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건설 집중노선’은 직접적으로는 국가의 재원을 경제 분야에 집중 투입하겠다는 것이고, 간접적으로는 핵폐기로 대외관계가 개선되고 이에 따라 외자유치도 원활해지면서 경제건설에 큰 도움이 된다는 의미다.
북한은 2013년 3월 31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개최해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을 병진시켜 강성국가 건설을 앞당겨 나갈 데 대하여’라는 결정서를 채택했다. 김정은 체제가 공식 출범한 지 1주년을 맞는 시점에서 새로운 국가전략노선으로 ‘경제와 핵무력의 병진노선’을 내세운 것이다. 이 노선의 성격과 의미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이는 북한이 핵보유를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이며 핵무력 강화 및 핵보유국 지위 영구화를 위한 국가전략이라는 측면이 강하다. 실제로 북한은 병진노선을 발표한 바로 다음 날인 4월 1일, 최고인민회의에서 ‘자위적 핵보유국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데 대하여’를 법령으로 채택했다. 2012년 헌법 전문에 핵보유국 지위를 명기한 데 이어 2013년에 핵보유를 국내법으로 ‘영구화’하는 조치를 취한 것이다. 이후 북한은 대내외적으로 핵보유를 정당화하고, 핵보유국 지위를 고착화·영구화하는 후속 조치들을 취했다.
김정일 시대보다 개혁·개방에 적극적···기업·농장에 자율성 확대, 시장경제 활동 허용 ‘경제와 핵무력의 병진노선’은 김정은 시대의 국가전략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이에 따라 북한의 경제발전전략은 이보다 상위 범주의 국가전략인 ‘경제 와 핵무력 병진노선’의 영향을 강하게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김일성, 김정일 시대와 마찬가지로 경제가 정치의 강한 영향력 아래에 놓여 있는 상황이 지속된 것이다. 따라서 경제발전전략이라고는 하지만 정치적 제약이 여전히 크기 때문에 순수하게 본격적인 경제발전만을 추구하기 어려운 상황, 시쳇말로 ‘경제에 올인’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던 것이다. 물론 김정은 시대는 김정일 시대보다 경제에 더 많이 신경을 쓴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경제정책에서 김정일 시대와 다소 차별되는 정책, 즉 중화학공업의 신규 설비투자를 배제하고 경공업·건설 등 단기적 성과에 주력하는 실용주의적 산업정책, 시장의 적극적인 활용 기조, 소비재 및 설비·중간재의 국산화 정책, 실질적인 자원배분의 증대를 통한 과학기술 중시 정책 등을 전개해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큰 틀에서 볼 때 중공업 우선 정책을 비롯한 기존의 경제발전전략에서 크게 벗어나기 어려웠다. 중국·베트남은 본격적인 개혁·개방과 함께 종래의 중공업 우선 정책을 포기하고 경공업·농업 중시 전략, 특히 비교우위 전략, 수출을 통한 공업화 전략으로 선회했지만 김정은 시대 북한은 여전히 기존의 중공업 우선정책을 고수했던 것이다. 아울러 김정은 시대는 김정일 시대보다 개혁·개방에 대해 상대적으로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북한은 김정은 집권 직후인 2012년 여름부터 시범운영 과정을 거쳐 2014년부터 ‘우리식 경제관리방법’과 ‘사회주의 기업책임관리제’를 본격 실시하고 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는 국민경제 운영에 있어 중앙의 권한·책임을 크게 축소하고 기업의 권한·책임을 대폭 확대함과 동시에 기업·농장에 대해 자율성을 확대해주고 시장경제활동을 상당 정도 허용한 것이 골자다. 이는 중국·베트남의 경제개혁과 상당한 공통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종전의 경제특구보다 진전된 경제개발구 추진···대북제재로 성과 거두지 못해 또한 김정은 시대에는 2013년부터 경제개발구라는 새로운 형태의 대외개방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 기존의 경제특구에 더해 현재까지 지방 각지에 22곳의 경제개발구를 지정했다. 이는 개방 지역의 대폭 확대, 투자유치 경로의 다양화 등 종전의 특구정책보다 진전된 면이 있다. 하지만 경제개발구정책은 북한의 투자유치정책상의 한계에다 5차 핵실험(2016년 1월) 이후 한층 강화된 대북제재가 겹치면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외국인 투자유치를 크게 늘리기 위해 소규모 경제특구를 대폭 확대하는 야심찬 정책을 내놨지만 북한 핵 문제가 심각해지며 사실상 벽에 부딪혔다. 또한 외국인 투자유치를 통한 외부자원 유입 확대라는 정책적 목표가 달성되지 못함에 따라 우리식 경제관리방법 등 경제개혁 조치도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핵 경제 병진노선’이라는 상위의 국가전략이 경제발전전략에 걸림돌로 작용한 것이다. 그런데 지난 4월 20일 북한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개최, 기존의 핵 경제 병진노선이 눈부신 성과를 거두면서 그 역사적 사명을 다했고, 이에 따라 앞으로는 ‘경제건설 집중노선’으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다만 이 새로운 노선의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진 바가 없다. 기존 정책과의 차이점은 말 그대로 과거에는 핵개발과 경제건설을 병행하겠다는 것이었는데 이제는 경제건설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즉 직접적으로는 과거에는 국가의 재원을 군사 부문과 경제 부문에 나눠 썼다면, 앞으로는 경제 분야에 집중 투입하겠다는 의미다. 또한 간접적으로는 그동안 핵개발로 인해 대외관계가 악화됐고 이로 인해 외자유치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앞으로는 핵폐기로 대외관계가 개선되고 이에 따라 외자유치도 원활해지면서 경제건설에 큰 도움이 된다는 의미도 된다. 경제발전전략보다 상위에 있으면서 사실상 경제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했던 ‘핵 경제 병진노선’이 소멸돼 이제는 경제가 정치에 종속되는 일도 더 이상은 없게 됐다. 물론 국민경제가 성장·발전하기 위해선 이러한 조건만으로는 부족하다. ‘핵 경제 병진노선’에서 ‘경제건설 집중노선’으로의 전환은 북한경제의 회복·재건을 위한 충분조건이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그동안의 경험에 비춰 보면 매우 큰 ‘필요조건’임에는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