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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노인을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 인정하는 연령통합적 사회로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대학원장 2021년 05월호


국제사회 지표 중 우리나라가 OECD 1위를 차지한 몇 안 되는 지표가 고령화 속도 그리고 노인빈곤율과 노인자살률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노인의 노동시장 참여율은 OECD 평균보다 높다. 나이가 들어서도 일하고 있음에도 노인빈곤율이 몇 년째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대한민국 노인들의 삶의 질을 나타내는 현주소를 이렇게 비관적으로 만들어놓은 것일까?
먼저 우리나라 노인들이 빈곤하게 된 원인을 사회시스템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나이 들어서 은퇴할 경우 편안한 노후의 삶을 보장해 줄 사회시스템으로 연금제도가 도입된 역사가 짧다. 우리나라에서 국민연금은 1988년에 시행됐는데, 가장 일찍 제도를 마련한 독일은 1889년 노동자 연금제도를 도입했다. 1942년 베버리지보고서에 기초해 1946년 「국민보험법」을 제정한 영국과 비교해도 우리의 연금제도 역사는 짧다. 2018년 기준 우리나라 55~79세 인구 중 연금수령자는 45.9%에 그쳤고, 월평균 수령액도 61만 원에 불과하다. 2019년 국민연금연구원에 따르면, 이는 실제 노인이 필요로 하는 1인 기준 최소 생활비 월 98만 원, 적정 생활비 142만 원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청년은 공부, 중년은 일, 노년은 여가’ 공식 벗어나
연령 관계없이 공부·일에 참여할 수 있어야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기초연금이 도입됐으나 이 역시 최대 30만 원에 불과해 소득 보전 효과가 크지 않다. 노인일자리 역시 노인들에게 소득을 보충해 주기 위해 제공되고 있지만, 참여 시 받을 수 있는 금액이 적어 소득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노인 개개인이 해야 할 노후준비 역시 자녀교육비 마련과 노부모 부양으로 인해 충분히 이뤄지지 못했다. 2018년 서울연구원의 조사에 의하면 노후준비가 잘 돼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16.8%에 불과했다.
물론 노인들의 기본적인 생활이 보장될 수 있도록 연금제도를 보다 튼튼히 하고, 건강보장과 장기요양보장 등 사회적 안전망을 건실히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노인들이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받는 것을 넘어서 편안하고 활기찬 노후를 보낼 수 있으려면 우리 사회는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할까?
2002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고령화에 관한 국제행동계획(MIPAA; Madrid International Plan of Action on Aging)’에서는 고령화 사회에서 활기차고 적극적인 노년의 삶을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여기에서 논의됐던 사항들은 2021년에도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를 준다. 노인 문제만이 아니라 인구구조 변화라는 거시적 변화에 대응하고 노인의 삶의 질과 권리를 다른 사회구성원과 동등하게 보장하기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모색돼야 하며, ‘모든 연령을 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연령을 위한 사회’, 이것은 곧 ‘연령통합’의 사회다. 노인과 다른 사회구성원의 권리가 동등하게 보장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인 세대와 젊은 세대가 힘을 합쳐 연령이 사회참여의 기회를 차단하는 진입장벽이 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고, 연령이 다양한 세대가 함께 교류하고 공존해야 한다는 것이 연령통합사회의 핵심적 주장이다. 이를 위해 먼저 노인이 은퇴로 사회에서 퇴장하거나 나이 들었기 때문에 사회참여로부터 배제되지 않도록 사회시스템을 변화시켜야 한다.
우리 사회의 시스템은 오래 전부터 청년은 공부, 중년은 일, 노년은 여가라는 공식 속에서 작동해 왔다. 이러한 연령분절적 시스템을 넘어 어느 연령대에서도 공부와 일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100세 시대를 가정해 보면, 65세 이후 은퇴한다 해도 35년이라는 긴 시간을 아무 할 일 없이 보내야만 한다면 노후의 풍성한 삶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35년이라는 긴 시간은 인생 2모작, 3모작을 가능하게 하는 시간이므로 다시 교육도 받고 인생 1모작에서는 하지 못했던 일들을 새롭게 시작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나이가 들어도 일을 해야만 생계가 가능하고 경제적 보탬이 되기 위해 노인이 일할 수밖에 없는 사회가 아니라, 기본적인 보장과 함께 다양한 사회참여를 통해 활기찬 노년을 보낼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노인이 다른 구성원과 동등한 사회참여의 기회를 갖는 것, 다시 말해 모든 연령에게 기회가 열려 있고, 모든 연령이 서로 교류하고 공존하는 모든 연령을 위한 사회가 만들어질 때 편안하고 활기찬 노후도 보장될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적 보장과  다양한 사회참여로 활기찬 노년 보낼 수 있는 기회 필요
한편 MIPAA에서는 활기찬 노후를 위해 노인과 개발, 노인의 건강과 복지 증진, 노인에게 능력을 부여하고 지원하는 환경 보장 등을 강조하고, 이 계획에 대해 5년마다 각국의 이행사항을 점검한다. 2012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우리나라의 2기 이행점검 보고서에 따르면, 노인과 개발 부분이 가장 약했다. 노년기 소득과 관련해 각종 사회적 안전망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구축돼 있음에도 ‘직업 지도 및 배치 서비스뿐만 아니라 평생교육, 훈련 및 재훈련에 있어서의 전 생애에 걸친 기회균등’과
‘노인빈곤 감소’는 가장 이행력이 낮은 부분이었다. 2017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표한 3기 이행평가에서도 노인을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 보지 않는 점, 노화에 대한 긍정적 시각의 부족, 정책 결정에서 노인의 참여 부족 등이 지적됐다. 2019년 국제 NGO 에이지플랫폼유럽(Age Platform Europe)도 활동적인 노후를 위해 노인의 적극적인 노동시장 참여와 평생교육 및 직업훈련 제공, 보완 연금 개발 및 사회적 보호를 통해 노동력 부족을 해소하고 노후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부족하다고 지적된 사회참여의 기회가 전 생애에 걸쳐 균등하게 보장돼야 하며, 특히 노인을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 인정하는 연령통합적 사회로의 변화가 필요하다. 누구나 나이 드는 경험을 하면서 그 나이대의 사람들이 하는 고민을 조금씩 체감하게 된다. 우리가 그리는 노인의 모습이 뒷방 늙은이로 뒤처져 있는 모습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젊은이들에게 꼰대 노릇을 하는 모습도 아닐 것이다. 나이가 들었어도 건강을 유지하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활동을 적극적으로 해나가는 노인이며, 젊은이들과 서로 배우고 어울리며 이 사회에서 상생과 공존을 꿈꾸는 노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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