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경제는 2013년부터 재정위기의 충격을 딛고 상승세를 유지했으나 2017년을 정점으로 다시 하강 국면에 돌입했다. EU 전체 경제성장률은 2017년 2.6%에서 2018년 2.0%를 거쳐 올해는 1.4%로 낮아졌다(이하 2019년 수치는 EU 집행위원회의 올가을 전망치 발표에 따름). 유로존의 경제성장률은 같은 기간에 각각 2.5%, 1.9%, 1.1%를 기록하면서 조금 더 빠른 하강세를 보이고 있다.
독일과 이탈리아의 경기 둔화 속도 가장 빨라
국내총생산의 구성요소 측면에서 지난 2년간 EU의 경기 하강을 초래한 가장 중요한 요인은 이전 기간 동안 EU경제의 회복을 이끌어왔던 수출 증가세의 급격한 둔화다. EU 수출 증가율은 2017년 5.7%에서 2018년과 2019년 각각 3.4%와 2.6%를 기록했다. 수출 증가세 둔화에 비해 투자나 민간소비 증가율은 상대적으로 하락세가 강하지 않았다. EU의 총투자 증가율은 2017년 3.4%에서 2018년 2.5%로 둔화됐다가 2019년에는 3.8%로 반등했다. 민간소비는 2017년 2.1%에서 2018년과 2019년 각각 1.6%, 1.4%로 둔화되고 있기는 하지만 둔화 속도가 수출보다는 훨씬 완만하다. 민간소비가 비교적 견조한 것은 고용 사정이 개선된 것과 관련이 높다. 실업률은 지난 3년간 7.6%에서 6.8%, 그리고 6.3%로 낮아졌다.
주요국별로 보면 무역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독일과 정정이 불안한 이탈리아에서 경기 둔화 속도가 가장 빨랐다. 2017년부터 3년간 경제성장률 추이를 보면 독일의 경우 2.5%, 1.5%, 0.4%로, 같은 기간 이탈리아는 1.7%, 0.8%, 0.1%로 급격하게 하락하고 있다. 이에 반해 프랑스나 스페인의 성장률도 낮아지기는 했지만 EU 전체와 유사한 속도로 낮아졌다. 한편 브렉시트의 충격을 직접적으로 받는 영국의 경기 둔화 속도가 의외로 올해 초까지는 특별히 두드러지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 2분기와 3분기 영국의 전 분기 대비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이는 브렉시트가 다가오면서 영국경제에 점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2020년 EU경제 전망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미중 무역분쟁 및 중국의 성장률 하락 등 세계 경제환경의 변화다. 유럽과 보다 직접적으로 연관된 요인들로는 브렉시트, 통화·재정정책 기조, 국내정치 혼란 등을 꼽을 수 있다.
안갯속을 헤쳐가고 있는 브렉시트의 전개는 영국은 물론 EU경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지난 10월 19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제출한 브렉시트 수정안의 의회 승인이 무산된 후 브렉시트 시한이 2020년 1월 31일로 연기된 상태다. 존슨 총리는 수정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의석을 확보할 목적으로 12월 12일 조기총선을 실시하기로 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볼 때 총선에서 야당이 압승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브렉시트를 철회하는 결과로 귀결된다면 영국 및 EU경제에 장기적으로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현 여당이 재집권에 실패하는 경우 나타나게 될 혼란과 불확실성이 오히려 단기적으로는 영국경제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완화적 통화정책 추가 시행 어려울 듯
경기대응적 거시경제 정책의 방향과 효과도 2020년 EU경제 전망에서 고려해야 할 중요한 요소다. 먼저 통화정책을 보면 지난 9월 유럽중앙은행(ECB)이 이미 수신금리를 –0.4%에서 –0.5%로 인하하고 자산매입 프로그램을 재개하는 등 완화적 정책을 시행한 바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신임 ECB 총재의 성향이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에 우호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지난번 완화적 정책 결정에 대해 다수 국가의 중앙은행 총재들과 집행이사들이 반대했던 점을 감안할 때 향후 추가적으로 완화적 통화정책이 시행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설령 추가적 금리인하를 시행하더라도 그것이 은행들의 금융중개 기능을 약화시켜 오히려 긴축적인 효과를 초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향후 EU경기가 완화적 통화정책에 의해 추가적인 부양 효과를 거두기는 쉽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재정정책의 경우 재정위기 이후 강화된 재정준칙으로 확장적 정책을 쓸 수 있는 여건에 부합되는 국가가 많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때문에 독일, 네덜란드 등 재정이 건전한 나라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재정을 확대할 것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독일은 최근 경기가 급격하게 위축되고 있기 때문에 건전 재정을 중시하는 자국 전통에도 불구하고 확장적 재정정책을 시행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하지만 전 분기 대비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2분기와는 달리 3분기에는 0.1%의 플러스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확대 재정정책이 시행될 것이라는 기대가 최근 상당히 약화된 상황이다.
지난 8월 이탈리아의 오성운동과 동맹당 간 연정이 붕괴된 이후 새롭게 구성된 오성운동과 민주당의 연정이 이탈리아 정국을 안정시킬 것인지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번 연정이 다른 주요 국가들과 불협화음을 내면서 유로존의 미래에 불확실성을 높인 데 반해 이번 연정이 보다 친EU적 성향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연정을 구성한 양 세력의 지지기반과 성격이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연정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향후 하드 브렉시트, 미중 무역분쟁의 악화, 이탈리아 정국 불안 재개 등이 없다는 가정을 한다면 내년에 완만한 반등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뚜렷한 경기 개선을 기대하기에는 불확실성이 너무나 크고 정책적 대응수단도 제한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식적인 경기전망도 매우 신중하게 암중모색하고 있는 듯하다. EU 집행위원회는 가을 경제전망에서 유로존 경제성장률이 2020년에는 1.1%를 기록한 후 2021년에는 1.2%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EU 경제성장률은 2019년 1.4%를 기록한 후 2020년과 2021년에도 동일한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내년은 EU 경제주체들이 당면한 여러 리스크 요인들이 현실화되지 않을 것을 기대하면서 경기 흐름을 역전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한 해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