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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맞지 않는 ESG 경영 펼치는 기업들···경영 가이드라인 등 제도 마련 중요
인소영 스탠퍼드 글로벌프로젝트센터 책임연구원, 윤석현 노스웨스턴대 켈로그경영대학원 교수 2021년 06월호


지난해 구글은 향후 10년 이내에 구글의 공급망이 위치한 전 세계 500개 도시에 5GW 규모의 탈탄소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50억 달러 규모의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이전에도 구글은 대만 전력시장 개방에 적극적으로 개입했으며 콩고민주공화국에서는 무장세력들의 분쟁으로부터 자유로운  광물 생산(conflict-free mineral) 및 에너지원 전환에 적극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IT 기업인 구글은 왜 이런 프로젝트에 투자를 하는 것일까?

ESG 경영의 재무적 가치 비가시화로
기존 경영노선 바꾸는 경우는 드물어

구글이 이 같은 지속 가능성 프로젝트를 하는 이유는 기업들이 환경, 사회, 지배구조의 요소를 기업 경쟁력의 필수 요소로 인식하기 시작한 시장의 변화와 궤를 같이 한다. 과거에는 ESG가 기업의 비재무적 지표로 분류돼 재무적 성과와는 별개로 인식됐다면, 현재의 ESG 개념은 피고용인을 포함한 이해당사자에 대한 처우, 공급망 관리, 기업의 혁신성과 사회적 공헌,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과 관련된 경영활동을 포괄한다. 이러한 인식 변화는 기업이 누구의 이익을 위해 사업을 영위하느냐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으며 생각보다 빨리, 더욱 직접적으로 기업의 비지니스 모델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시장 및 투자 환경의 변화 규모와 속도에 비해 기업들의 대응은 매우 상이하며 실질적인 대응보다는 허울에 그치는 경우도 관찰된다. 미국 비영리 컨설팅회사인 FSG 연구팀이 100개의 세계적 기업을 조사한 결과, 대다수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관련된 계획들은 기존 사업이나 프로그램을 새로운 프레임워크에 끼워 맞춘 것에 가까우며 기존 경영노선을 바꾸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경영자나 투자자의 인식 전환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ESG 경영을 그저 착한 기업 만들기 또는 ESG 투자를 주인·대리인 문제에서 비롯되는 경영자의 개인적 일탈로 해석해서 비효율적 경영이라고 보는 부정적 시선이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 ESG 요소가 신의성실 의무에 부합되며 경영의 필수적 요소라는 인식이 생기기 위해서는 ESG 경영이 궁극적으로 기업의 재무적 가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와 작동 경로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기업의 ESG 경영과 수익 창출의 양립성은 기존 경영방식을 적극적으로 바꾸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학계에서도 ESG와 기업 수익의 관계에 대한 실증 분석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1992년부터 2013년까지 미국 상장기업 1천 개 이상의 주가를 분석한 미국 노스웨스턴대의 연구(윤석현 교수)는 지속가능성 회계기준위원회(SASB) 기준에 의거한 ESG 지표들을 활용해서 투자하면 연평균 6.01%의 초과 수익률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또한 미국 주식시장을 연구한 스탠퍼드대의 연구(인소영 박사)는 2009년 이후부터 탄소배출 효율성이 높은 기업들을 사고 탄소배출 효율성이 낮은 기업들을 파는 포트폴리오 전략으로 연간 3.5~5.4%에 달하는 초과 수익률을 올릴 수 있음을 보였다.
ESG 경영과 수익 창출이 양립할 수 있다는 증거와 함께 기업들이 ESG 요소를 받아들이는 자세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스탠퍼드–옥스포드 공동연구팀은 사이언토메트릭(scientometric) 방법론을 이용한 1973년부터 2019년 사이 ESG 문헌연구를 통해 ESG를 보는 시각이 수동적인 리스크 관리에서 기업의 성장동력으로 확장돼 왔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1970년대의 경우 환경 규제 등으로 인한 재무적 불이익(벌금, 소송, 피해보상금 등)을 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업들이 ESG 분야에 수동적인 투자를 했다면, 1990년대에 들어서는 친환경적 요소를 고려하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 사이에 매출, 자본 비용 등에서 차이가 나는 시장 유인들이 발생했고, 기업들은 이에 반응해 적극적으로 ESG 투자를 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과정에 대한 논의 없으면
기업의 지속 가능 발전 저해할 수도

