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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T 혁신 운동장이 열렸다
이진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인터넷제도혁신과장 2019년 03월호



지금 세계는 기업이나 정부 할 것 없이 혁신 경쟁 중. 4차 산업혁명 시대를 관통하는 기술· 서비스는 국경이나 주권국가 범주 내에 가둬둘 수 없어


그리스 로마신화는 우리 인류사의 찬란한 보고다. 지금도 회자되고 자주 인용되는 스토리가 무궁무진하다. 그중에 ‘규제’ 이야기만 나오면 단골로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프로크루스테스라는 강도다. 자기 집에 침대(규제)를 두고 지나가는 손님을 잡아다가 그 침대에 눕히고는 길면 사지를 자르고, 짧으면 늘여서 결국 죽이고 만다. 우스갯소리같이 들리지만 우리 주변을 자세히 둘러보면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기도 하다.


기존 신속처리·임시허가 제도 보완하고 실증특례 추가해 ICT 규제 샌드박스 완성
2017년 아산나눔재단에서 다소 충격적인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다. 한 해 동안 투자를 가장 많이 받은 글로벌 스타트업을 조사했는데 그중 70% 정도의 기업이 우리나라에서는 사업이 어렵다는 판정을 내린 것이다. 공유경제의 대명사인 우버나 에어비앤비는 우리나라에 진출했다가 불법 판정을 받아 철수한 바 있거나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만 사업이 가능한 실정이다. 현재 논란이 많은 카풀 서비스와 택시업계의 갈등도 기존 규제체제와 새로 등장하는 신기술·서비스 간의 충돌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국가 주도의 경제정책과 아울러 체계적이고 촘촘한 규제체계를 구축한 바 있다.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의 ICT 인프라와 서비스를 갖추다 보니 각종 부작용을 다른 나라보다 먼저 경험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종합적인 대책이나 규제보다는 대증적이고 단편적인 대책을 내놓은 측면이 많았다. 정부로서는 반성할 대목이다.
지금 세계는 기업이나 정부 할 것 없이 혁신 경쟁 중이다. 과거와 달라진 점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관통하는 기술·서비스는 국경이나 주권국가 범주 내에 가둬둘 수 없다는 점이다. 혁신하거나 변하지 않으면 강제로 변화될 수밖에 없다. 이에 우리 정부는 혁신성장 정책을 최우선으로 두고 있다. 그 결실을 본 것이 규제 샌드박스 법의 제정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미 「정보통신 진흥 및 융합 활성화 등에 관한 특별법」(정보통신융합법)을 통해 신기술·서비스에 대해 ‘신속처리’, ‘임시허가’ 등의 제도를 시행하고 있었다. 지난해 9월 국회를 통과한 법에서 기존 제도(신속처리, 임시허가)를 좀 더 세밀하게 보완하고 ‘실증특례’라는 새로운 제도를 추가함으로써 명실상부한 ‘ICT 분야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1월 17일부터 본격적인 제도 시행에 들어갔다.
제도 시행 전부터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수요처라 할 수 있는 각종 기업과 협회 등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제도 설명회를 13차례에 걸쳐 시행했다. 설명회 때마다 참여 기업의 뜨거운 열기와 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지난 12월 31일에는 ICT 규제 샌드박스 전용 홈페이지(www.sandbox.or.kr)를 개설했다. 제도 시행 전에는 1일 평균 300여명이 방문했고, 제도 시행 직후에는 1일 7천여명이 클릭할 정도로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최근까지도 1일 1천여명이 꾸준히 방문하고 있다.


손목시계형 심전도 장치, 모바일 전자고지엔 특례 부여, 임상시험 온라인 중개서비스는 규제개선 완료
제도 시행 첫날 9건의 ICT 규제 샌드박스 과제가 신청됐다. 그간 혁신에 목마르고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규제의 벽 앞에서 어려움을 겪던 절박한 기업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규제 샌드박스의 문을 두드렸다. 심장질환자를 대상으로 손목시계형 심전도 장치를 활용한 심장관리서비스, 정부·공공기관에서 발송하는 각종 우편 고지서를 알림톡이나 문자메시지로 보내는 모바일 전자고지, 현재는 제약회사나 병원에서 신약개발·임상실험을 위해 필요한 임상대상자를 온라인 중개 시스템을 통해 모집하는 것이 금지돼 있는데 이를 해결해 달라는 기업도 신청했다. 이 외에도 괜찮은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과제들이 있다. 영세 음식업체의 배달을 대행하던 사장이 오토바이 배달통에 디지털 패널을 설치해 음식점이나 음식을 광고하려는 서비스, 해외 유학생이나 국내의 외국인 노동자가 해외 송금 시 블록체인 방식을 활용함으로써 기존 은행을 활용할 때보다 빠르고 저렴한 수수료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유망한 핀테크 업체도 있다. 강화된 법규로 사업이 불법화돼 폐차 견적 비교서비스를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가능하도록 풀어달라고 절박하게 호소하는 업체도 있었다. 또한 늘어가는 전기자동차는 초기 충전인프라 구축에 비용이 꽤 발생하는데 일반 가정용 전기와 요금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관로공사를 별도로 해야 하는 등 번거롭고 비싼 인프라 비용이 문제였다. 이에 일반 가정용 콘센트를 그대로 활용하면서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한 전기차 충전 콘센트를 개발한 업체도 있다. 가상현실(VR)의 대중화를 위해 이동형 트럭에 VR 체험기기를 탑재해 지역축제나 대학 캠퍼스에서 서비스를 하려는 업체도 신청했다. 해상 안전사고 시 구명조끼에 부착된 해상조난신호기로 인근 선박에 구조요청을 보낼 수 있도록 규제 샌드박스에서 해결해 달라는 업체도 있었다.
어찌 보면 이러한 기술과 서비스가 왜 아직 시장에 출시되지 않았는지 의아하게 생각되는 것들도 꽤 있다. 이들 중 손목시계형 심전도 장치를 활용한 심장관리서비스, 모바일 전자고지서비스는 2월 14일 개최된 ‘제1차 신기술·서비스 심의위원회’에서 실증특례 또는 임시허가 지정을 받았다. 특히 임상시험 참여 희망자 온라인 중개서비스의 경우 담당 부처(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한 결과 불명확했던 규제를 완전히 없애버린 좋은 선례를 만들어줬다. 나머지 과제들도 3월 초 관계부처, 이해 관계자, 민간 전문가들과 심층적이고 치열한 논의를 거쳐 2차 심의위원회에 상정해 처리할 예정이다. 그간 규제의 벽 앞에 신음하던 기업들에 사업개시의 희망을 제시하고 규제로 막혀 있던 신기술·서비스의 물꼬가 터진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할 것이다.
각종 악행을 저지르던 프로크루스테스는 아테네 왕자 테세우스에 의해 제압된다. 그것도 자신이 만든 침대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가 여행객들에게 편하게 잠자리를 제공했으면 어땠을까? 키가 큰 사람이나 작은 사람이나 각자 처한 위치에서 다소 불편하더라도 침대에서 하룻밤을 잘 보내지 않았을까? 우리 정부는 침대 대신 샌드박스라는 모래밭 놀이터를 제공한다. 서랍 속에 감춰뒀던 혁신과 아이디어가 모래밭에서 맘껏 뛰놀게 되고 궁극적으로는 커다란 잔디밭이나 운동장에서 혁신활동이 이뤄지는 날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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