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발전과 기업성장을 떠받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근면 성실하게 오래 일하는 인적자원’이다. 우리나라 근로자의 근로시간은 OECD 회원국 평균보다 연간 347시간 길고, 멕시코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길다. 그나마 2004년 주 5일 근무제를 시행한 이후 근로시간이 많이 줄어들어서 이 정도다. 2000년만 해도 근로시간은 연 2,512시간으로 멕시코 2,311시간보다 압도적으로 길었다. 우리가 오래 일하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서구 선진국이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200여년에 걸쳐 이룬 경제성장을 단 50년 만에 따라잡으려다 보니 오래 일할 수밖에 없었다. 오래 일하는 것이 국가에 대한 충성이고 회사에 대한 헌신이며, 개인 능력의 기준으로 작용했다. 덕분에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압축 경제성장이 가능했고, 세계 10위권의 무역대국이 됐다.
젊은 세대, 가장 중요한 직장선택 기준 ‘일 삶의 균형’ 연장근무는 지금까지 우리 경제를 지탱하는 공고한 신념이었지만 그 유효기간은 머지않은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이유는 경제적인 효과성 때문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내놓은 「근로시간 단축이 노동생산성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노동시간을 줄여 주 40시간 근무제를 도입한 사업체의 노동생산성이 2.1% 높다고 한다. 2016년 3월 대한상공회의소 의뢰로 컨설팅 회사 맥킨지가 펴낸 직장문화 보고서 역시 노동시간이 길어질수록 생산적 활동시간의 비중이 낮아진다는 결과를 보였다. 두 번째 이유는 사회문화적인 부작용 때문이다. 야근으로 점철되는 ‘연장근로사회’는 일과 삶의 균형(Work and Life Balance)을 이룰 수 없게 만든다. 밤늦게까지 일하는 근로자는 가정에 충실하기 어렵고, 개인생활을 포기해야 한다. 남성 근로자는 아이와 보낼 시간이 없으며 가사를 함께 부담할 수 없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아빠가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하루 6분으로 OECD 국가 중 최하위다. 여성 근로자는 일과 가정을 병행하기 어려운 나머지 경력을 포기하거나 결혼·출산을 포기하는 경우가 나타난다. 여성의 경제활동참여율은 59%로 역시 최하위권이다. 근로시간을 단축하지 않으면 저출산 흐름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며 인구절벽에 다다르는 시점은 더욱 빨라질 것이다. 세 번째 이유는 젊은 세대의 가치관 변화 때문이다. 대학내일 20대연구소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인생에서 가장 추구하는 가치로 젊은이들은 안정과 가족을 꼽았다. 안정이란 정서적 안정이 우선이며 경제적 안정은 최소한의 여건만 충족하면 된다고 답했다. 젊은 세대가 일과 삶의 균형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직장을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도 일과 삶의 균형이다. 이들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던 5060세대와는 전혀 다르게 ‘성공적인 미래보다 현재의 일상과 여유에 더 집중하겠다’고 생각하는 비중이 훨씬 높다. 시작은 대기업에서부터 이뤄지고 있다. 삼성전자가 2017년 여름부터 ‘주 52시간 시범운영’을 시작했고 LG전자는 주 40시간 근무제를 시범운영하면서 문제점을 보완한 후 확대·시행할 계획이다. 신세계의 경우 더 파격적으로 법정근로시간인 40시간보다 더 짧은 ‘주 35시간 근무제’를 시행한다고 선언했다. 신세계는 제도 시행을 앞두고 시간별 매출 추이 등을 분석해 매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고, 직원들의 생산성 향상 및 프로세스 효율화 등을 통해 근무시간 단축을 보완할 것이라고 밝혔다. 16개 계열사, 5만여명의 직원들이 당장 이 제도의 혜택을 볼 것이라 하니 ‘드디어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한 사회가 될 것인가’ 하는 희망도 갖게 된다. 하지만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가장 큰 우려는 근무시간 단축에 따른 비용부담을 감당할 능력이 없는 중소기업과 설비 활용 극대화를 중시하는 제조업 생산직 등에 대한 것이다. 하청 및 재하청 구조의 하부에 있는 중소기업은 장시간 근로에 의한 비용 효율화에 의존하고 있으므로 당장 근로시간을 단축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정규직 및 비정규직 사이의 불균형도 문제다. 비정규직 근로자의 경우 근무시간 단축이 당장 임금감소로 이어져 생계의 불안정을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근로시간 단축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격차를 더 크게 벌려놓을 가능성 때문에 정교한 정책시행과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열매 따려면 ‘생산성 높은 근무’라는 대가 지불해야 먼저 기업과 근로자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근로시간 단축의 성공 여부는 바로 8시간 근무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달려 있다. 직원들의 마인드가 변화해야 하고, 업무 집약도를 높여야 하며, 무엇보다 업무 프로세스 혁신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직원들이 인근 카페에 모여서 일을 한다거나 모텔에서 밤을 새며 일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 끝에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시스템의 변화 없이 근로시간 단축 도입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근로자들도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열매를 따려면 ‘생산성 높은 근무’라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LG전자가 개인시간 관리 시스템을 도입해 휴식시간 및 외출시간 등을 관리하는 것도 근무의 밀도를 높이기 위함이다. 시간만 단축하고 노동생산성은 그대로라면 기업뿐만 아니라 사회적 손실이다. 기업의 경영자들도 마지못해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시행할 필요가 있다. 지금 젊은 세대의 ‘일과 삶의 균형에 대한 욕구’는 매우 강하다. 좋은 인재를 회사에 끌어들이려면 스마트하게 근로시간을 단축할 필요가 있다. 또한 혁신을 통한 생산성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정부도 획일적인 적용이나 속도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인프라 구축에 힘써야 한다. 생산성본부나 능률협회 등의 기관이 특별팀을 꾸려 중소기업에 컨설팅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직무분석, 프로세스 혁신 등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작업을 병행하면서 근로시간을 줄여나가는 작업을 시행해야 한다. 임금체계의 변화 및 대·중소기업 간 공정거래 정착의 심판 역할도 잘 수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