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2 북미정상회담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많은 우여곡절 속에 열린 북미 정상 간 최초의 회담이었기에 정상회담의 내용과 성과에 많은 기대감이 있었다. 이번 회담에서 나온 공동성명은 크게 네 가지 내용으로 구성됐는데,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노력,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 그리고 한국전쟁 참전 미군 유해송환이 그것이었다. 북미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주변 4강은 각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책을 이행하고 있다. 특히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수립은 각국의 이해관계가 얽힌 중요한 문제다.
정치적으로 북미정상회담이 필요한 트럼프, 대북정책 기준점 낮추고 CVID 목적치 완화 먼저 비핵화 부분부터 살펴보자. 트럼프 정부는 북한의 CVID를 가장 중요한 정책적 목표로 추진하고 있다. 현 상황에서 북미 양국은 비핵화와 체제보장을 두고 줄다리기 중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자국의 중요한 협상카드인 핵과 장거리미사일 포기를 이행하기 이전에 미국으로부터 체제보장과 제재해제를 얻어내려는 입장이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분명하게 CVID의 가시적 성과 없이는 종전선언이나 제재해제는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정상회담 전날까지도 이 같은 문제로 성김 대사와 최선희 부상 간 실무협상이 진행됐으며, 이는 여전히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북미 간 비핵화협상을 통해 국내 정치적 이익을 얻고자 하는 측면이 있다. 현 국면에서 트럼프는 러시아 스캔들 수사를 무마시킬 필요가 있으며, 중간선거 승리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공고하게 만들어야 하는 형편이다. 현재 미국 국민들의 50% 이상은 북미정상회담에 대해 긍정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으며, 추후에도 북미회담을 국내 지지율 상승을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한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국내 여론을 의식해 북미회담의 지속 여부에 대해 내부 논의를 진행했으며, 본 협상을 좀 더 지켜보기로 결론을 내린 듯하다. 북미협상이 예상보다 장기화될 수 있다고 언급한 것도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 같은 트럼프의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필요성은 결국 대북정책의 기준점을 점차적으로 낮췄다. 소위 리비아식 선반출 해법도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다. 2020년까지 이루겠다던 CVID의 목적치도 상당부분 완화됐다. 북한 비핵화를 유인하기 위해 한미연합훈련 중단도 단행했다. 최근 합의된 유해송환 문제를 통해 북한 비핵화를 어느 정도로 유인할 수 있을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또 하나는 북미관계 수립을 통한 동북아에서의 지형 변화다. 미국은 부인하고 있지만, 북미관계 정상화는 중국이 매우 중요시하고 있는 북한이라는 완충지역을 미국 쪽으로 끌어당기는 효과를 가져오게 된다. 소위 닉슨효과라는 것이다. 물론 북한이 과거 중국과 같은 강대국이 아니며, 미중 데탕트가 구소련을 견제할 수 있는 중요한 외교적 모멘텀이 됐던 것과 같은 효과가 북미관계 개선으로 나타날지는 미지수지만, 이 같은 변화가 중국에 줄 타격은 생각보다 클 수 있다.
한미동맹 약화 노리는 중국, 난처해진 일본, 경제이득 꾀하는 러시아 중국은 북미정상회담에 대해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북미관계 개선이 북중관계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감 때문이다. 시진핑 주석은 임기 시작부터 북중관계를 동결시키는 동시에 한중관계를 강화하려 했다. 한반도 전체를 중국의 완충지역화하려는 정책이었다. 그러나 사드배치로 인해 한중관계마저 얼어붙기 시작했으며,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관계 개선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중국으로서는 매우 불쾌한 상황이 예상되는 모습이다. 이후 시진핑 주석은 김정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북중관계를 복원시켰다. 북미정상회담에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북한의 불안감을 잘 이용한 것이다. 이를 통해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기 시작했으며, 북한과 미국 사이의 비핵화협상을 지지부진하게 만들고 있다. 또한 중국은 현 국면에서 한미동맹 약화를 추진 중에 있다. 한반도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중요한 정책적 목표로 삼아왔던 중국에 한반도 비핵화를 추진 중인 현 북미협상 국면은 자국의 이익을 달성하는 데 매우 중요한 기회다. 추후에 비핵화협상이 진행되면서 주한미군 감축을 주장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중국은 적극적 개입 없이도 한반도 비핵화라는 중요한 정책적 목적을 진행시키고 있다. 현 국면이 중국에 결코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또한 남북미 종전선언으로 중국이 패싱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자국의 입장을 지속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중국이 입김을 점차 강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가장 난처한 상황에 놓인 것은 일본이다. 아베 총리는 중국과 북한이라는 위협을 통해 미일동맹을 강화하고 미국의 지지를 통해 헌법개정과 보통국가화를 달성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현 북미 간 관계개선 상황은 일본에 불리한 형국을 만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더 이상 북한을 위협으로 인식하지 않으려 하고 있으며, 이는 북한에 대한 미국과 일본 공동의 위협인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러시아의 경우 한반도와 관련한 중요한 안보이익은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의 대러시아 경제제재 이후 중러 양국은 관계를 강화하기 시작했으며, 한반도 정책과 관련해 미국과 각을 세워왔다. 최근 상황에서 러시아는 대한반도 경제이익에 관심이 많다. 즉 남북러 경제협력 등을 통해 경제적 이득을 꾀하고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증대하려는 입장이다. 이 같은 다양한 주변 4강의 이해관계 속에서 한국이 추진하는 비핵화와 평화체제는 향후 다양한 경로로 추진될 것이다. 결국 북미 양국 간의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남북한 간의 경제협력이 본격화될 수 있도록 전략적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