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경제는 2019년 힘든 한 해를 보냈다. 인도, 브라질, 주요 아세안(ASEAN) 국가 등 대부분의 지역에서 성장세 둔화를 경험했다. 글로벌 수요 둔화와 같은 대외여건의 악화뿐 아니라 제조업 등 전반적인 산업생산의 부진, 정치 리스크와 같은 대내적 요인이 작용한 결과다. IMF 경제전망에 따르면 신흥국경제는 2019년 3.9%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부터 2018년까지 평균적인 경제성장률 수준이 5.2% 정도임을 감안해볼 때 매우 충격적인 수치임에는 틀림이 없다. 2009년 2.8%를 기록한 후 가장 낮은 성장률이다.
하지만 2020년은 성장률 반등이 예상된다. 미중 무역분쟁의 장기화, 중국의 경기 둔화 흐름 등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신흥국경제를 둘러싼 대내외 악재가 구조적으로 상존해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성장률 반등을 마냥 긍정적으로만 바라볼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보호무역주의 강화 흐름 속에 대외의존적 신흥국 어려움 예상
구조적 리스크의 첫 번째로, 대외의존적 신흥국의 어려움이 예상된다. 각국은 자국 이익 극대화를 위한 보호무역주의 강화 흐름을 지속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 교역량은 2010년 이후 빠르게 둔화되는 모습이다. IMF에 따르면 세계 교역량 증가율은 2010년 12.8%에서 올해 1.1%까지 하락할 전망이다. 특히 세이프가드, 상계관세, 반덤핑 등 수입규제 조치는 2010년 163건에서 2018년 256건으로 약 2배 이상 확대되면서 보호무역주의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나아가 세계 교역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2016년 이후 크게 확대되면서, 중국경제 둔화에 직접적 영향을 받는 국가들은 위험에 노출돼 있다. 더욱 우려할 만한 점은 GDP 대비 수출 규모를 고려한 중국경제 의존도 분석 결과, 상위 20개국 중 신흥국으로 분류되는 국가가 13개국에 달한다는 점이다. 이는 글로벌 가치사슬 구조가 과거 미국, 독일, 일본 등을 중심으로 원재료, 자본, 노동 등이 결합됐으나, 중국이 핵심 국가로 성장하면서 여타 신흥국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점과도 맞닿아 있다. 글로벌 가치사슬의 구조는 훨씬 복잡하고 다양해지는 흐름인 것이다. 중국경제 둔화가 신흥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간과할 수 없는 요인임에 틀림이 없다.
두 번째로 부채 리스크의 상존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역외신용 증가율은 아시아 신흥국을 중심으로 확대됐다. 세계가 5% 내외, 아시아 신흥국이 19% 내외, 남미 국가들이 5% 내외인 점을 감안하면 아시아 신흥국의 역외신용 증가율은 상대적으로 높은 수치다. 이러한 점은 외부 충격이나 유동성 축소 흐름이 발생했을 때 급속한 자금 유출입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우려할 만한 요소다. 다행인 것은 올 한 해 미국 연준의 3번에 걸친 정책금리 인하로 향후 글로벌 유동성 축소는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특히 민간신용은 신흥국의 기업 부채를 중심으로 크게 확대됐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2010년 71.4%에 불과했던 비금융기업 부채는 2019년 1분기 100.6%까지 무려 29.2%p나 확대됐다. 이는 세계경제포럼(WEF)에서 기준으로 제시한 80.0%를 훨씬 뛰어넘는 수치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신흥국 기업들을 중심으로 기업 이윤이 저하되면서 신용등급이 낮아진 기업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브라질, 중국, 터키, 인도 등 GDP 규모가 큰 국가들의 기업이 많이 포함된 점은 우려할 만한 부분이다. 관련 요인들은 지금 현재 당장은 아니더라도 잠재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큰 요소다.
안전자산 선호심리 확대로 신흥국 금융 불안정성 다소 커져
세 번째 불안요인은 원자재 가격의 불안정성이다. 2019년 국제유가는 세계경기 둔화, 미국산 원유공급 확대에 따른 초과공급 유지 등으로 하락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터키의 시리아 침공, 이라크 반정부 시위 등 중동지역 정세 불안과 12월 초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추가 감산 결정 여부 등은 유가 강세 요인이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가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Aramco)의 기업공개(IPO) 성공을 위해 고유가 정책을 주도할 가능성도 잠재돼 있다.
그럼에도 2020년에도 세계경기 불확실성 등으로 상승 모멘텀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로 인해 결과적으로 원자재 수출 신흥국들의 경제에 먹구름이 낄 가능성이 있다. 브라질과 일부 아프리카 국가들은 총수출 대비 원자재 수출 비중이 40%에서 80%에 달해 원자재 가격 변동에 따른 국가별 리스크 전이과정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네 번째로 금융불안의 확산이다. 과거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경험했듯이 환율 변동성, 재정수지, 단기외채 등에 취약한 일부 국가들의 위기 전염은 금융불안으로 확산됐다. 신흥국의 대외 건전성 수준이 이전에 비해 훨씬 개선됐다는 점은 리스크 확대를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지만,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 비중이 높은 터키, 아르헨티나, 말레이시아 등은 리스크 확대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
최근 들어서는 경제 불확실성 확대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심리가 확대되고 있다. 그 결과 마이너스 채권 금리가 급증하고, 수익률 곡선이 평탄화되면서 신흥국 금융 불안정성이 다소 확대되는 점 또한 우려되는 부문이다. 경제적·구조적 취약성이 드러난 국가들은 급격한 통화가치 절하 등 리스크가 단기간 내 중첩됐을 경우 자금이탈을 촉발할 소지가 상존해 있어 불확실성 확대 가능성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그럼에도 내년 신흥국경제는 올해보다 좋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미중 무역분쟁, 지정학적 리스크 등이 변수로 작용하겠지만 낙관적으로 전망하는 시각이 우세하다. 미국의 정책금리 인하로 글로벌 통화정책 공조성을 감안할 때 신흥국의 경우 완화적 통화정책 여력이 다소 확대된 측면이 있다. 이는 분명 경기부양에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또한 인도의 법인세율 인하, 아세안·러시아 등의 대규모 인프라 투자정책 추진은 정책 대응력을 뒷받침할 긍정적 요인으로 전망된다. 핵심은 신흥국경제가 내재하고 있는 구조적 리스크 요인의 확산이다. 신흥국경제가 이를 극복하고 세계경제를 부양하게 될지 관련 변수를 면밀히 살피며 대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