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범유행과 맞물려 ‘아프면 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상병수당 도입 논의가 한창이다. 상병수당은 부상과 질병으로 인해 경제활동이 불가능한 경우 치료와 회복에 집중할 수 있도록 소득 손실을 보전하는 사회보장제도를 말한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보편적 건강보장의 관점에서 의료접근성 향상, 의료서비스 질 제고, 의료비 절감 등을 위해 노력했고, 국민건강보험을 통해 전 국민에게 저부담·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그러나 치료 중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포괄적 소득보장제도는 아직 완비하지 못했다. 산재보험은 업무상 사고 및 질병에 관한 소득지원 제도이고, 고용보험과 (보충적 고용안전망으로 도입된) 국민취업지원제도는 실업을 대비한 소득보장제도다. 근로자가 업무와 관련 없이 사고를 당하거나 병에 걸린 경우, 또는 근로자가 아닌 취업자가 아픈 경우 소득을 보전하는 상병수당제도는 여전히 부재하다. 아픈 근로자가 실직을 걱정하지 않고 치료와 회복에 전념하는 데 필요한 병가제도 역시 아직 법제화되지 않았다.
상병수당은 질병으로 인한 빈곤 예방에 효과적이다. 아파도 실직과 소득상실의 두려움 때문에 치료시기를 놓쳐 질병을 악화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상병수당제도는 사람들이 걱정 없이 병원을 찾고 더욱 빨리 일터로 돌아오게 할 수 있다. 병이 깊어지는 것을 막아 추가 의료비 지출을 줄이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아픈 몸을 끌고 억지로 출근해 노동생산성을 떨어뜨리는 것도 방지할 수 있다. 전염병 감염 위험을 낮추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OECD 회원국 중 상병수당제도와 병가제도
둘 다 없는 나라는 우리나라뿐
상병수당은 국제적으로 널리 수용된 사회보장제도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보편적 건강보장을 위해 질병 발생 시 의료보장과 소득보장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권고하며, 국제노동기구(ILO)는 상병수당의 국제기준을 정립했다. 1883년 독일에서 최초 도입한 이래 대부분의 유럽 복지국가들은 100년 넘게 상병수당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OECD 37개 회원국 중 공적 상병수당제도를 갖추지 못한 국가는 미국(뉴욕과 캘리포니아 등 일부 주는 도입)과 우리나라밖에 없다. 게다가 상병수당제도와 (무급)병가제도가 모두 없는 나라는 우리뿐이다.
상병수당의 법적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현행 「국민건강보험법」 제50조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부가급여의 하나로 상병수당을 지급할 수 있도록 이미 정하고 있다. 우리에게 맞는 구체적 제도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그에 대한 합의가 아직 도출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 코로나19가 이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하는 전기가 됐다. 정부는 지난해 7월 14일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을 발표하며 고용·사회 안전망을 강화하고 함께 잘 사는 포용적 사회안전망을 다지기 위한 ‘한국형 상병수당’ 도입을 제시했다. 같은 달 28일 노사정은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적 협약을 체결하며 관련 논의를 추진할 것을 약속했다. 이에 정부는 올해 한국형 상병수당 도입을 위한 연구용역을 시행하고 내년에 저소득층 등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추진하며 그 결과를 토대로 상병수당의 지급방식, 지원조건 등을 결정할 예정이다.
한국형 상병수당제도를 설계할 때 살펴볼 쟁점은 여럿인데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재원은 어떻게 조성하며 누가 운영할 것인가의 문제다. 크게 ‘사회보험형’과 ‘조세형’으로 나뉘는데, 전자는 다시 세부 사회보험, 즉 건강보험, 연금보험, 고용보험 혹은 별도의 상병수당보험 중 어디에 전담시켜 운영하는 유형인지로 구분된다. OECD 회원국을 기준으로 하면, 조세에 의존하거나 법정 유급병가로 상병수당을 대체하는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대부분 사회보험형을 택하고 있다.
둘째, 상병수당의 적용대상을 어느 범위까지 할 것인가의 문제다. 외국의 경우 대체로 임금근로자부터 시작해 자영업자 등 비임금근로자로 점차 확대하는 경향이 관찰되나, 임금근로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국가도 여전히 존재한다. 셋째, 어떤 유형의 상병에 혹은 어느 정도로 아파야, 또 어떻게 확인돼야 상병수당을 지급할 것인지도 중요한 쟁점이다. 주요국은 일반적으로 질병의 유형과 범위를 특정하지 않으며 의료인증체계를 구축해 신청자의 ‘근로 무능기간’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절차를 둔다. 이와 함께 대기기간, 즉 상병 발생 시점과 급여를 받는 시점 사이에 기간을 둬 제도를 오·남용하는 도덕적 해이를 제어하고자 한다. 구체적 대기기간 설정은 다른 관련 제도, 예컨대 법정(유급)병가제도 등과 연계해 당사자, 사업주, 국가 간 책임을 정밀하게 조율하는 섬세한 작업이다.
기존 제도와 경제 여건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상병수당제도의 재원·대상 등 논의돼야
네 번째는 최대 보장기간과 보장수준을 정하는 문제다. OECD 회원국 안에서도 차이가 상당하지만, 다수가 상병수당의 지급기간을 최대 6개월에서 1년 사이로 정한다. 급여 산정기준은 ‘조세형’의 경우 정액지급이, ‘사회보험형’의 경우 정률지급이 일반적이다. 정액형은 보통 최소 수준에 그치게 되는 반면, 정률형은 국가별로 다양한 소득대체율을 정하고 있는데 상·하한선을 설정하는 사례가 많다. 마지막으로, 상병수당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오랜 상병수당의 역사를 가진 국가들이 21세기 들어 특히 이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요양기간 장기화, 노동시장 이탈 등으로 과다한 재정지출의 문제가 발생해 근로복귀 지원, 사후관리 강화, 최고 지급한도 및 대기기간 등을 조정하고 있다.
전체적인 사회보장의 흐름에서 볼 때 상병수당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회복할 수 없는 질병의 후유증에 관한 수당, 즉 국민연금상 장애연금 등이 지급되기 전 남아 있던 사회보장시스템의 ‘최후의 퍼즐’을 맞추는 작업이다. 다만 해외에 도입된 상병수당제도가 어느 것도 완벽히 동일하지 않다는 점은 숙고할 필요가 있다. 개별 국가가 정치·정책적 환경, 사회(의료)보장제도의 발전 경로, 사회적 합의 수준 등 구체적 조건에 맞춰 상병수당제도를 구축·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사회적 여건을 감안할 때 상병수당 논의가 이제야 본격화된 것은 조금 늦은 감이 있다. 또한 상병수당의 도입 과정과 연계해 검토돼야 할 병가제도의 내용과 방식 역시 노사의 견해가 대립하는 부분이므로 이에 관한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이제부터 잊지 않아야 할 부분은 ‘아프면 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제도 준비 과정에서 각 제도의 당위성 못지않게 기존 사회제도와 경제적 여건에 부합하는 정합성 있고 효과성 있는 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의 관련 부처는 물론 전문가들과 이해 당사자들의 숙고가 요청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