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국민 삶의 질 개선을 위해 사람 중심 경제로의 정책 전환을 강조했다. 어떠한 측면에서 바라봐야 할까? 오래전부터 비욘드 GDP(Beyond GDP)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 GDP 중심 경제지표의 한계와 정책목표로서 ‘질적 성장’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사람 중심 경제’라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분배개선의 측면으로만 생각하는데 사실 그것보다는 더 확장해서 바라봐야 한다. 압축 경제성장에서 총량 중심의 경제적·물질적 산물을 늘리는 데 초점을 뒀다면 이제는 소득과 분배 개선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삶의 질과 만족도를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어려운 일이지만 의미 있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OECD의 ‘더 나은 삶의 지수(BLI)’에서 우리나라가 2012년 24위에서 지난해 29위로 떨어졌다. 공동체(38위), 일과 삶의 균형(35위) 등이 하위권이더라. 이러한 취약 영역에서의 개선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왜 그럴까’를 생각해보면 정부의 노력만으로 단기간에 확 바뀔 수 있는 부분들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정부가 총력을 기울여 일과 삶의 균형(Work and Life Balance) 같은 문제에 나서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경제성장과 ‘삶의 질’ 간에 괴리가 발생하는 이유는? 압축성장의 특징 중에 하나가 불균형적 성장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는 집중적으로 몇 가지 영역의 성과를 높이는 방향으로 진행돼오지 않았나. 그러다 보니 이러한 불균형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또 하나는 경제학에서 많이 이야기하는 이스털린의 역설(Easterlin Paradox; 미국 경제사학자 리처드 이스털린이 1974년 주장한 개념으로,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어 기본 욕구가 충족되면 소득이 증가해도 행복은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는 이론)이다. 한국도 그 단계에 접어든 것이 아닌가 한다.
지난해 3월 16일 한국삶의질학회와 통계청이 공동으로 ‘국민 삶의 질 종합지수’를 발표했는데 이 종합지수가 갖는 의미는 뭔가? 경제성장이 삶의 질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여기에 저출산, 사회갈등 심화 등과 같은 새로운 사회 문제의 등장으로 정책적 관심이 경제성장에서 ‘국민 삶의 질’ 제고로 전환됐다. 얼마나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삶의 질을 높일 것이냐에 대한 생각은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삶의 질이 중요하다는 데는 어느 정도 동의가 형성된 거다. 결국 삶의 질을 측정해 현재 우리 사회의 삶의 질이 어떤 수준인지를 다양하게 보여줄 수 있는 지표의 제공이 필요했고 그것이 바로 ‘국민 삶의 질 종합지수’다. 앞으로 이를 활용해 연구 및 정책에 반영하고 삶의 질에 대한 관심도 부각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발표 자료에 따르면 10년간 우리나라의 1인당 GDP는 29% 늘어났지만, 국민 삶의 질은 12% 개선되는 데 그쳤다. 삶의 질 지수에서 나오는 값들은 객관적인 것과 주관적인 것이 섞여 있다. 그러다 보니 체감과 다른 부분이 있다. 교육 영역의 경우 국민의 체감은 나쁘고 부정적이다. 그런데 결과는 좋게 나온다. 국제적으로도 어느 국가보다 성과가 좋았다. 경쟁이 전체적으로 성과를 높이는 데는 도움이 됐지만 개개인의 불만족은 높아진 거다. 사실 이런 부분들이 무엇이 삶의 질을 측정하는 좋은 기준이고 지표인지에 대한 논란을 가져올 수 있다. 그래서 그것을 보완할 만한 지표들이 무엇일지 계속 고민하고 있다.
‘국민 삶의 질 종합지수’, OECD 더 나은 삶의 지수(BLI), UN 세계행복보고서(WHR)는 어떻게 다른가? OECD의 BLI와 UN의 WHR은 국가 간 비교를 목적으로 작성된 복합지표로 국제비교가 가능한 제한된 핵심지표 위주로 구성된다. 반면 ‘국민 삶의 질 종합지수’는 한국의 특수성을 반영해 국민생활의 추이를 세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들었다. 예를 들면 OECD에는 가족이라는 영역이 없다. 가족은 사회적 관계나 커뮤니티 이런 것에 일부 들어 있는 수준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삶의 질’ 하면 꼭 들어가는 것이 가족이다. OECD에서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영역으로 구성돼 있지 않은 거다. 아시아권 국가들에서는 ‘가족’이 들어가는 경우가 훨씬 많은데 이것이 하나의 특징이다. 작성목적과 정보를 생산하는 방식이 달라 결과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삶의 질 향상은 과거 경제성장처럼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몇 년 전에 연구를 하면서 생각해본 것이, 일반적인 한국인의 삶은 일, 가족, 교육 세 가지 축으로 구성돼 있고 고도 성장기에는 꼭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 축이 잘 맞아떨어졌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 둘 깨지면서 흔들렸다. 경쟁적인 교육에 내몰리고 불안정한 장시간 노동에 지쳐가고 가족도 해체되고 있다. 이제는 이 세 축을 바탕으로 새로운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 자기 삶을 돌아보고 어떻게 해야 만족스러운 삶,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는지에 대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일이라는 것도 단순히 생산성이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아닌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빈곤계층도 더 신경 써야 할 것 같다. 과거엔 ‘부모가 가난해도 아이가 열심히 노력하면 어느 정도 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이 있고 실현 가능성도 높았는데 요즘에는 사회적 이동이 가로막혔다는 부정적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빈곤계층 자녀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사회적 이동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능력을 갖추게 도와주고 기회를 만들어줘야 한다. 특히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시혜’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는데, 아니다. ‘존중’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가장 기본이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조성이 물질적 지원 못지않게 중요하다.
끝으로 한 말씀 부탁드린다. 최근 들어 삶의 질이라고 하는 이슈에 대해 국민들의 관심이 아주 높아졌다. 다양한 맥락에서 삶의 질이 언급되고 있더라. 그런데 이렇게 폭발적인 관심을 받으며 올라갔다가 다시 관심이 떨어지면 어떡하나 걱정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체질을 바꾸듯 사회의 제도와 시스템이 변해야 삶의 질이 개선될 수 있다.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주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