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이래로 미국은 전 세계의 우려 속에서도 미국우선주의에 입각한 보호무역 조치와 자국 투자 기업 우대 정책 등을 통해 단기 효과를 거두면서 비교적 완만한 성장을 지속해왔다. 특히 2019년 3분기에는 실업률이 3.5% 수준까지 낮아지면서 역대 최저치를 경신했다. 최근 고정투자 하락과 수출 감소 등 일부 거시지표가 하락세로 전환됐지만, 고용 상황과 더 밀접한 관련이 있는 가계소득은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어 이러한 호조세가 계속된다면 내년에 미국의 실업률은 또 한 번 사상 최저치를 경신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경제의 버팀목이라고 할 수 있는 민간소비는 최근 상승세가 다소 둔화되고는 있지만 앞서 언급한 고용 증가와 가계소득 상승에 힘입어 전년 대비 2.6% 증가했다. 트럼프 정부의 계획적인 관세 부과 조치로 가구당 수입 물품 구매 시 경제적 손실은 당분간 계속 있겠지만, 미중 무역합의의 최종 결과에 따라 관세폭은 더 작아질 것으로 기대되며, 현재의 양호한 고용 상황은 이를 충분히 상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 수출, 수입 모두 축소…내년에도 성장 기대 어려워
그러나 실업률이나 소비와 달리 다른 경제지표들은 트럼프 행정부에 최고의 성적표를 안겨주지는 못할 전망이다. 먼저 대외 부문의 경우, 2019년은 글로벌 무역이 크게 위축되면서 미국의 수출과 수입 모두 그 규모가 축소됐다. 미국의 2019년 교역량은 2018년 4조2,360억달러에서 1.1% 줄어든 4조1,910억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내년에도 세계경기의 성장세가 둔화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가 지금의 대외정책 기조를 유지한다면 2020년에도 대외 부문의 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투자도 제조업 경기부진과 글로벌 불확실성이 지속되면서 하락 추세로 전환됐다. 고정투자의 경우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부터 2018년까지 연평균 3.9%의 높은 수준을 유지했으나, 2019년은 전년 대비 1.9% 증가하는 데 그쳤다. 2020년에도 국내외 불확실성이 개선될 기미가 크게 보이지 않아 상승폭은 더 둔화될 것이다. 또한 같은 이유로 산업생산지수는 2018년 3.9% 증가에서 올해는 0.8% 증가하는 데 그칠 것으로 예상되며, 내년에는 이보다도 낮은 0.3%대 수준을 기록할 전망이다. 이제 미국의 고립주의를 통한 나 홀로 경제성장이 한계에 다다른 것으로 보인다.
낮은 실업률과 굳건한 내수 소비에도 불구하고 미국경제에 이처럼 부정적인 전망이 확산되고 있는 데는 다음과 같은 배경이 있다. 첫 번째는 2020년에 치러질 대선의 불확실성과 사회 분열의 심화 우려다. 미국 대선은 역대 현직 대통령의 패배가 지난 100년간 4명(사망 제외)에 그칠 정도로 현직 대통령이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으며, 여타 신흥국들과 달리 정책 기조의 변화에 따른 리스크가 낮은 편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경우 극우주의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반감이 커서 임기 내내 낮은 지지율을 보여왔고, 게다가 최근 탄핵 국면으로 입지가 더 위축됐다. 이에 야당의 당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가운데 민주당 후보들이 난립해 저마다 진보적인 정책들을 차별적으로 내놓으며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자칫 양당 모두 포퓰리즘 정책으로 경쟁을 하거나 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의 확장적 재정정책을 두고 의회에서 정쟁이 심해질 경우 정책 불확실성은 더욱 증가할 것이다.
두 번째는 미중갈등의 장기화 가능성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對)중국 보복 관세 부과로 시작된 미중갈등이 올해는 더 심화되면서 무역분쟁의 범주를 넘어 경제 체제와 국가 안보,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WTO 등과 같은 국제 규범까지 위협해가며 그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무역분쟁은 지난 10월 양국의 고위급 회담을 통해 어느 정도 타결 실마리를 찾으면서 조만간 해소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미래 기술 주도권을 두고 경쟁하는 IT나 바이오 분야의 지식재산권, 디지털 교역, 사이버 안보 등의 민감한 주제에 대해서는 미국이 사실상 중국의 경제·산업 정책의 전환을 요구하는 것이어서 단기간 내 합의를 이루기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언제든지 미중갈등이 재발하거나 현재의 구도가 장기화될 수 있음을 의미하고, 더 심할 경우 미국과 중국이 새로운 국제 규범이나 협력 체제를 두고 두 진영으로 양분돼 전 세계 국가들에 자신의 편에 서도록 선택을 종용하는 우려스러운 상황이 될 수도 있다.
통화· 재정 정책의 한계로 달러화 약세 가능성 높아
세 번째로는 미국 통화·재정 정책의 한계로 인한 달러화 약세 가능성이다. 미국 연준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금까지 양적완화와 금리인하를 통해 국내경기 둔화에 효과적으로 잘 방어해왔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연방준비은행의 자산도 크게 늘어나 더 이상 추가 대응할 여력이 많지 않다는 점을 시장이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이다. 정책 금리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금리인하를 직접 요구하고 있는 데다 이미 시장 금리가 충분히 낮아 추가 금리인하 효과가 얼마나 있을지도 의문이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공격적인 금리인하와 함께 재정정책을 더 확대하려 하겠지만, 올해 연방정부의 재정적자가 1조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면서 재정건전성 우려가 다시 나오는 상황이어서 민주당이 장악한 하원이 이를 쉽게 용인할 리가 만무하다. 이렇듯 제한적인 정책효과와 대외 불확실성이 지속되면서, 내년에 몇몇 신흥국에서 외환위기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달러화는 약세로 전화될 가능성이 크다.
위와 같은 상황들을 종합해보면, 미국경제는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회복 과정에서의 호황을 끝내고 2020년부터는 연착륙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지난 3년간 미중갈등을 포함해 글로벌 불확실성을 유발했던 원인들 중에서 그 어떤 것도 명확히 해소된 것이 없어 내년에는 한국도 미국경제의 이러한 변화를 예의 주시하면서 다가오는 리세션(recession, 경기침체)의 공포에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