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의 급속한 확산으로 국제사회가 전례 없는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광범위한 국경 폐쇄와 경제활동 위축으로 세계경제가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다. 미국과 중국, EU가 지난 1분기에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으며, 우리나라도 자동차, 철강, 정유 등 주력 업종의 매출과 생산이 크게 위축되는 등 수출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코로나19로 인해 글로벌밸류체인(GVC) 재편, 비대면 산업 활성화 등 산업구조의 변화도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가 촉발한 경제·사회 전반의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모든 일의 기본, 즉 표준을 선점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지금의 위기는 우리에게 좋은 기회일 수도 있다.
‘K방역 3T 국제표준화 추진전략’ 마련
그간 우리나라에서 표준이라는 영역은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분야였다. 무엇보다 산업혁명 이후 거의 모든 국제표준은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 산업 선진국이 중심이 돼 만들었고 우리는 그것을 가져다 쓰기만 하면 됐기 때문이다. 우리의 성장 방식 또한 ‘캐치업(catch up)’, 즉 추종전략 중심이었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국제표준이 어떠한 절차나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그 표준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알지 못해 항상 이들 선진국에 비해 기술발전이 늦을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우리는 표준에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간과해왔다. 자국의 기술을 국제표준으로 만든다는 것은 세계 각국의 기술개발을 발아래에 두고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행히도 우리 바이오산업의 국제표준화는 이미 시작됐다. 코로나19의 신속한 진단을 가능케 한 ‘체외 진단기법’에 대한 국제표준 선점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는 2016년 신규작업표준안(NP; New work item Proposal)을 제안했고, 4년여의 기술논의를 거쳐오던 작업이 이번 우리의 코로나19 대응 과정을 계기로 급물살을 타게 된 것이다. 국제표준화기구(ISO) 의료기기 기술위원회는 한국의 진단검사 절차와 방법을 국제표준안(DIS; Draft International Standard)으로 승인했고, 오는 11월 국제표준(IS; International Standard)으로 제정할 예정이다.
또한 지난 4월과 6월에는 세계 각국이 앞다퉈 벤치마킹하고 있는 ‘자동차 이동형(드라이브스루) 선별진료소 표준 운영 절차’와 ‘도보 이동형(워크스루) 선별진료소 표준 운영 절차’에 대한 신규작업표준안을 각각 제안해 현재 회원국들의 투표가 진행 중이며, ‘생활치료센터 운영 표준모형’도 7월 중에 제안한다.
정부는 우리나라의 이러한 다양한 감염병 대응 모범사례를 국제사회와 공유해 전 세계가 코로나19를 극복할 수 있도록 ‘K방역모델’의 국제표준화를 추진한다. 이를 위해 지난 6월 K방역모델을 세계의 표준으로 만들기 위한 ‘K방역 3T 국제표준화 추진전략(로드맵)’을 발표했다. 로드맵은 ‘검사·확진(Test) → 역학·추적(Trace) → 격리·치료(Treat)’로 이어지는 K방역모델을 ISO 등 국제표준화 관련 기구에 국제표준으로 제안하기 위한 길잡이로 활용된다.
18종의 국제표준화 분야는 3T(Test-Trace-Treat) 단계별로 체계화해 추진된다. 검사·확진(Test) 단계는 감염병을 정확히 진단하고 확진자를 선별하기 위한 진단 시약·장비, 검사기법, 선별진료소 운영시스템 등 6종의 국제표준을 제안한다. 역학·추적(Trace) 단계는 자가격리자 등을 효과적으로 추적·관리하기 위한 모바일 앱, 전자의무기록(EMR), 역학조사 지원시스템 등 4종을 제안한다. 격리·치료(Treat) 단계는 확진자 등을 격리하고 치료하기 위한 생활치료센터 운영,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 체외 진단기기의 긴급사용 승인 절차 등 8종을 제안한다.
표준화 과정 논의 위한 민관 전문가 협의회 구성·운영
또한 국제표준 18종 외에 감염병 관련 연구개발(R&D) 과정에서 얻어지는 데이터, 표준물질 등에 대해서도 표준화해 우리 바이오산업의 혁신역량도 강화할 계획이다. 정부는 이러한 표준화 과정을 논의하고 조율하기 위해 민관 전문가 협의회를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협의회는 국제표준화 정책방향을 결정하는 정책협의회와 국제표준안 검토 등을 위한 실무작업반으로 구성된다.
정책협의회는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 행정안전부, 보건복지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중소벤처기업부, 식품의약품안전처, 특허청 등 관련 부처 공무원과 의료계, 학계, 업계 민간 전문가 등 25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부처별 표준정책 조율, 관련 예산안 협의 등 중요사항을 신속히 논의해 실무작업반 업무를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실무작업반은 ‘검사·확진 →역학·추적 → 격리·치료’로 이어지는 감염병 대응 과정별 표준화를 추진할 100여명의 현장 실무인력을 중심으로 구성되며, 관련 국제표준화기구 기술위원회 동향 공유, 표준안 작성·검토 등을 수행하게 된다.
K방역모델 국제표준화는 과거 국제사회가 에볼라, 신종인플루엔자, 메르스 등 치명적인 전염병 발병 당시에도 내놓지 못한 표준화된 방역모델을 대한민국이 주도해나가는 것이기에 그 의미가 남다르다. 우리의 방역모델이 국제표준이 되면 감염병 확산 방지를 위한 국제보건에 기여하고, 의료강국의 위상을 한층 강화하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미래 먹거리인 바이오산업의 세계시장을 선점하는 기반을 마련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코로나19가 촉발한 경제위기, ‘코로나 뉴노멀’이라는 변화는 과거 그 어떤 위기와도 비교할 수 없는 난제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코로나19를 성공적으로 극복함으로써 다시 희망의 싹을 틔우고 있다. K방역모델의 국제표준화는 우리나라의 글로벌 리더십을 강화하고, 나아가 새로운 국제질서를 주도하는 도약의 발판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K방역모델 국제표준 제정이 완료될 때까지 민관이 힘을 모아 적극 추진해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