ESG시장의 폭발적인 성장과 대조적으로, 기업 경영자는 ‘ESG에 어떻게 접근하고 어떤 구체적인 경영전략을 마련해야 하는가’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해 있다. 더군다나 대부분 기업의 ESG 영향 평가 프레임워크들은 그 결과를 평가하는 데 그칠 뿐 경영자가 어떻게 다양한 ESG 이슈를 효율적으로 다루면서 조직을 운영할 수 있을까 등 구체적인 ESG 경영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제공하지 않고 있다. 또한 과정에 대한 논의 없이 성과로만 ESG 경영을 평가한다면 기업의 궁극적인 지속 가능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
최근 탄소중립이 화두가 되면서 국내외 기업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신재생·청정 에너지 사업에 투자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회사가 계획대로 실행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다. 구글, 애플, 아마존 등 현금 유동자산이 많은 기업이 취하는 탄소중립 경영전략과 상대적으로 현금 유동성이 적은 중소기업들의 전략은 크게 다를 것이다. 또한 기업의 탄소발자국을 단기간에 줄일 수 있는 방법은 탄소 상쇄(배출된 이산화탄소의 양만큼 온실가스 감축활동을 하거나 환경기금에 투자하는 것)겠지만 장기적인 차원에서 에너지원 전환의 방법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기업이 기존의 규제, 공시제도, ESG 데이터시장의 트렌드 등에 이끌려 자신들의 몸에 맞지 않는 ESG 경영을 펼칠 뿐만 아니라 편법 경영도 관찰된다. 2015년 폭스바겐의 ‘클린디젤’ 스캔들에서 볼 수 있듯이 일부 기업은 친환경 위장전략 또는 형식적인 ESG 마케팅에 그치기도 한다. 이런 행위들을 그린워싱(greenwashing)이라고도 하는데, 스탠퍼드 지속가능금융센터의 연구는 이런 현상을 ESG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확대로 재무적 인센티브가 급증한 데 비해 ESG의 정량적 평가, 인증, 공시 제도 등 제도적 장치가 미흡해 생기는 부작용이라고 설명한다.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최근에는 정확한 평가기준을 세우고 정량적으로 기업의 ESG활동을 평가하는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기후변화 연계 재무공시 전담협의체(TCFD) 권고안과 과학기반 감축 목표(SBT; Science Based Targets) 국제 가이드라인은 참여 기업들로 하여금 파리기후협정에 부합하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수립하고 해당 기업이 독자적으로 이를 평가하고 승인을 받도록 권고하고 있다. 학계의 대응도 이어지는데, 옥스퍼드대 교수진의 주도하에 경영 및 경제 학자들이 낸 성명서는 기존 회계기준에 ESG 요소를 명시적으로 편입시킬 것을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와 미국회계기준위원회(FASB)에 촉구했다.
민간기업은 지속 가능한 경제체제로 전환하는 데 필수적인 경제 주체이며, 기업의 잠재적인 영향력을 충분히 발현시키기 위해서는 ESG 경영을 보편화시키는 단계가 필요하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ESG의 다면성, ESG 경영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부재, 관련 경영 가이드라인의 부재 등을 고려할 때 ESG를 기존 사업 모델에 체화시킨다는 것은 지난한 작업일 수밖에 없다. 기업의 ESG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하는 산업 생태계와 제도의 마련 또한 중요하다. 기업 자체의 노력과 더불어 ESG 경영이 우리 사회에 가져올 긍정적인 외부효과를 고려할 때 소비자와 정부 또한 인식 전환과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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