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철강산업의 과잉설비 문제는 197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철강산업은 1974년 오일쇼크 이후 철강수요 급감으로 세계적인 과잉설비 문제에 봉착한 바 있으며, 1978년부터 OECD 철강위원회에서 주요 철강생산국을 중심으로 과잉설비 문제를 논의해오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세계경제가 출렁일 때마다 철강산업은 가장 먼저 보호주의 장벽을 쌓아올리곤 했다. 특히 신흥개도국이 철강산업에 대해 투자를 확대하면서 경쟁력이 약화된 미국 철강산업은 정부에 보호무역조치를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2001년 IT 버블붕괴에 따른 미국의 불경기 시기에도 철강산업은 수입산 철강을 규제하기 위해 세이프가드 조치라는 카드를 내밀었다.
1970년대부터 과잉설비···세계경제 출렁일 때마다 보호주의 취해온 철강산업 IT 버블붕괴 이후 중국의 경제성장이 본격화되면서 철강수요가 크게 증가하던 시기에는 철강산업의 과잉설비 문제가 크게 불거지지 않았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또다시 구조적인 과잉설비에 직면해 보호무역조치가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수입을 규제하기 위해 가장 빈번하게 활용되는 반덤핑·상계관세 조치가 철강제품에 집중되고, 미국의 중국산 철강제품에 대한 수입규제 조치가 지속돼왔다. 미국 철강산업의 보호무역 요구는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과 함께 급물살을 타게 됐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 철강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1962년에 제정된 무역확장법 232조(Section 232 of the Trade Expansion Act)를 적용, 지난해 4월 20일 이 조항에 근거해 조사를 개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232조는 수입산 제품이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할 경우 안보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어떤 형태로든 수입을 규제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이다. 232조 조사는 미국 상무부가 담당하며 270일 이내에 조사 결과를 대통령에게 보고하도록 규정돼 있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 당시에 조사를 40~50일 이내에 종료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결국 232조 조사는 대내외적 이유로 270일 조사 기한을 거의 채우고 나서야 그 결과가 대통령에게 전달됐다. 232조 조사가 시작되자마자 미국 국내뿐 아니라 철강제품 수출국들의 비판이 이어졌다. 자동차, 전자제품 등 철강제품 수요 산업들은 수입을 제한해 가격이 상승할 경우 가격 부담이 자신들에게 전가되고 결과적으로 미국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내적인 반대뿐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철강 수출국들이 보복조치를 언급하며 미국의 일방적인 보호조치를 비판했다. 이러한 반대에도 지난 1월 11일 상무부는 조사 결과를 대통령에게 전달했고 3월 8일에 대통령이 캐나다와 멕시코를 제외한 모든 수입국에 대해 25%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으로 결정을 내렸다. 캐나다와 멕시코를 제외한 이유는 현재 진행 중인 NAFTA 개정협상과 연계해 협상을 진행하기 위함이며, 이와 동시에 기타 수출국들에는 조치 면제를 두고 협상의 여지를 열어놓았다. 또한 상무부는 미국 내 이해관계자들로부터 232조 조치 대상품목 중 예외 요청을 받기로 했으며, 3월 23일 관세부과 이후에라도 품목 예외가 받아들여질 경우 추가적으로 품목을 제외하겠다고 발표했다.
韓, 25% 부과 대상국-한시적 면제-영구 면제 ‘원칙적 타결’까지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 직후 관세부과 시행 이전까지 우리나라를 포함한 주요 철강 수출국들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와 국가 면제를 두고 협상을 시도했다. 지난해부터 수출을 자율적으로 규제하겠다고 제안했던 호주가 가장 먼저 국가 면제 대상으로 언급됐다. 우리나라의 면제 협상은 캐나다, 멕시코와 유사하게 현재 진행 중인 한미 FTA 개정협상과 연계돼 진행됐다. 3월 23일 트럼프 대통령은 영구 면제에 대한 협상을 진행하는 동안 한국을 포함해 아르헨티나, 호주, 브라질, 캐나다, 멕시코, EU에 대해 25% 관세 부과를 5월 1일까지 한시적으로 면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들 국가들과의 협상 결과에 따라 5월 1일에 면제 지속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며, 면제된 수출국이 환적(transshipment) 및 과다 생산(excess production) 등으로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하지 않도록 쿼터를 부여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은 3월 26일 우리 정부는 한미 FTA 개정협상의 원칙적 합의가 도출됐으며, 철강 232조 관세 부과에서 한국을 면제하는 데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철강 분야 면제는 지난 3년간(2015~2017년) 한국산 철강재의 대미 평균 수출량의 70%에 해당하는 쿼터를 설정하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우리나라가 232조 조치에서 면제되지 않았더라면 국내 철강산업에 대한 피해는 불가피했을 것이다. 25% 관세는 이미 고율의 반덤핑·상계관세가 부과된 품목의 경우 중복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에 우리 업계에는 매우 부담스러운 조치일 수밖에 없다. 현재 미국이 반덤핑·상계관세를 부과하고 있는 한국산 철강제품 수입금액 중 232조 조치 대상에 포함된 품목의 수입 비중은 98%를 넘는다. 일단 미국의 232조 조치로부터 면제돼 우리 철강 기업들은 수출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는 위기는 넘겼지만 수출물량을 줄여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여러 면제 국가들을 발표하자 미국 철강산업계는 다시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32조를 근거로 강력한 보호를 기대했던 미국 철강기업들은 주요 수출국들이 조치에서 제외될 경우 구제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특히 일부에서는 한국이 면제된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이 쿼터를 전제로 232조 조치에서 면제됐다고 하더라도 이미 부과되고 있는 반덤핑·상계관세 조치가 더 강화될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철강산업이 맞이한 큰 고비를 넘긴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긴장감을 늦춰서는 안 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