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세계화는 두 차례의 급물살을 탔다. 첫 번째 물결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의 것으로 상품교역의 자유화가 급속히 이뤄졌다. 19세기 후반 증기선의 발달과 수에즈 운하 개통, 철도건설 붐 등으로 운송비가 빠르게 하락한 것이 물리적 배경이 됐다. 여기에 사유재산권 및 계약의 자유, 안정적 재정·통화 정책 등 법적·제도적 장치도 강화됐다. 이에 힘입어 교역품목이 확대됐으며 시장개방 대상과 국가도 큰 폭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스페인 독감이 창궐하자 민생이 파탄에 이르고 반기득권 정서가 확산됐다. 이후 대공황이 발생하고 무역장벽과 자본통제가 강화되면서 세계화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시까지 후퇴기를 겪었다.
두 번째 세계화의 급물결은 20세기 후반에 일었다. 교역자유화의 대상이 전통제조업 상품에서 서비스, 지식 및 정보는 물론이고 노동과 자본 같은 생산요소 시장까지 확대됐고,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세계화의 대열에 동참하게 됐다. 2차 물결은 무역정책의 변화에 힘입은 바 크다. 1980년대 중반부터 세계 각국은 교역을 제약하는 각종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을 제거하고 자본과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기 위해 세계화를 국제무대의 표준으로 정착시키려 애썼다.
1980년대 이후 세계화 확산 속 소득불평등과 정치적 양극화 심화 이러한 움직임은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타결과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으로 이어졌다. WTO가 전 세계 무역자유화라는 최종 목표를 위해 자유무역협정(FTA)과 관세동맹 등 다양한 지역통합 협의체 결성을 허용하면서 세계 곳곳에서 지역무역협정이 결성됐다. 결국 1980년대 4.6% 수준이었던 세계 교역 증가율은 1990년대 6.6%, 2000년대 금융위기 직전까지 6.8%로까지 확대됐다. 특징적인 사실은 이 시기에 국제교역의 구조변화가 일어나 상품의 비중이 줄어들고 금융, 법률, 회계, 보험 등 서비스의 비중이 점차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OECD 회원국 사이의 교역에서 서비스의 비중은 1995년 20.3%에서 2015년에는 24.6%로 늘어났다. 자본시장 통합도 상품시장과 유사하게 이뤄졌다. 1980년 544억 달러에 불과했던 전 세계 해외직접투자는 1980년대 후반부터 급증하기 시작했으며 2000년에는 1조3천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사상 최대치인 1조8,700억 달러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러한 신자유주의 흐름 속에서 내부적으로는 커다란 상처가 곪아가고 있었다. 주요국에서 지속적으로 소득불균형이 확대된 것이다. 1980년대 미국과 유럽에서 상위 10%의 소득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35%였으나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에는 미국 45.8%, 영국 42.6%, 독일 38.5% 수준으로 높아졌다. 물론 소득불평등도의 확대를 세계화 탓만으로 보기는 어렵다. 기술이 발전하고 지식 중심의 경제구조로 전환되면서 기술이나 지식의 가치가 높아졌다. 노동시장의 유연화로 인해 노동자에 대한 보호막이 약해진 탓도 있다.
소득불평등도 확대가 경제위기나 이민 문제와 결합되면서 외국상품이나 외국자본, 외국인에 대한 차별과 배타성이 일상적으로 나타나거나 제도화되기까지 했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1999년 시애틀 각료회의가 무산된 일이었다. 시애틀 각료회의는 당초 UR을 대체할 새로운 다자간 무역협상의 의제를 도출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인간사슬로 에워싼 반세계화 시위 등으로 회의 자체가 결렬됐다. 이후 2001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WTO 각료회의에서 다자간 협상을 새롭게 출발시킬 예정이었지만 별다른 진전 없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반세계화 흐름에 기폭제 역할을 했다. 일자리 문제가 첨예한 정치·사회적 이슈로 부각된 데다 미국에서 이민자에 대한 반감이 커졌고, 유럽에서는 난민 문제까지 겹쳤다. 중도세력이 몰락하면서 미국에서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자 간의 정치이념 간격이 벌어지는 정치적 양극화가 나타났다. 이에 따라 외국인이나 소수자에게 배타적 태도를 보이는 극우적 정치수사(rhetoric)에 이끌리게 됐다. 이와 동시에 정부에 대한 신뢰도 크게 하락했다. 1990년대 60%를 넘던 연방정부에 대한 미국인들의 신뢰도가 2001년 IT버블 붕괴, 9.11 사태,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20%대로 급락했다. 한편 유럽에서는 극우정당의 지지율이 높아지고 중도좌파 성향 정당이 몰락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전 수십 년간 유럽에서 사회민주당이 유력한 집권여당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기존 정치권에 대한 반감이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좌파의 몰락은 세계화로 인한 제조업 쇠퇴와도 관련 깊은 것으로 분석된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반세계화 기폭제, 트럼프 당선으로 거대한 흐름으로 자리 잡아
지난 20여 년간 선진국에서 산발적으로 나타났던 반세계화의 움직임이 2016년 영국에서 브렉시트가 가결되고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거대한 흐름이 됐다. 장기간의 저성장과 높은 실업률로 인해 소득불평등이 심화됐고, 이러한 상황에서 무기력한 정치시스템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특히 극단적 포퓰리스트 성향을 보인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 이기주의에 입각해 여러 나라에 대해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을 쌓았으며 이민 문제에서도 상당히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특히 중국에 대한 관세 중과 및 기업 제재는 반세계화라는 측면과 동시에 기술주도권 다툼, 나아가 패권 다툼이라는 성격까지 합해지면서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됐다.
이러한 가운데 올 초부터 코로나19의 대유행이 세계화를 또 한 번 강타하고 있다. 전반적인 수요위축 속에서 자국고용 및 산업경쟁력 유지를 위한 주요국의 보호주의가 확산될 전망이다. 새로이 들어서는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다자간 통상체제를 강화하면서 중국의 굴기를 억제하기 위해 공급망의 탈중국화를 본격화할 가능성도 있다. 주요국의 국내적 갈등에 국가 간 복잡한 이해관계, 코로나19 대유행까지 겹쳐 향후 세계화의 모습을 전망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되고 있다. 다만 상대적으로 분명한 사실은 양상은 변할지라도 당분간 탈세계화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