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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생산성의 시대에서 효율성의 시대로···경제의 룰이 바뀌고 있다
이명호 (재)여시재 기획위원 2020년 12월호

디지털경제(Digital Economy), 낯익으면서도 여전히 모호한 개념이다. 미국 MIT 미디어랩 설립자인 니콜라스 네그로폰데가 1995년에 『디지털이다(Being Digital)』라는 책을 낸 이후에 ‘디지털’은 흔히 접할 수 있는 단어가 됐다. 광고에 등장하는 디지털이라는 단어는 첨단의 상징이었다. 디지털경제(전자상거래 또는 인터넷경제) 역시 2000년 닷컴버블 때에 핫한 주제였다. 그래서 20년이 흐른 지금은 식상한 단어로 느껴진다. 그러나 디지털의 특성과 디지털경제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범용기술, 엔진에서 디지털로 전환···코로나19로 그 속도 빨라져
디지털경제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명확한 정의가 없다. ‘디지털 기술에 기반한 경제활동의 집합’으로 정의되지만, 어디까지 디지털경제로 포함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그래서 OECD에서는 디지털경제를 측정하는 국제표준을 마련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몇 년째 진행 중에 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등의 보고서에서는 2017년 기준으로 디지털경제의 비중을 전 세계 GDP의 4.5~15.5%, 미국은 6.9~21.6%, 중국은 6.0~30.0%, 한국은 7.5~11.9%(약 127조~200조 원, 2018년) 수준으로 추정했다. 추정치의 폭이 무려 2~5배에 달한다. 크게 잡으면 제조업 비중 정도다. 디지털경제의 규모가 고무줄처럼 늘어나는 것은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범용기술(general purpose technology)이 된 디지털 기술의 특징에 따른 것이다. 범용기술은 많은 경제 분야에 영향을 주는 모태가 되는 기술로서, 일반 가정의 삶의 방식뿐만 아니라 기업과 사회의 운영방식에도 큰 변화를 가져오는 근본적인 기술을 의미한다.
산업혁명의 구분은 범용기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1차 산업혁명은 증기기관, 2차는 전기, 3차는 전자가 범용기술이었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의 범용기술은 디지털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1~3차 산업혁명의 범용기술은 엔진 기술이라고도 한다. 증기기관에서 전기모터로 발전했지만 회전력을 얻는 엔진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산업혁명 시대에 등장한 많은 제품에는 엔진이 기본적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산업시대는 엔진에 기반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엔진이 사라지고 있다. 전축에서 CD 플레이어로 바뀌어도 엔진(모터)은 있었으나, MP3가 등장하면서 엔진이 사라지고 디지털 메모리 방식으로 바뀌었다. 스마트폰으로 모든 생활과 경제활동이 연결되고 있다. 엔진에 기반한 산업경제 사회에서 디지털에 기반한 디지털경제 사회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이번 코로나19 팬데믹이 강제한 ‘사회적 거리두기’는 몇 년이 걸릴 디지털 전환이 몇 주, 몇 달 만에 일어나게 했다. 온라인 활동이 늘고, 비대면 온라인 원격근무(재택근무)가 일반화됐다. 아날로그 시대의 종언과 디지털 시대의 선언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디지털은 아날로그에 대비돼서 설명된다. 생산의 3요소를 토지, 자본(설비·공장), 노동(자)이라고 한다. 모두 아날로그다. 아날로그는 유형의 물체이기 때문에 경합성과 배제성을 가진다. 하나를 더 만들려면 그만큼의 아날로그가 더 들어가야 하고, 내가 소유하면 다른 사람은 못 가진다. 그래서 아날로그 재화나 원료를 사용하려면 먼저 소유해서 자신의 통제하에 둬야 한다. 유한한 재화를 두고 경쟁하는 구도다. 그런데 디지털은 이와 전혀 성격이 다르다.
디지털은 비트(bit) 또는 0과 1로 표현되는데, 무형의 실체다. 그래서 무한으로 복제해도 추가 복제 비용이 제로에 가깝다. 월 이용료만 내면 무제한으로 디지털 음악, 동영상서비스(구독경제)가 가능한 이유다. 편당 비용을 받는 것은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사고방식의 비즈니스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하루는 24시간이기 때문에 그 이상으로 소유하고 소비할 수도 없다.

모든 사람이 도전 가능한 시대 열었지만 소수에 불과한 승자의 영향력은 더 커져
이와 같은 디지털 기술은 5가지 경제활동 비용(cost)의 감소(lower, zero)를 가져오고 있다. 거래처 및 정보 검색 비용, 디지털 제품 및 서비스의 복제 비용, 마케팅 및 글로벌 유통 비용, 추적(데이터 기반 맞춤형 서비스) 비용, 평판 검증 비용이다. 이들은 기존 경제활동을 효율화시키고, 새로운 디지털 상품 및 서비스의 기술적 기반이 되고 있다. 디지털 플랫폼 기반의 산업 간 융합이 가속화되고 있다.
또한 디지털은 아날로그에 비해 쉽게 변형될 수 있고 비용도 싸다. 산업시대에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이 비용이 많이 들었기 때문에 한정된 전문가에게만 허용됐다. 그러나 1인 미디어(유튜버), 1인 기업가(앱 개발자)와 같이 디지털 시대에는 누구나 시도할 수 있게 됐다. 1명이 도전하고 9명이 따르는 시대에서 10명이 도전하고 1~2명이 대박을 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개성과 창의성, 도전이 중요한 시대가 됐다.
잠재됐던 디지털의 본성이 드러나면서 디지털경제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승자독식, 인공지능(AI)에 의한 일자리 감소, 보호받지 못하는 플랫폼 노동, 글로벌 거대 플랫폼의 독점, 디지털세, 데이터 주권 등의 이슈와 갈등이 커지고 있다. 모든 사람이 도전이 가능한 시대를 열었지만, 승자는 소수에 불과하고 승자의 영향력(시장 지배)은 더 커졌다. 산업시대에 도입된 ‘고용’을 기준으로 한 사회보장제도도 디지털경제 시대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 기본소득, 전 국민 고용보험, 소득보험 논쟁이 등장하는 이유다.
디지털, 디지털경제의 미래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디지털은 생산성의 시대에서 효율성의 시대로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공급의 측면에서 엔진은 유용한 재화를 풍부하게 생산할 수 있도록 해줬다. 그러나 이제는 더 많이 생산하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아니다. 디지털의 상징적 기술은 CPU(두뇌에 해당하는 연산장치)다. 계산 시간을 줄이는 것이 좋은 기술이다. AI는 인간의 노동시간을 줄여주고 인간의 인지 능력을 증강시켜주고 있다. 더 적게 일하고, 여유 시간을 이용한 다양한 (디지털) 활동의 증대를 디지털은 요구하고 있다. 경제의 룰이 바뀌고 있다. 생각도 바꾸고 제도도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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