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화성에 있는 화장품 업체는 각종 설비가 작동하는 현황을 제어실에서 실시간으로 관찰한다. 원료 배합 시에도 각 원료의 무게를 재는 과정을 바코드로 만들고 이를 단말기로 읽어 들인다. 이 정보는 창고의 원료관리 시스템과 연결돼 있다. 과거에는 불량품이 나오면 그 원인이 원료의 칭량(秤量)에 있었는지 제조과정에 있었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지금은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를 명확하게 식별할 수 있다.
# 건설안전 솔루션을 제공하는 부산의 한 스타트업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으로부터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이전받아 건설현장안전 솔루션 제공에 응용했다. 현장 근로자, 중장비, 자재에 센서를 부착해 도면 위에서 장비, 자재, 작업자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시시각각 데이터를 수집하고, 장비 충돌 등 안전사고를 방지하는 솔루션을 건설업체에 제공한다. 거리뿐만 아니라 운동방향이나 속도 등을 센서가 종합적으로 측정하므로 불필요한 경고를 없애 안전장치의 경고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 사고확률을 현저히 낮췄다.
AI 활용하는 방식으로 사업모델 변화···데이터 문해력 요구되는 시대 오고 있어
디지털 기술은 생산물의 종류, 생산방식, 기업들이 돈을 버는 방식인 사업모델에도 단절적 변화를 가져왔다. 스마트폰, 자율주행차, 유튜브 강의, 온라인 게임, 웹툰 등이 디지털경제 시대 이전과 이후를 구분하게 해주는 생산물이라면 유튜브, 페이스북, 애플스토어, 아마존이나 쿠팡 같은 온라인 쇼핑몰, 네이버, 카카오, 우버와 같은 플랫폼은 디지털 시대를 맞아 사업모델이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는 전형적 기업들이다.
많은 기업이 중간재를 조달하기 위해 종래에는 기업 내 생산에 의존했다. 하지만 지금은 핵심역량이 아닌 한 대부분 외주에 의해 조달한다. 외부기업과 협력하는 방식도 모듈화를 통해 표준화를 하고 협력파트너를 구한다. 이러한 모습은 디지털 기술이 생산활동에 수반하는 거래비용에 변화를 가져와 생산방식이 변화한 측면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올해 2월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해 와이어링 하니스가 공급되지 않자 완성차 생산라인이 멈춰선 것과 같은 상황이 생긴 이유이기도 하다.
부가가치가 높은 생산활동도 변화했다. 단순히 가공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AI)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사업모델을 바꾸는 것이 장기적으로 부가가치 창출을 지속할 수 있게 하는 것으로 드러나자 다수의 기업이 단기적 이익은 불문하고 데이터 축적을 통해 부가가치 생산 잠재력을 높이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플랫폼으로 거듭나고자 많은 기업이 막대한 단기 적자에도 불구하고 고객과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일의 세계 변화는 신상품 출현, 상품 생산과정 변화, 새로운 사업모델 출현 모두와 관련이 있다. 이로 인해 각종 직업의 직무 특성이 현저히 변화를 겪고 있다. 제조공정의 전후방에서 앱 개발자, 데이터 과학자, 데이터 분석가, 사이버보안 전문가 등과 같은 백오피스 ICT 서비스 일자리가 증가하는 동안 공장 안에서는 점점 더 적은 수의 작업자만 필요로 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사람이 수행하던 특정 범주의 작업이 대거 기계, 로봇, AI로 이양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많은 사람의 직무에서 데이터 고도화에 필요한 데이터 문해력(literacy)이 요구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생산방식과 직무내용 변화는 소득 및 직업 안정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새로이 도입된 디지털 기술이 기존 작업자의 작업을 대체 또는 보완하는지, 노동자가 새로운 기술과 협업할 수 있는 적응력을 갖췄는지에 따라 일자리 기회와 소득 기회가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 경영환경이 급변하고 기업의 수명이 짧아지는 현상과 맞물려 적응력에 따라 일부 근로자는 일자리를 잃을 수 있고 다른 근로자는 높은 생산성 증가의 혜택을 누린다. 적응성은 데이터 문해력 및 데이터 가공능력과 관련성이 높아지고 있다.
데이터산업이 활성화될 시장 제공해야
급변하는 기업환경에 따라 기업의 수명이 짧아지고 노동이동도 빈번해지고 있다. 더불어 다양한 종류의 고용계약과 함께 종속적 자영업자로 불리는 노동시장 참여자가 늘어나고 있다. 그로 인해 임금근로자자영업자의 이분법에 의해 설계된 노동법과 사회보장제도가 한계를 노정하며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가 확대되고 있다.
디지털경제의 진화에 장기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노동규범에서도 변화가 필요하다. 기존의 노동법체계를 획기적으로 개혁해서 노동시장 참여자 전체를 염두에 둔 ‘노동계약법’을 도입하고, 사업소득세를 내지만 새로이 정의된 노동권의 일부를 보장받고 사회보장에 대한 적절한 의무를 부담하고 혜택도 받는 노동시장 참여자가 가능하도록 관련 법과 제도를 바꾸는 공론화를 시작해야 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디지털경제의 진화와 기업 생태계 변화에서 가장 크게 늘어나고 있는 숙련수요는 데이터 수집·저장·분석·교환 관련한 숙련이다. 이를 위한 인력양성은 단순히 훈련과정의 개설이나 데이터 구축 사업으로 충족되기 어렵다. 데이터 수집·저장·가공과 고도화를 촉진하는 데이터 응용시장을 제공하고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도로·교량·문화재 등의 보수를 위한 대규모 기계학습 자료 구축과 그에 의거해 보수공사를 진행하는 프로젝트, 법률서비스 고객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알고리즘을 사용해 대량의 데이터와 규정을 통합하는 기계인 AI 변호사와 함께 일하는 법률서비스 허용, 기계학습에 기반해서 대량의 의료정보와 지식을 제공하는 서비스 허용, 모빌리티서비스와 관련 데이터 축적 허용 등 데이터산업이 활성화될 시장을 제공해 데이터 수집·저장·가공과 고도화를 할 수 있는 인력이 여러 분야에 확산되는 일대 계기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디지털 기술의 확산으로 과거 소비자보호나 공정경쟁을 위한 요건으로 정착된 인증 허가 등록제도가 더 이상 필요 없거나 다른 접근법을 필요로 하고 있다. 운송·법률·의료·금융 서비스 등에 적용되는 기존 인허가 시스템은 소비자보호와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기 위해 정부 규제기관에 의해 도입됐다. 하지만 이제는 사안에 따라서는 디지털 플랫폼이 정부 개입보다 더 효과적인 대안을 제공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디지털 전환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이해 관계자의 관심을 조화시키고 새로운 경쟁정책 규범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이 과정에서도 데이터 수집·저장·가공과 고도화 계기를 제공하기 위한 고려를 적극적으로 감안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