 그의 구상이다. 결국 이런 혁신성장의 성과물은 규제혁신과 일자리 창출로 나타날 것이다. 규제혁신은 타이밍과 속도가 관건이다.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가시적 성과를 내야 하는 대목이다. 일자리 창출은 사회적 대타협과 고용안정성 확보, 노사협력 모델 구축 등을 제대로 추진해야 이뤄낼 수 있다.


‘창업 생태계 가치’ 서울 24억달러, 실리콘밸리의 100분의 1에 불과
한국경제는 미래 먹거리의 부재로 신음하고 있다. 정보기술(IT) 강국 코리아의 시발점이 된 시분할 교환기(TDX), 세계 최초로 개발한 코드분할 다중접속(CDMA)과 64M D램 등 과거 한국경제의 먹거리 역할을 톡톡히 했던 과학기술혁신이 요즘에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현재 전 세계 215개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의 비상장 스타트업) 가운데 국내 벤처기업은 쿠팡과 옐로모바일 등 두 곳뿐이다. 창업환경을 지표화한 ‘창업 생태계 가치’는 서울이 24억달러로, 실리콘밸리(2,640억달러)의 100분의 1, 베이징(1,310억달러)의 50분의 1에 불과하다.
경쟁자인 중국은 우리를 무섭게 뒤쫓고 있다. 소프트웨어 기업만 놓고 보면 중국은 이미 우리를 추월했다. 국내에서 이제 막 인기를 누리는 카카오뱅크 바람은 중국에서는 몇 년 전 한 박자 빨리 유행했다. 대박의 주인공은 중국 최대 IT 기업으로 부상한 텐센트로 지난해 11월 기준 시가총액이 5,345억달러로 페이스북(5,194억달러)을 넘어서기도 했다. 알리바바는 세계 최대 규모의 온라인 유통 플랫폼으로 우뚝 섰고, 바이두는 인공지능에 해마다 이익 대비 15%의 공격적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전역에서 창업의 진원지인 ‘중창공간(衆創空間)’을 키워 ‘혁신’과 ‘시장’이라는 키워드가 만날 수 있는 플랫폼 구축에 매진하고 있다. 그 결과 공공기관을 제외하고도 121개의 신생 기업이 뉴욕증시와 나스닥에 상장된 반면 한국은 1개밖에 없는 실정이다.

인구가 130만명에 불과한 에스토니아는 세계경제포럼(WEF) 평가에서 창업활동이 가장 활발한 ‘핫스팟’ 1위로 뽑혔다. 매년 1만개가 넘는 기업이 새로 문을 열고, 이 중 200여개는 창의적 아이디어와 IT를 접목한 스타트업이다. 1991년 옛 소련에서 독립한 에스토니아가 26년 만에 강소국으로 도약한 비결을 혁신창업에서 찾을 수 있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경제성장률과 글로벌 혁신 순위가 동반하락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은 끓는 냄비 속 개구리 신세다. 이 같은 ‘불편한 동행’을 당장 끊지 못하면 우리의 미래는 잿빛으로 가득할 것이다. 김 부총리는 “과거 자본축적과 혁신이 이뤄지면서 경제가 성장했지만 최근 들어 이 같은 움직임이 역행하고 있는 것은 굉장히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사람·산업 등 세 가지 중요 부문에서 혁신이 이뤄지는 한편, 사회제도 혁신을 통해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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