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보스포럼에서 발표된 「2021년 세계 위험 보고서(The Global Risks Report 2021)」는 코로나19와 기후위기를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위험으로 꼽았다. 극단적인 기상이변, 북극의 해빙, 해수면 상승, 생물다양성 상실이 과학자들의 비관적인 전망보다 더 심각한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어서 인류의 대응도 ‘탄소중립’ 외에는 대안이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2018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지구평균기온 상승을 1.5도 이하로 안정화해야 하며, 이를 위해 2050년까지 대기 중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들 것을 권고했다. 탄소중립은 인류가 화석에너지로부터 30년 안에 독립하는 것을 의미한다. 국제사회가 이 엄청난 권고를 받아들이는 데는 2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1997년 채택한 교토의정서가 발효되는 데만 8년이 걸린 것에 비하면 놀라울 만큼 빠른 속도다.
기후위기 대응, 주류 경제체제로 진입···‘탄소’가 통상의 새로운 기준
2019년 12월 유럽연합(EU)은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그린 딜’을 발표하고 실행에 들어갔고, 2020년 중국·한국·일본이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2021년 미국은 파리협정 복귀와 탄소중립, 2035년 전력 부문 탈탄소화를 추진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존 케리 전 국무장관을 대통령 기후특사로 임명하고, 기후팀을 꾸려 온실가스 감축에 집중하고 있다.
탄소중립은 새로운 세계체제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세계 경제와 사회를 움직이는 새로운 기준이 되는 것이다.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기후변화협약이 채택된 이후 30여 년 만에 기후위기 대응이 주류 경제체제로 진입한 것이다.
전 세계 무역에서 ‘탄소’라는 새로운 기준의 등장은 탄소국경조정제도, 탄소발자국, RE100(기업이 100% 재생가능에너지를 조달해 생산활동을 한다는 자발적 약속), 탄소세 등으로 작동하고 있다. EU는 탄소국경조정제도를 통해 온실가스 배출규제가 약한 국가로부터 수입한 상품에 비용을 부과하는 방안을 설계하고 있다. 프란스 팀머만 EU집행위 부위원장은 “탄소국경조정은 산업의 ‘생존 문제’이며, 경쟁 왜곡과 탄소 누출로부터 EU를 보호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미국도 바이든 정부에서 탄소국경조정요금을 공약으로 내건 바 있다.
탄소국경조정제도의 도입은 기업이 제품생산의 모든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발자국을 계량하고, 투명하게 검증받는 시스템을 갖추도록 강제할 것이다. 통상의 새로운 기준으로 ‘이 제품에 포함된 탄소발자국은 몇 그램인가요?’를 묻고 따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상품 무역에서 상품의 질과 가격이 중요했다면, 이제 온실가스를 얼마나 배출하고 생산했는지가 추가되는 것이다. 어떠한 에너지를 사용해서 제품을 생산했는지를 따지는 시대가 온 것이고, 이로 인해 통상정책과 에너지정책은 긴밀하게 연결될 수밖에 없다.
탄소중립 시대에 화석에너지 인프라는 빠른 속도로 좌초 자산이 될 가능성이 크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첫날 행정명령을 통해 ‘키스톤 XL 파이프라인 프로젝트’를 백지화했다. 이 프로젝트는 캐나다 앨버타주에서 미국 텍사스 주까지 송유관으로 하루 80만 배럴의 원유를 수송하는 9조 원 규모의 사업이다. 국내에서도 SK가스와 포스코에너지 사례가 있다. 2017년 12월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SK가스는 당진에 지으려던 석탄화력발전소를 가스복합화력발전으로 전환하고, 당진에코파워 부지에 석탄발전소 대신 태양광발전소를 만들었다. 같은 시기 포스코에너지는 삼척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밀어붙였다. 현재 2025년 완공을 목표로 공사 중이지만 가동률 하락이 예상되고 금융기관들이 투자 중단 의사를 밝히고 있다. 불과 3년 사이에 석탄발전소 수익성과 금융기관의 투자방향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또한 바이든 정부는 연방기관의 화석연료 보조금 폐지와 400억 달러에 달하는 화석연료 보조금 종료 법안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국제적으로도 2009년 G20 국가가 약속했던 화석연료 보조금 폐지 논의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한다. 올해 탄소중립을 위한 기후외교는 바이든 대통령이 4월 22일 지구의 날에 개최를 제안한 세계기후정상회의, 6월 영국에서 열리는 G7 정상회담, 10월 이탈리아에서 예정된 G20 정상회의, 11월 영국 글래스고의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까지 긴박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탄소중립 준비 부족한 한국
탈탄소경제체제 전환으로 접근해야
탄소중립 시대에 에너지 전환은 과감한 속도를 내게 될 것이다. 2020년 한 해 중국에서는 풍력과 태양광 설비가 각각 72GW, 48GW 늘어났다. 바이든 대통령은 임기 동안 기후위기 대응에 2조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에너지효율, 해상풍력, 태양광, 바이오, 전력저장장치와 스마트전력망 산업의 성장이 예상된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 속에서 한국은 매우 도전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 한국의 무역 규모는 세계 7위이고, 무역의존도는 G20 국가 중 독일 다음으로 높다. 주요 수출품은 철강, 반도체, 자동차, 석유화학제품 등으로 에너지다소비 산업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신탄소통상 시대에 적응하지 않으면 경제적 타격은 불가피하다. 문제는 탄소중립을 위한 준비가 너무 안 돼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 11위, 이산화탄소 배출량 7위, OECD 회원국 중 온실가스 배출 증가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전력 중 석탄발전 비중은 40%를 넘고, 재생가능에너지 비중은 OECD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지금 상태로는 변화를 따라가기도 벅차다.
왜 탄소중립인가? ‘생존’을 위해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도 이내에서 안정화하려면 반드시 달성해야 할 목표이기 때문이다. 왜 탄소중립인가? 문재인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세계적으로 요구되는 새로운 경제·국제 질서”로, 우리가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하지 않으면 경제적으로도 ‘생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2021년 한국사회는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마련, 문재인 정부 임기 내에 2030 감축목표 상향 조정, 온실가스 감축과 그린 뉴딜의 성공적인 집행이라는 숙제를 동시에 실행해야 한다. 2021년 탄소중립을 분명한 정부의 목표로 설정하고, 실행체계를 구축하며, 법·제도 기반을 마련해 하루빨리 탈탄소경제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정부는 온실가스를 줄이는 개별사업이 아니라 조세금융 정책, 에너지가격과 시장정책, 산업구조 개편과 같은 탈탄소경제로의 틀을 재구성하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탄소중립은 ‘기후위기’와 ‘신탄소통상 시대’의 생존전략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