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기업의 국가 간 소득이전을 통한 세원잠식 전략은 전 세계적인 조세의 통합적 감소와 조세의 주권침해를 가져와 국제사회에 경종을 울렸고, BEPS(Base Erosion and Profit Shifting; 다국적 기업의 소득이전을 통한 세원잠식) 프로젝트의 계기가 됐다. OECD는 2015년부터 BEPS 프로젝트 Action 1을 통해 경제의 디지털화에 따른 조세 문제 해결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구글 등 글로벌 IT 기업은 물리적 사업장을 시장소재지에 두지 않아 시장소재지에서 발생한 이익에 대해 법인세 과세가 어려운 ‘가치창출과 과세권 배분의 불일치’를 불러왔고, 무형자산을 저세율국으로 이전한 후 시장소재지에서 로열티 등 비용을 저세율국에 지급해 시장소재지의 세원을 잠식하는 ‘공격적 조세회피’ 문제를 심화시켰다. 이에 플랫폼 사업자(글로벌 IT 기업)가 서비스 국가(시장소재지)에서도 적정 수준의 세금을 내야 한다는 취지로 디지털세 도입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상황이다. 디지털세는 일명 ‘구글세’로 불리며 특정 국가 내 고정사업장 유무와 상관없이 매출을 발생시키는 글로벌 IT 기업들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기 위해 고안된 조세로서, 전통적인 제조업과 IT산업 간의 과세형평성 문제 해결이 논의의 핵심이다.
EU, 디지털세 도입까지 임시 조치로 디지털서비스세 제안
디지털세 도입 논의가 가장 활발한 곳은 유럽연합(EU)이다. 2018년 3월 EU 집행위원회가 디지털세 도입을 제안하면서, 디지털세 도입까지 상당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므로 그 기간 동안의 임시적 조치로서 디지털서비스세(digital services tax) 도입을 추가적으로 제안했다. 디지털서비스세는 기업에 부과하는 소비세로서 이용자들이 가치창출에 기여한 장소에서 디지털 활동 매출액에 과세하는 것이며, 이에 대한 EU 전체 합의는 실패했지만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은 개별적으로 디지털서비스세를 도입했다. OECD와 G20는 2021년을 목표로 디지털세에 대한 권고안을 마련하기로 합의했으며, 논의 초기에 IT산업만 과세범위에 포함했던 것과 다르게 제조업을 포함한 소비자대상사업(consumer-facing business)까지 그 범위를 확대해 새로운 논란이 발생했다. 2021년 중반 OECD의 디지털세 과세 원칙이 확정될 경우 국외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내 IT 기업은 물론, 국외 소비자들에게 판매되는 자동차, 휴대폰, 가전 등을 제조하는 국내 제조 기업도 디지털세의 부담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OECD·G20는 2015년부터 130여 개국이 참여하는 BEPS 이행체계를 통해 경제의 디지털화에 따른 조세 문제의 해결방안을 논의 중이며, 2021년을 목표로 디지털세에 대한 권고안을 마련하기로 합의했으므로 향후 3~4년 이내에 디지털세가 도입될 것으로 전망된다. OECD·G20 포괄적 이행체계(IF; Inclusive Framework)는 당초 올해 말까지 최종방안을 합의하겠다고 밝혔지만, 지난 3월 발생한 코로나19 팬데믹 등을 고려해 합의시점을 2021년 중반으로 연기한 상황이다. 2019년 10월 OECD 사무국은 적용범위를 디지털서비스사업 외에도 광범위한 소비자대상사업으로 확대하고 매출액 7억5천만 유로(한화 약 1조 원) 이상의 글로벌 기업에 적용하는 방안을 제안해 올해 1월 OECD·G20 IF 총회에서 디지털세의 기본 골격에 대한 합의 및 승인이 이뤄졌다.
올해 10월 OECD·G20 IF는 디지털세 장기대책 중간보고서를 발표하면서 현재까지 진행된 세부사항, 즉 적용대상을 업종과 규모 기준으로 분류하는 것과 세원잠식방지 규칙(글로벌 최저한세) 도입 등을 포함시켰다. 해당 업종은 ‘디지털서비스사업’과 ‘소비자대상사업’을 구체적으로 정의했고, 규모는 ‘글로벌 매출액’과 ‘국외 적용업종 매출액’ 등 2가지 기준을 적용하기로 했다. 다만 아직까지 과세정보 신고, 과세 대표국, 사업소재국과의 과세 분배 등과 관련한 구체적인 정보가 부족한 상태이기 때문에 OECD·G20 IF는 공청회 등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 추가 논의를 계속할 방침이다.
OECD안, 소비자대상사업까지 확대···디지털서비스사업과 구분해 과세하도록 노력해야
OECD·G20 IF의 중간보고서상 소비자대상사업은 통상 소비자에게 판매되는 재화·서비스 공급업으로 정의되고, 기업 간 거래(중간재·부품 판매업, B2B)나 광업·농업, 원재료 판매업, 금융업, 운송업 등은 디지털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는 다행히 우리나라의 주력사업 중 하나인 ‘반도체’에 디지털세가 부과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디지털세 논의의 핵심은 글로벌 IT 기업들의 조세회피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시장소재지에 고정사업장이 없더라도 세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OECD가 디지털사업(digital business)과 전혀 관련이 없는 소비자대상사업을 포함해 법률을 제정하려고 하는 것은 디지털세의 입법 목적에 배치되는 접근이다. 무형자산을 주력으로 하는 IT산업과 달리 소비자대상사업은 물리적 실체가 존재하는 유형자산을 주력으로 하고, 현지에서 생산된 제품의 판매에 따른 해외 영업이익에 대해 실질과세원칙에 따라 적정 세금이 부과되고 있어 조세회피가 문제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논의과정 중 과세대상이 디지털서비스사업뿐만 아니라 제조업을 포함한 광범위한 소비자대상사업으로 확대돼 해당 사업을 영위하는 매출액 7억5천만 유로(약 1조 원) 이상의 글로벌 기업에도 디지털세를 적용하기로 잠정합의된 것이다. 소비자대상사업에는 휴대폰, 가전, 자동차 등 우리나라 글로벌 기업의 주력사업이 대거 포함돼 있어 내년 권고안이 마련될 경우 국내 주요 기업들은 해외에서 디지털세를 추가적으로 부담하게 될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디지털세 부과에 따른 세금의 총량이 변하지 않을 수 있지만, 국내에서 활동하는 외국 기업이 내는 디지털세보다 우리나라의 글로벌 기업이 해외에서 부담하는 디지털세가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되며, 우리나라 기업이 해외에서 부담하는 디지털세는 외국납부세액으로 공제를 받는 만큼 국가의 세수 손실로 이어질 것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결국 디지털세 적용대상이 소비자대상사업까지 확대된다면 국익 측면에서 디지털서비스사업과 소비자대상사업을 구분해 소비자대상사업을 낮은 세율로 과세하는 방안이라도 도입되도록 민·관이 협력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