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중국에서 발생한 코로나19가 아시아를 거쳐 중동, EU, 미국 등 전 세계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급기야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3월 11일 코로나19 확산을 전염병 경보단계 중 최고 위험 등급에 해당하는 팬데믹(pandemic)으로 공식 선언했다. 3월 22일 현재 전 세계 코로나19 확진자는 30만명, 사망자는 1만3천명을 넘어섰다.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되자 세계 주요국은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자국 내부적으로는 이동 제한 및 통제, 자가격리, 휴교 및 재택근무, 공공·문화시설 폐쇄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고, 대외적으로도 입국·해외여행 제한 및 금지 등으로 대응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 중국·이란·EU로부터의 외국인 입국을 금지하고 자국민의 해외출국도 금지해 사실상 국경을 폐쇄했다. EU도 국경을 30일간 폐쇄하고 EU 회원국 내에서도 30일간 여행을 제한하기로 했다.
전 세계적으로 전개되는 국가 차원의 이동 제한 움직임, 자발적인 접촉 및 이동 기피 현상으로 세계경제가 휘청이고 있다. 우선 수요 측면에서 인적·물적 이동, 여행, 관광과 관련된 항공·숙박·외식·물류·해운이 크게 타격을 받고 있다. 다음으로 공급 측면에서 감염자의 사망 및 자가격리, 공장 조업 제한 및 공장 폐쇄 등으로 생산차질이 발생하고 있다. 실제로 볼보와 포르쉐는 3~4월 중 유럽과 미국 내 자동차 생산을 중단하기로 했고, JP모건은 전체 지점의 20%에 대해 영업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또 캐세이퍼시픽항공은 4~5월 중 여객수송을 90% 이상 감축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끝으로 무역 측면에서 해외수요 감소, 여행객 감소, 전문직 서비스 공급 제한 등으로 수요 자체가 축소되고 입국 제한, 통관 지연, 화물수송 감소 등으로 무역비용도 크게 상승하고 있다.
실물 부문 충격이 금융시장 패닉으로
이렇게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세계경제 불확실성이 높아짐에 따라 세계 금융시장도 크게 출렁이고 있다. 최근 세계 주요국 주가는 2019년 말 대비 약 2개월 반 만에 많게는 50% 가까이 하락했다. 주요국 통화가치도 같은 기간 달러화 대비 10% 내외로 절하됐다. 가히 금융패닉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급속히 확산되면서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도 시간이 지날수록 낮아지고 있다. 급기야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수준에 근접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3월 들어 세계 주요 투자은행(IB) 및 전망기관들은 2020년 세계경제 성장률을 0.9%(모건스탠리), 1.0%(EIU), 1.3%(골드만삭스)로 낮췄다. 올해 2월까지만 해도 EIU는 2.3%,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는 2.7% 성장을 전망했었다. UN 사무총장은 코로나19로 세계경제 침체가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고 발언했다.
향후 세계경제가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 것인가는 최근 상황과 2008년 금융위기 상황을 비교함으로써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두 시기의 공통점은 전 세계적인 금융패닉 현상의 발생이다. 2008년 당시와 최근 기간 모두 강도는 다르지만 세계적으로 주가 급락, 금리 급등, 통화가치 급락(달러화 제외), 유가 급락이 나타났다. 2008년 당시 미국 다우존스 주가지수는 전 고점 대비 약 2분의 1 수준, WTI(서부텍사스산 원유) 현물가격은 4분의 1 수준으로 폭락했고, 최근에는 각각 2019년 말 대비 약 3분의 2, 3분의 1 수준으로 급락했다.
하지만 두 시기는 발생 배경, 세계경제 여건, 정책공조 여건 등의 측면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발생 배경의 경우 2008년 당시는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발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즉 부실채권 급증 및 금융경색, 금융시스템 붕괴였다. 고위험 모기지를 기반으로 한 파생금융상품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증권화, 유동화가 진행돼 미국발 충격이 전 세계에 동시에 달러화 유동성 부족 사태를 초래했다. 이 과정에서 취약한 금융기관, 기업, 가계뿐만 아니라 국가마저도 위기에 빠져 세계경제는 침체에 빠졌다. 하지만 최근의 경우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먼저 수요와 공급 등 실물 부문에서 충격이 발생하고 있고, 이것이 금융시장 패닉으로 이어지고 있다.
두 시기 금융 부문의 취약 요인도 서로 다르다. 2008년 당시에는 부동산 모기지에 기반한 가계부채였다면 최근에는 저신용 기업에 기반한 기업부채라고 할 수 있다. 향후 문제가 발생한다면 기업부채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최근의 경우 2008년 금융위기 이전에 비해 금융 감독 및 규제가 강화돼 금융회사 연쇄도산 등 금융위기가 세계적으로 확산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신흥국 성장 저조, 국제공조 약화 등으로 코로나19 진정 후에도 다소 완만한 회복 예상
다음으로 두 시기의 세계경제 여건도 다르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는 금융위기로 인해 세계경제 성장세가 크게 하락했지만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경제가 높은 성장세를 기록해 세계경제가 빨리 회복할 수 있었다. 중국경제 성장률은 2007년 14.3%에서 2008년 9.7%, 2009년 9.4%로 하락했지만 2010년에 10.6%로 다시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경제가 저성장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07년 8.4%였던 신흥국경제 성장률은 2019년에 3.9%로 하락했고, 같은 기간 중국경제 성장률은 14.3%에서 6.1%로 크게 낮아졌다. 신흥국경제가 그만큼 세계경제의 빠른 회복세에 기여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두 시기의 세계적인 정책공조 여건도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는 G20이라는 새로운 국제공조 틀이 만들어졌고 G20 각국이 확장적인 재정·통화정책, 금융안정정책을 위해 동시에 과감한 조치를 취했다. 이는 세계경제의 빠른 회복에 기여했다. 반면 최근에는 글로벌 보호주의로 다자 차원의 국제공조체제가 약화돼 있다. 즉 코로나19가 빠르게 확산되는 상황에서도 대대적인 금융 및 경제 안정대책이 사실상 개별 국가 차원이나 G7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또한 경제회복 측면에서 2008년 당시에 비해 불리한 점이다.
결론적으로 최근 코로나19가 세계경제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는 점에서 이견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세계경제의 타격 정도와 향후 회복 양상은 기본적으로 코로나19 사태의 확산세, 조기진정 여부, 경제안정을 위한 세계 주요국의 정책 대응에 달려 있을 것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더라도 중국 등 신흥국의 저성장세, 국제사회의 정책공조 약화 등으로 세계경제 회복 속도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 비해 다소 완만해질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