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몇 핵심 그룹의 뉴스들로 언론이 뜨겁다. 안타깝지만, 대부분 부정적인 소식이다. 대한항공으로 유명한 한진 그룹은 부모에서 자식까지 오너 일가가 일상적으로 벌인 상상도 못할 갑질로 온갖 비난의 대상이 됐다. 그룹 평판은 끝 모르게 추락 중이고, 대한항공의 국적항공사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총수 일가를 경영에서 물러나게 해야 한다는 어찌 들으면 과격할 법한 얘기도 너무나 자연스럽다.
오너 일가, 극히 적은 지분으로 전체 계열사 지배 국내 대규모 기업집단의 오너 중심 경영이 한국경제의 성장을 이끈 주역이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룹 경영이 오너 3세나 4세로 이어지면서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이상한 합병 비율이 적용된 M&A나 일감 몰아주기 같은 무리한 방식이 경영승계를 위해 동원됐고 회계부정이나 계열사 간 부당내부거래로 오너 일가의 사익을 추구하는 행태가 드러나는 바람에 사회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특정 계열사의 주주 등 이해관계자가 손실을 입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필자는 이러한 문제들의 뿌리에 다른 나라에선 찾기 힘든 기업집단의 소유 지배구조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 핵심은 극히 적은 지분을 보유한 오너 일가가 전체 계열사를 완전히 지배할 수 있는 체계다. 이런 마법은 두 가지 수단으로 가능하다. 하나는 계열사의 돈으로 다른 계열사를 소유하는 방식을 활용하는 것이다. 그 결과 국내 10대 기업집단 오너 일가의 전체 계열사에 대한 직접 지분율은 평균 3% 정도에 불과한 반면, 계열사를 통해 보유하는 지분율은 50%에 이른다. 그리고 후자의 비율이 계속 증가한다는 게 2017년 공정거래위원회의 발표다. 다른 하나는 주주 등의 실질적인 감시와 견제가 어려운 지배구조를 구축하는 것이다. 예컨대 그룹 오너가 매년 계열사 사장단 인사를 지휘하고, 소송대리인같이 이러저러한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을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해 계열사 이사회를 장악하는 식이다. 주주의 이사 선임 권한은 껍데기만 남게 되는 셈이다. 그리고 계열사를 이용해 지분율을 높이니 주주의 견제수단인 의결권이나 주주권 행사의 실효성도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법규의 한계도 무시할 수 없다. 「상법」은 주주와 이사회, 채권자 간의 권한과 의무, 책임을 규정해 기업 지배구조를 규율하는 기본법이다. 그런데 이 법은 개별 회사가 아닌 기업집단 계열사에 적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가령 회사의 주주는 이사(회)의 잘못된 의사결정으로 회사가 손실을 입으면 대표소송으로 이사의 책임을 추궁할 수 있지만, 자회사의 이사가 위법행위를 저질러 발생한 손실에는 속수무책이다. 이를 가능케 하는 다중대표소송은 몇 년째 논의만 무성하다.
사업보고서 제출 이후 주주총회 개최하고 기관투자자 역할도 활성화해야 필자는 세 가지 정책방향을 제안한다. 우선, 기업집단 지배구조의 실질적 개선을 위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공정거래법) 개편이 필요하다. 가령 다중대표소송이나 전자투표제, 집중투표제 등을 「상법」 대신 공정거래법에 도입하는 것이다. 「상법」 개정이 계속 난항을 겪으니, 공정거래법을 개정해 대규모 기업집단 소속 (상장)회사에 대해서만이라도 지배구조 개선책을 적용해보자는 취지다. 물론 공정거래법에 그런 규정을 넣는 게 어색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공정거래법에는 최대주주 일가의 사익편취 규제, 계열사 간 대규모 거래에 대한 이사회 승인 등 기업집단의 지배구조를 규율하는 조항들이 이미 담겨 있다. 아예 금융회사의 지배구조를 「상법」과는 별개로 획기적으로 강화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사례도 있다. 공정거래법 고유의 법 논리를 무시할 순 없겠지만, 유연한 태도로 현실의 개선을 지향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다른 과제는 주주총회의 정상화다. 주주총회는 통과의례로 전락한 지 오래다. 임원 후보의 상세 경력과 같은 정보 공개의 확대, 전자투표 시행 활성화 등 중요한 과제들이 많다. 필자는 그중에서도 주주총회를 현재와 달리 사업보고서 제출 이후에 개최하도록 하는 것이 근본적인 과제임을 강조하고 싶다. 주주총회 전에 재무제표 작성, 내외부 감사, 소집공고 등 여러 절차가 필요한데, 현재는 주주총회를 사업보고서 제출 전에 개최하다 보니 (가령 12월 결산법인의 경우) 3월에 모든 절차가 몰린다. 많은 상장사가 특정일에 주주총회를 집중 개최하거나 소집공고를 너무 늦게 하는 등의 여러 실무 문제가 이와 관련된다. 만약 미국, 영국, 독일 등 다수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사업보고서 제출 이후에 주주총회를 개최할 수 있다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 이 경우 경쟁사의 사업보고서를 확인해 비교할 수 있으니 심도 있는 안건 분석이 가능해짐은 물론 회사도 경쟁사와 비교한 성과를 바탕으로 적정한 안건을 상정할 수밖에 없게 되니 여러모로 유익한 정책임이 분명하다. 최근 이와 관련한 「상법」 개정안이 국회에서도 발의됐다. 끝으로, 기관투자자의 역할을 활성화해야 한다. 주주총회가 비정상적으로 운영되는 데는 기관투자자의 책임이 크다. 운용사나 보험사가 주주제안이나 소송 제기는커녕 주주총회에서조차 찬성으로 일관하니 문제가 심각했다. 그러나 스튜어드십 코드의 시행으로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2018년 4월 말 기준으로 12개 운용사가 스튜어드십 코드에 참여했는데, 반대율이 크게 증가했다. 당국에서는 법적 불확실성 완화 등 국내 기관투자자의 스튜어드십 코드 참여와 이행을 촉진하는 방안을 보다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누구나 알지만 국민연금의 선도적 역할이 핵심이다. 최대한 이른 시기에 스튜어드십 코드에 참여하고 그 내용을 충실히 이행하게 할 필요가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연기금인 일본 공적연금(GPIF)은 위탁운용사를 선정할 때 일본 스튜어드십 코드 참여 여부는 물론 운용사의 내부 지배구조, 주주활동에 투입하는 인력 규모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하겠다고 최근 밝혔다. 국민연금이 참고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