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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코로나 시대, 문화안전망 통해 문화의 치유력 작동돼야
윤소영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 2021년 05월호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해 초 유럽에서는 ‘발코니 콘서트’를 통해 많은 사람이 감동을 받았다. 약속 시간에 주민 여러 명이 발코니에 나와 노래를 부르거나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플래시몹부터 전문 뮤지션들의 콘서트에 이르는 다양한 형식으로, 이웃의 안녕을 확인하고 거리두기로 힘들어하는 서로를 위로하고 소통하는 인상 깊은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사람들과  교제하는 기회가 적어지면서 사람들은 외로움과 고독감을 호소하게 됐고, 이를 지칭하는 ‘코로나 블루’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이러한 심리적 증상을 겪으며 우리는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이며 그동안 그것을 얼마나 잊고 살았는지도 깨닫게 됐다. 또한 발코니 콘서트 등을 통해 문화예술이 인간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소통의 방식이며, 삶의 문제들을 치유하는 데 얼마나 유용한지 몸소 체험하게 됐다.

문화생활 보장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일정한·최소한의 여가시간을 보장하는 것

일반적으로 문화예술을 통한 구체적인 활동과 참여 경험은 타인과의 교류를 거부하고 개인화돼 가는 풍조 속에서 관계, 소통, 공동체 회복에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화활동을 통한 문화경험, 사회적 접촉, 사회학습, 공동체성 확인 등이 소외를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를 극명하게 증명하게 된 계기가 코로나19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 이전에도 우리 사회에서는 문화의 사회적 영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면서도 외면한 경향이 있었다. 소득 3만 달러 시대 개막, 세계 10위 경제대국으로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행복지수는 낮았다. 특히 공동체 영역에서 상대적으로 고립수준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엔의 「2021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국민행복지수는 10점 만점에 5.8점으로 세계 149개국 가운데 62위이며, OECD의 ‘더 나은 삶 지수(BLI)’는 2018년 기준으로 40개국 가운데 30위다. 경제성과에 비해 순위가 상당히 낮게 나타난 것이다. 특히 BLI 공동체 영역에서 한국은 40개국 가운데 40위로 사회적 고립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평가됐다.
우리나라는 2013년 제정된 「문화기본법」 제4조(국민의 권리)에서 “모든 국민은 성별, 종교, 인종, 세대, 지역, 정치적 견해, 사회적 신분, 경제적 지위나 신체적 조건 등에 관계없이 문화 표현과 활동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하고 자유롭게 문화를 창조하고 문화활동에 참여하며 문화를 향유할 권리(문화권)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대한민국헌법」 제10조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을 추구할 권리에도 문화향유권이 포함돼 있다. 문화국가를 지향하는 한국사회에서 국민의 문화에 대한 권리는 법적·제도적으로 보장받아야 할 기본적인 권리임이 자명하다.
이러한 사회권적 기본권으로서 문화권은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조건의 형성을 국가에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결국 문화권에 기반해 모든 국민이 문화향유에서 창조적 활동에 이르기까지 문화활동의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최소한의 문화서비스를 보장·지원하기 위한 체계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문화안전망(CSN; Cultural Safety Net)’ 개념이다. 문화안전망을 구축한다는 것은 부재 시 예상되는 문제 상황들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하고 지원하는 망(net)을 마련한다는 것인데, 이러한 문제 상황에는 코로나19, 지진 등으로 국민이 문화권에 기반해 누려야 할 최소한의 문화서비스를 누리지 못하게 되는 상황 등이 포함된다.
그렇다면 문화권 보장을 위해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할 최소 기준은 무엇인가? 우선 우리나라에서 문화활동과 여가생활을 제약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시간 부족이 꼽힌다. 국제 비교를 통해 여전히 장시간 노동국가인 한국에서 상대적으로 여가시간은 그 비중이 낮아 일과 여가의 균형이 이뤄지지 않고 있음은 잘 알려져 있다. 2019년 기준 OECD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1,726시간인 데 비해 한국은 1,967시간이며, 1일 평균 여가시간 비율은 노르웨이, 핀란드, 독일, 이탈리아 등 OECD 상위 국가가 평균 23%를 넘는 반면 한국은 17.9%에 불과하다.
일과 여가의 균형이 이뤄지지 못하면 행복한 삶의 조건을 이루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국민의 문화생활 보장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일정한 그리고 최소한의 여가시간을 보장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적극적인 휴가권 보장도 필요하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0 근로자 휴가조사’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근로자들의 연차휴가 소진율은 72.4% 수준이다. 그 외 자영업자나 시간제 근로자, 무급가족종사자 등은 그 비율이 더 낮다고 볼 때 모든 국민이 휴가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문화지원 대상 확대, 문화공간 접근성 제고 등 중요
한편 국민 전반의 문화향유라는 보편성을 지향하고 여기에서 누구도 차별받지 않도록 하려면 비용이나 공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경제적 소외계층 등 취약계층에 대한 문화향유 관련 자금지원이나 소득공제 등의 세제지원이 그 예다. 현재는 문화바우처 제도를 통해 기초생활수급자 및 차상위계층에 해당하는 저소득층에게 2020년 기준 연간 10만 원 상당의 선별적 바우처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적 소외계층이 문화적 소외계층과 같은 개념적 구분인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으며 보편적 권리로서 문화권을 보장하기 위해 그 지원대상 범위를 생애주기별로 확대해 적용하자는 논의도 제기되고 있다.
또한 문화활동과 관련된 시설공급이나 설치와 관련해 장소 기반의 문화서비스 거리를 기준으로 문화시설의 최소 기준을 정하거나 프랑스의 문화백색지대와 같이 문화서비스 소외지역에 대한 접근을 통해 정책적 우선순위를 정하는 방식이 제안된다. 최근에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온라인 시설이나 공간에 접근하기 어려운 새로운 위험 상황에 대해 문화서비스의 제공 기준이 어떻게 설정돼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도 함께 논의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문화서비스 환경을 균형적으로 제공하는 문제나 오프라인 거점의 최소 운영시간 설정 기준 마련 등이 고려되고 있다. 이 외에도 모든 국민의 향유적 문화활동뿐 아니라 다양한 창작활동을 포함하는 문화생태계 구축을 위해 문화창작 기반 마련과 종사자 지원을 위한 최소 기준과 적정 기준에 대한 논의가 오랫동안 있어왔다.
사회학자 울리히 벡의 표현을 빌리자면, ‘오늘날 현대사회가 겪는 지구화, 개인화, 고용감소와 생태 위기’로 인해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사회가 더욱 파편화돼 사회적 신뢰나 공동체 의식 그리고 문화를 형성해 가는 토대를 갖추기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바로 이런 사회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문화적 감수성을 증진시킴으로써 문화적 공감 능력을 키우고, 구성원들 간 이해와 소통을 원활하게 만들어 보다 강한 신뢰관계를 구축해 존재론적 안정감을 갖도록 만드는 것이 문화의 발견이다. 결국 문화서비스는 사회구성원으로서의 국민들을 사회적 위험이나 다양한 위기상황으로부터 회복시키고 치유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정신적 지지를 통해 문화의 회복력 및 치유의 성격이 문화안전망 시스템에서 작동되고 강조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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