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인 삶의 주제로 회자되던 행복이 사회과학 분야의 핵심 주제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2000년을 전후해서다. 이는 무엇보다도 물질적 효용과 효율을 최상의 가치로 여기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성장 중심 패러다임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이후 행복과 삶의 질을 측정하려는 다양한 노력은 OECD의 ‘더 나은 삶 지수(BLI)’와 유엔 산하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의 ‘세계행복지수(WHI)’ 등으로 결실을 맺었다. 이 글에서는 2013년 이래로 매년 발표되고 있는 세계행복지수의 결과들을 바탕으로 우리나라의 행복과 삶의 만족도를 높이려면 어떠한 정책적 노력이 주효할지를 가늠해 보고자 한다.
잘사는(rich) 나라, 잘 못 사는(not happy) 국민
유엔 세계행복보고서는 2012년 이래로 해마다 150여 개국의 3년 평균 행복 순위를 발표한다. 우리나라는 2010~2012년 41위에서 2018~2020년 62위로 행복 순위가 추세적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그림〉 참고). 이 기간 동안 우리나라의 1인당 명목 GDP는 줄곧 세계 10~14위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경제 수준에 비해 한참 낮은 행복 수준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해가 갈수록 순위가 낮아지는 경향은 반갑지 않은 신호다. 더불어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고 자살률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국가적 차원의 다각적인 노력에도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이 같은 수치들은 왜 지속될 뿐 아니라 악화되고 있는 것일까?
세계행복보고서의 연차별 보고서에서 이와 관련한 몇 가지 단서를 추가로 확인할 수 있다. 첫째, 유엔 행복지수는 6개의 하위지표로 구성되는데, 그것은 1인당 GDP, 사회적 지지(사회자본), 기대 수명, 삶에서의 선택의 자유, 관용, 부패 인식이다. 2019년 보고서에서 하위 요소별 순위가 제시된 바 있다. 우리나라는 기대 수명(9위), 경제 수준(27위), 관용도(40위)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순위를 차지한 데 비해, 사회적 지지(91위), 부패 인식(100위), 자유(144위)는 낮은 순위를 기록했다. 대체로 ‘경제적’ 측면과 ‘사회·정치적’ 측면 간의 불균형이 빚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사회·정치 관련 요소들이 전체 행복 순위를 끌어 내리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둘째, 2016년 보고서에서는 행복의 불평등도를 나타내는 도구로 안녕(well-being)의 표준편차(SD) 순위를 제시했는데, 우리나라는 비교 대상국 중 96위로 당시 행복 순위(58위)보다도 한참 뒤떨어진 결과를 보였다. 특이하게 전체 행복 순위에서 84위를 차지했던 부탄이 안녕의 표준편차가 가장 작은 나라로 나타났다. 부탄은 1인당 국민소득이 낮음에도 국민이 행복한 나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개인 수준에서의 행복한 감정은 절대적인 경제 수준 이외의 요인들에 의해 더 크게 좌우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결과다.
셋째, 사민주의 복지국가로 분류되는 핀란드,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는 10위권 내에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리는 나라들이다. 2013년 이래로 단 한 차례(2012~2014년) 스위스가 1위를 차지했을 뿐 나머지는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가 번갈아 가며 1위를 하고 있다. 특히 핀란드는 2015~2017년 이래로 4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행복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경제적 수준뿐 아니라 복지, 교육의 질, 민주주의 수준, 환경 등 다차원적인 사회의 질이 골고루 높아야 함을 시사한다.
우리나라는 전후 최빈국에서 단기간 내에 세계 10대 경제 강국으로 도약할 만큼 높은 저력과 잠재력을 발휘해 온 나라다. 인적·물적 역량을 경제발전에 쏟아부은 결과, 세계가 놀랄 만한 성과를 얻었지만 국민의 누적된 피로와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끝없는 경쟁을 강요하는 교육시스템, 세계 최장 수준의 노동시간과 불안정한 일자리, 길어진 노후의 높은 빈곤 위험, 치솟는 부동산 가격과 높은 자산 불평등도 등은 우리의 불편한 현실인 동시에 미래까지 불확실하고 어둡게 하는 요소임에 분명하다.
개인·공동체에 대한 긍정적·협력적 태도 고양,
일과 삶의 균형, 불평등 축소 등이 동시 추구돼야
‘경쟁’과 ‘효율’이 ‘협력’과 ‘공동체적 선’의 가치를 휩쓸어버린 시장경제의 위험을 ‘악마의 맷돌’에 비유한 경제사학자 칼 폴라니의 경고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자유기고가 리즈 호가드는 저서 『행복(How to Be Happy)』에서 소득과 같은 경제적 여건은 개인의 행복에 10%만 영향을 미치며, 약 50%는 유전자와 교육, 나머지 약 40%는 관계, 우정, 일, 몰입, 공동체, 취미 같은 활동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소득과 같은 경제력은 일정 수준까지는 행복에 영향을 미치지만 그 이상 수준에서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데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가 동의하고 있다.
요컨대 ‘경제’와 ‘사회’의 두 바퀴가 어느 정도 균형 잡힌 상태가 아니면 오히려 자전거는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다는 사실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행복과 삶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자신과 공동체에 대한 긍정적이고 협력적인 태도를 키워주는 교육 환경,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노동시장 여건, ‘안전(security)’과 ‘최저보장(guaranteed minimum)’의 제도화, 사회 집단 간의 격차와 불평등 축소 등이 동시에 추구돼야 한다. 경제와 사회의 균형을 추구하는 정책이야말로 공동체의 행복은 물론이고 전체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