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 한반도 전쟁 위기설이 돌았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최근 몇 달 사이 남북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굵직한 일들이 숨 가쁘게 진행됐다. 『나라경제』는 조동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을 만나 한반도를 둘러싼 일련의 상황들을 짚어보고, 앞으로의 전망을 들어봤다.
남북정상회담이 두 차례 개최됐다. 의의는 무엇일까. 일단 시기적으로 임기 초기에 열렸다는 데 의의가 있다. 김대중 대통령 때는 임기 중간, 노무현 대통령 때는 임기 말에 열려 합의사항을 실천할 만한 시간적 여유와 동력이 적었다. 그런데 이번엔 시간적· 정책적 여유가 충분히 확보돼 그만큼 남북관계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2차 정상회담이 굉장히 실무적인 성격으로 진행됐다는 거다. 거창한 의전과 사전 의제조율 등이 꼭 전제되지 않더라도 분단돼 있는 양쪽 정상들이 필요할 때 쉽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대내외적으로 보여줬다.
사상 최초의 북미정상회담도 열렸다. 빠른 속도로 추진된 반면, 합의문의 구체성에 대한 이견도 있다. 정상회담은 권한을 가진 실무자들이 사전 협의를 마친 뒤 정상들이 만나 보통 서명만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북미정상회담은 실무선에서 모든 것을 조율할 충분한 시간적 여유와 권한이 없었다. 특히 북한은 체제 특성상 최고 절대권력자가 결정하는 부분이 있고, 미국은 트럼프라고 하는 개인의 스타일상 실무협상대표가 전권을 갖고 만날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두 정상이 결정할 몫을 남겨둘 수밖에 없었는데, 정상회담에서 정상들이 굳이 세세한 것까지 다 말할 수 없지 않았겠나. 그래서 합의문의 구체성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양측 정상 간 합의로 진행되는 톱다운(top-down) 방식의 장단점 선에서 이해했으면 한다. 구체성이 덜하다는 한계가 있던 반면, 문제를 빨리 해결해나갈 수 있다는 장점도 분명 있었다.
CVID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데. CVID에서 V(verifiable)가 검증인데, 검증되지 않은 비핵화라는 게 있을 수 있을까? 북미 양 정상이 합의한 ‘완전한 비핵화’에 다 들어가 있는 거라고 본다. 중요한 것은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진정성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이 아니라면 진심이 되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본다.
향후 북핵 문제 해결과정을 어떻게 전망하는가. 북한의 핵포기 선언이 분명 과거보다는 진전되고 진정성이 있다고 보인다. 그런데 핵은 북한으로선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기 때문에 쉽게 포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보상 등 조건이 맞아야 한다. 이 과정은 단계적으로 지루하게 갈 수밖에 없다.
미중 무역갈등이 북미협상에도 영향을 미칠까? 확률적으로 본다면 현재로선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무역에서 현재와 같은 관세충돌이 더 심화돼 전면전으로 진행된다면 중국은 쓸 수 있는 모든 카드를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무역 외의 분야에서 제일 큰 카드는 북한카드일 거라고 본다.
북미협상에서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북한과 미국 간에는 아직 불신이 너무 크다. 한 예로 정상회담이 논의될 시기인 지난 3월 한 회의에서 만난 북측 관계자가 “문재인 대통령은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하더라.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자기 말을 뒤집을 수도 있다는데, 한국 정부가 정상회담이 잘 성사될 수 있도록 끝까지 노력해달라”고 주문했다. 여기에서 우리 정부의 역할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상대적으로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으니 계속해서 중재 역할을 강화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에서 한반도 신경제지도를 구상하고 있다. 한반도 신경제지도는 3대 경제벨트에서 보여주듯 철도, 도로, 남북 간 물류 등 인프라의 중요성이 담겨 있다. 개성공단 사업 등 역대 정부의 남북경협 정책들은 가능성 있는 사업에 우리 개별기업들이 진출하는 차원이었고, 북한의 인프라는 비즈니스를 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한반도 신경제지도는 개별기업들이 북한에 몇 개 진출했느냐가 아닌 기업들이 진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초점을 두고 있어 정책적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남북경협은 어떻게 추진하면 좋을까? 기업 차원에서는 무조건 돈을 벌어야 한다. 북한에 진출한 기업이 실패하면 그 기업 자체로도 손해지만 이것이 남북경협의 성공 가능성 등에 부정적 시각을 만들어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부 차원에선 남북 간 교류와 협력 확대, 민족의 동질성 회복 등 남북관계 개선이 목적이다. 그러려면 북한 주민의 삶의 질 향상과 북한의 인권개선에 도움이 되고, 군사적 긴장 완화와 이산가족 문제 해결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쳐야 할 것이다. 여기에 기여할 수 있는지를 판단해 남북경협을 추진해야 한다.
대북제재가 여전한 현재, 남북 간 협력방안은? 대북제재가 워낙 촘촘해 대부분의 경협사업들은 지금 진행할 수 없다. 이런 제한적인 상황에서는 인도적 지원, 북한의 산림 낙후화에 대한 환경개선 등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앞으로 본격적인 남북관계 발전을 염두에 두고 조사, 연구 등 남북 간 학술 분야에서의 협력 등도 생각해볼 수 있겠다.
향후 북한의 개혁·개방 가능성은 어떻게 보나. 김정은 위원장은 최고지도자가 된 후 첫 번째 공개연설에서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정권을 안정적으로 가져가려면 제일 중요한 것이 일반 주민의 지지이기 때문에 경제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경제성장에 필요한 자본이 없는 북한은 개방을 통해 해외에서 자본을 들여와야 한다. 김정은 위원장도 경제특구를 30개나 만드는 등 외국인 투자를 받아들이는 정책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개혁은 내부 경제시스템을 고치는 것이어서 조심스러운 이야기다. 개혁과 개방이 따로 갈 수도 있다. 하지만 개방을 통해 들어온 외국 자본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선 내부개혁이 있어야 하므로 개방은 필수적으로 갈 수밖에 없고, 거기에 따라서 어느 정도의 개혁조치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끝으로 한반도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까. 북핵은 30년째 이어진 문제로 몇 달 내 해결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일련의 정상회담을 통해 우리의 기대 수준이 갑자기 높아졌다. 정부는 여론을 살펴야 하고 살필 수밖에 없는데 국민들이 성급하게 기대를 하면 덜 바람직한 길로 갈 수도 있게 된다. 지금 중요한 것은 해결의 속도가 아니고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차근차근 제대로 가는 것이다. 『나라경제』 독자들은 조급해하지 말고 조금 더 여유 있게 상황을 바라봐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