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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새로운 4년이 시작됐다
이재철 매일경제신문 국제부 차장 2021년 01월호



조 바이든 시대가 열렸다. 4년 전 정치 신인이었던 도널드 트럼프의 등장으로 극단적 혼란을 경험한 세계는 이제 47년의 정치 경험을 가진 백전노장의 출현에서 안정과 통합을 추구하는 리더십을 기대하고 있다. 최악의 팬데믹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전문가의 목소리를 경청하며 합리적이고 예측 가능한 대안을 제시했던 그가 경제와 외교, 안보, 글로벌 공동대응 이슈에서 같은 문법으로 얘기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개별 현안에서 트럼프 시대와는 다른 불확실성 출현 예상
바이든 당선인이 초대 내각과 백악관 참모 인선에 오바마 행정부 출신 관료들을 대거 영입하면서 미국 사회에서는 오바마 2.0 행정부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지만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워싱턴의 ‘고인물’로 취급받아오다 민주당 경선을 뚫고 마침내 대권을 차지한 그의 승부사적 기질을 한국이 얕봐서는 안 된다. 양극단의 오바마·트럼프 행정부에서 장점만을 취합해 국민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정책을 제시하고 미국의 글로벌 위상을 극대화하는 행보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평생을 ‘중도 리버럴’로 살아온 바이든이 대중국 정책에서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을 능가하는 강공책을 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양극단에서 구축된 정치적 성과물을 자신의 것으로 바꿔 흡수해도 크게 어색해 보이지 않는 게 그의 장점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출현이 글로벌 경제·외교·안보 생태계에 전환적 모멘텀이 될 것임은 분명해 보이지만, 개별 현안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양자 혹은 다자간 이해관계에 따라 트럼프 시대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불확실성이 출현할 수밖에 없다.
바이드노믹스의 핵심인 재정·통화 정책에서는 얼마 전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평가처럼 코로나19발 경제 쇼크를 정상화하기 위해 상당 기간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면서 확장적 재정지출 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바이든 당선인 역시 재닛 옐런 재무장관 지명자 등 차기 행정부의 경제팀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취임 전 의회에서 처리될 경기부양책에 대해 “이는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며 보다 공격적인 부양책을 마련할 계획임을 내비쳤다. 옐런 재무장관 지명자는 “지금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경기침체를 초래하고 더 큰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재정지출의 확대는 시장의 유동성 증가로 이어져 달러 약세를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 그의 당선 한 달 뒤인 12월 초 이미 원달러 환율이 1,100원 아래로 떨어지며 한국의 수출 기업들에 비상이 걸렸다. 아직 바이든표 통화·재정 부양책의 조합 모델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기업들은 한국 정부가 적정 환율 대응이라는 난제를 어떻게 풀어낼지 주시하고 있다.
통상 부문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고착화한 고립주의를 깨고 다자주의 무역질서를 복원하는 방향성이 설정됐다. 그러나 바이든 당선인이 트럼프 행정부의 대표 정책 브랜드인 ‘아메리카 퍼스트’와 이음동의어에 해당하는 ‘바이(Buy) 아메리카’와 ‘메이드 인(Made in) 아메리카’를 내걸고 있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통상 문제를 국가 안보와 결부시키는 접근법은 계속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미국 제품 구매에 대규모 정부 예산을 투입하는 바이 아메리카 정책과 현지 생산을 유도하는 메이드 인 아메리카는 미국 기업의 리쇼어링(reshoring) 움직임과 더불어 한국 기업에도 대미 투자 부담으로 연결될 전망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 기조에 맞춰 우리 기업들이 대미 투자를 확대할수록 국내 신규 투자와 일자리 확대 여력은 감소할 수밖에 없다. 

외교안보 분야에서 전문가 의견 중시하는 보텀업 방식 취할 듯
환경 부문은 바이든 당선인이 오는 2050년까지 미국경제를 ‘탄소 제로’로 바꾸겠다며 총 5조 달러(약 6천조 원, 정부·민간 투자 합산)의 천문학적 친환경 투자를 예고하고 있다. 셰일가스로 대변되는 트럼프 행정부의 화석에너지 정책과 달리 친환경 에너지 분야에 거대한 연방정부 예산을 투입할 태세다. 바이든 행정부와 한국 정부가 협력 사업을 모색한다면 우리 기업의 북미시장 진출 및 확대 계획에 가속도가 붙을 수 있다. 이와 관련해 기획재정부는 향후 5년간 디지털 및 그린 뉴딜 분야 기업을 상대로 100조 원에 이르는 대출·투자·보증지원을 예고한 상황이다.
한반도 외교안보 전략에서 바이든 당선인이 그리는 큰 그림에도 주목해야 한다. 그는 미국 우선주의와 고립주의를 폐기하고 다자주의 외교로 복귀할 것임을 분명하게 천명했다. 자신의 즉흥적 결정을 중시한 톱다운(top-down) 방식의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바이든 당선인은 외교 사령탑으로 임명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지명자를 중심으로 관료 출신들의 전문 의견을 중시하는 보텀업(bottom-up) 방식을 철저히 취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에 따라 워싱턴의 아시아·태평양 전문가들이 한국을 상대로 동맹 이익을 극대화하고 인도·태평양 지역 차원에서 전체 동맹의 가치사슬을 강화하는 프레임워크로 북미 관계의 새로운 방향성이 제시될 것이다. 
이와 관련해 블링컨 지명자는 과거 북핵 문제의 해법으로 이란식 협상 모델을 언급한 바 있다. 핵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단계적 목표를 설정하고 포괄적 감시체제를 구축한 뒤 이행 여부에 따라 대북제재를 완화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을 공론화할 경우 북한을 상대로 중국의 중재 역할 등 레버리지가 확장될 가능성이 크다.
매일경제는 최근 세종연구소와 함께 워싱턴 정가에서 활동하는 한반도 전문가들을 상대로 ‘바이든 시대의 한미 동맹’ 웨비나를 개최했다.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수석차관보 출신의 에번스 리비어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바이든 당선인은 지난 4년간의 남북미 외교 성과를 ‘처참한 실패’로 규정한 상태”라며 “향후 대북 협상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에 제재 완화 등 보상을 제공할 수 있지만, 이는 북한이 복구 불가능한 비핵화 조치를 취해야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바이든 당선인이 북한에 상호 호혜적인 로드맵을 분명히 제시할 것”이라며 “북한이 인내를 가지고 이를 기다리고 진지한 조치를 취하면 확실한 인센티브가 제공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4년 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당선되고 한 달 뒤인 12월 초 한국 집권여당은 청와대와 공조해 특사단을 꾸리고 트럼프 인수위원회와 접촉했다. 문재인 정부와 집권여당 역시 4년 전처럼 신속하게 특사단을 구성해 바이든 인수위원회를 만나 경제·외교·안보 분야의 상호 관심과 미래 기회를 모색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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