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이하 금융위)가 지난 4월 22일 발표한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기업안정화 지원방안’은 크게 3개 축으로 구성돼 있다. 위기극복과 고용을 위한 기간산업안정기금 조성, 이미 발표한 100조원+α 패키지의 확대, 기업 구조조정을 통한 경영정상화 등이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은 관심이 쏠린 것은 기간산업안정기금의 조성과 운영이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항공업을 중심으로 기간산업의 어려움이 가중된 데다 지원방식 또한 지금껏 국내에는 없었던 방식이기 때문이다. 기간산업안정기금의 조성·운용은 미국의 특수목적기구(SPV)를 활용한 지원제도를 ‘한국화’한 정책으로 평가된다.
고용유지, 고액연봉 제한 등 조건으로 항공·해운 등 기간산업 지원
기간산업안정기금은 코로나19 위기가 대기업으로 번지면서 필요성이 대두됐다. 국가 기간산업이 일시적인 유동성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정부가 어느 정도 구제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에 금융위와 기획재정부, 한국은행(이하 한은)이 머리를 맞대고 정책을 탄생시켰다. 미국에서 연준(Fed)과 재무부가 ‘합작’하는 방식으로 SPV를 설립해 부문별 지원에 나섰던 모델을 참고한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기업지원 역할을 담당하는 산업은행(이하 산은)이 있어 산은 내에 기금을 설치하는 방향으로 정리가 됐다. 재원은 국가보증의 형태로 산은이 채권을 발행해 마련키로 했다. 한은은 산은이 발행한 채권을 매입하는 형태로 유동성을 공급한다. 이 같은 구상을 현실화하기 위해 정부는 20대 국회가 마무리되기 전에 서둘러 국회의 입법·동의 절차를 진행했다. 기금 설치를 위한 「한국산업은행법」 개정안은 4월 29일 국회를 통과했다. 정책을 발표한 지 불과 1주일 만의 일이다.
기간산업안정기금은 국민경제와 고용에 미치는 영향이 큰 기간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운영된다. 정부는 후속 절차를 조속히 마무리하고 6월 중 실제 집행에 나설 계획이다. 기금은 대출자산매수, 채무보증 또는 인수, 사채 인수, 출자(전환사채·신주인수권부 사채 등 포함), SPV·펀드지원 등으로 기업을 지원하게 된다. 산업 특성과 개별기업 수요에 맞게 대출·지급보증·출자 등의 방식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기금지원 대상은 당초 항공·해운·조선·자동차·일반기계·전력·통신 등 7대 주요 기간산업이었으나, 항공·해운업 등 2곳으로 축소됐다. 「한국산업은행법」 시행령의 입법예고 기간 동안 관계부처 의견수렴 과정에서 일부 수정이 있었던 것이다. 다만 정부는 시장 상황과 자금 수요를 보면서 필요한 경우 지원 대상 기간산업을 추가로 지정한다는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총차입금액이 5천억원 이상, 근로자 수가 300인 이상인 항공·해운 업종 기업이 지원대상이다. 지원을 받는 기업은 올해 5월 1일 기준 근로자 수를 최대한 유지하되, 최소 90% 이상을 6개월간 유지해야 한다는 고용유지 조건을 따라야 한다. 만약 이 같은 약속을 어길 때에는 가산금리를 부과하거나 지원자금을 축소·회수하는 조치가 뒤따르게 된다. 이와 함께 기업이 기금의 지원을 받기에 앞서 필요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는지 여부도 전제조건에 포함된다.
정부의 자금이 투입되는 만큼 이해관계자의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한 장치도 마련된다. 임원의 보수 및 배당·자사주취득 제한 등이 주요 방식이 될 전망이다. 금융위는 지원자금을 전액 상환할 때까지 퇴직금·성과급 등을 포함한 고액연봉에 제한을 두고, 배당·자사주취득을 금지하는 방안을 예시로 들었다.
기업이 기금을 지원받고 정상화됐을 때 이익을 정부와 공유하는 방안도 담겨 있다. 일정 조건하에서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기로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지분에 대한 ‘의결권 행사’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의결권 행사는 원칙적으로 제한한다”고 못박았다. 다만 기금의 재산보존을 위해 필요한 두 가지 예외사항을 내놨다. ‘주식의 가치에 중대한 영향을 초래할 수 있는 사항을 결의할 때’나 ‘자금지원을 받은 기업이 구조조정 절차를 신청한 경우로서 기간산업안정기금의 재산을 보존하기 위해 의결권을 행사해야 하는 경우’에 한해 의결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100조원+α 패키지’에 35조원 추가해 소상공인 지원 확대
금융위는 기간산업안정기금과 함께 지난 3월 24일 내놓은 ‘100조원+α 민생·금융안정 패키지’에 35조원을 추가로 확대하는 내용도 함께 발표했다. 여기에는 국내 고용의 한 축을 담당하는 자영업자를 위해 소상공인 지원 대출을 확대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정부는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을 위해 12조원 규모의 소상공인 지원대출 프로그램을 운영했고, 사실상 전액 소진된 상태다. 이에 예비비를 투입해 지원 규모를 늘리고 5월 말부터 10조원 규모의 2차 소상공인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1차 프로그램 운영 당시 발생했던 문제점을 보완해 보증절차를 간소화하고, 시중은행이 보다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도록 했다.
중견·대기업의 자금조달 어려움을 완화하는 차원에서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의 발행 규모도 확대키로 했다. P-CBO는 기업이 채권을 발행하면 해당 채권에 신용보증기금이 신용을 보강해 낮은 금리로 시장에 매각하는 방식의 금융지원 프로그램이다. 일반 대출에 비해 만기가 길고 자금한도도 크다는 장점이 있다.
저신용등급 회사채·기업어음(CP)·단기사채 등을 매입하는 SPV를 설립하는 방안도 있다. 미 연준의 기업어음매입기구(CPFF)의 ‘한국판’ 버전이다. SPV는 정부의 산은 출자 1조원과 산은 후순위대출 1조원으로 2조원을 조성하고, 나머지 8조원은 한은 선순위 대출로 구성된다.
코로나19 확산 이전부터 부실이 있었던 기업을 대상으로는 기업 구조조정으로 정상화를 추진한다는 게 금융위의 기본적인 입장이다.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가 아닌 부실 요인이 누적된 기업에 대해서는 국책은행 중심으로 통상적인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구조조정을 위한 자금지원에 앞서 ‘합리적 고용조정’을 위한 방안을 노사가 함께 마련하도록 요구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