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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교통·전력망·산업협력 등 다양한 연결, 동북아 평화번영까지 내다봐
김성휘 머니투데이 정치부 기자 2018년 08월호



6월 21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의 하원.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하원연설에 나섰다. “이제 한국은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통해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내가 자란 한반도 남쪽 끝 부산까지 다다르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국회의원들은 기립박수와 셀카 세례로 문 대통령을 환영했다. 그로부터 3주 후인 7월 13일.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송영길 위원장 등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우수리스크→하산을 거쳐 북한 나선특구로 들어갔다. 우리 고위급 인사가 러시아를 통해 북한에 들어간 건 전례가 없다. 기차를 이용한 것도 이례적이다. 일행은 러시아 측 인사들과 경협을 논의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신북방정책이 점차 구체화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9월 블라디보스토크의 러시아 동방경제포럼에서 이 정책을 공식 발표했다. 당시만 해도 또 하나의 장밋빛 구상이란 평가도 있었다. 신북방정책은 남북러 경제협력을 핵심으로 하고 북한의 동참이 필수인데 북한은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쏘고 있었다.


한러정상회담 통해 ‘9개의 다리’ 행동계획 마련
신북방정책은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관계 개선은 물론이고 한반도 전체의 경제 영역을 확장하고자 내놓은 구상이다. 러시아 극동지역을 포함한 북방지역과의 경제협력이 중심이며 핵심주체는 남북러 3국이다.
북한의 참여가 중요하지만 그 범위는 3국에 갇히지 않는다. 러시아와 몽골, 중국, 남북한과 일본을 촘촘하게 잇자는 제안이다. 연결의 방식은 육로(도로·철도), 해로 등 교통뿐 아니라 전력망(그리드), 산업협력까지 다양하다. 이를 통해 국경을 초월하는 동북아 평화번영까지 내다본다. 한반도를 H모양으로 장식하는 철도연결 구상을 포함, ‘한반도 신경제지도’가 바로 신북방정책의 청사진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9월 동방경제포럼에서 이른바 ‘9개의 다리(나인브리지)’를 제시했다. “한러가 동시다발적인 협력을 이뤄나가자”며 “그 9개의 다리는 조선, 항만, 북극항로와 가스, 철도, 전력, 일자리, 농업, 수산”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6월 러시아 방문 때 한발 더 나아갔다. 한러 정상은 서비스·투자 분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협상 추진, ‘9개 다리’의 행동계획 마련, 남북러를 포괄하는 전력·가스·철도 분야의 공동연구 추진 등에 합의했다. 그러면서 “러시아가 추진하는 극동 개발을 위한 최적의 파트너가 한국이며, 한국이 추진하는 신북방정책도 러시아와의 협력을 전제로 한 것”이라 말했다.
신북방정책은 연쇄구조를 갖는다. 남북러 3각 협력이 깊어지고 확대되면 참여국들의 상호의존이 심화된다. 이런 상태에서 적대행위와 안보 리스크는 크게 줄어든다. 이렇게 얻은 ‘평화’는 다시 더 긴밀한 상호의존으로 이어진다. 이 점은 남쪽을 향해 J커브를 이루는, 아세안(ASEAN)을 거쳐 인도까지 이르는 신남방정책과도 쌍둥이다.
특히 극동개발에 사활을 건 러시아와 대륙으로 뻗어가려는 한국은 경제적으로 손잡을 여지가 크다. 한러 FTA는 러시아를 3각 경협에 확실히 끌어들이는 안전판이 될 전망이다.


남북러 협력은 안보 면에서 지나친 북중 밀착에 균형력 갖게 해
외교적으론 동서  가로방향 외교에 갇히지 않고 세로, 즉 남북 축으로 지평을 넓히는 의미도 있다. 최근 한반도를 중심으로 3~4개의 트랙이 서로 중첩되면서 숨 가쁘게 회전하고 있다. 제1트랙이 남북과 한미 관계, 제2트랙이 중국을 포함한 평화체제 프로세스라면 제3트랙이 바로 러시아와 함께하는 신북방 트랙, 남북러 3각 경제협력이다.
이 같은 외교전략은 다층 외교의 특징을 보인다. 과거엔 한반도 주변국의 ‘블록’이 교집합 없이 대립했다면 지금은 한국을 중심으로 다양한 블록들이 쌓인다는 뜻이다. 다층 외교의 효과는 첫째, 한반도를 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특정 블록 대 블록의 충돌에서 벗어나게 한다. 남북이 손을 잡고 안보와 평화는 미국·중국, 경제는 러시아 등과 각각의 협력을 구축하면 이런 대립질서는 자연히 재편된다. 삼각형의 꼭짓점끼리 마주보던 한반도의 불안정성도 그만큼 낮아진다. 둘째, 한반도 평화라는 국익을 극대화한다. 남북러 협력은 안보 면에선 지나친 북중 밀착에 균형력을 갖게 하는 측면도 있다. 이런 면에서 신북방정책의 전략적 중요성이 확인된다. 
조심스럽지만, 신북방정책의 전망은 밝다. 첫째, 남북 그리고 북미 관계가 개선 중이다. 둘째, 문 대통령의 북방 접근법이 좋다. 문 대통령은 6월 러시아 하원 연설에서 “한국인들의 서재에는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투르게네프의 소설과 푸시킨의 시집이 꽂혀 있다”고 말했다. 2차 세계대전은 러시아가 부르는 ‘대조국전쟁’으로 표현했다. 러시아는 문화와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강하다. 러시아를 그저 시장이자 자원 공급국, 한국에 활용가치가 있는 나라 정도로 봐선 안 된다는 걸 문 대통령은 잘 안다.
조심스러운 이유는 역사적으로 확인된 한러관계의 장애물을 과연 단숨에 뛰어넘을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 때문이다. 한국과 러시아는 1992년 수교 후 25년간 양적 관계발전 외 질적 관계개선까진 이루지 못했다는 게 냉정한 평가다. 일례로 러시아는 우리가 ‘스탠더드’로 알고 있는 영미식 거래관행과 차이를 보인다. 매력적인 파트너인 건 분명하지만 동시에 장애물도 많다는 뜻이다.
따라서 신북방정책 역시 비전에 환호하기보다 내실을 다져가야 한다. 문 대통령도 동방경제포럼에서 “러시아 속담에 ‘묵묵히 가면 멀리 갈 수 있다’는 말이 있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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