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ESG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기업과 투자자 등 다양한 주체에서 ESG 요소를 고려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 중 기업지배구조는 기업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상호관계를 규율하면서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추구해 왔다는 점에서 ESG라는 개념으로 논의되기 전부터 중요한 주제로 다뤄져 왔다.
지배구조 우수할수록 ESG활동이 기업가치에 긍정적···
이사회의 역할과 책임 재정립 필요
기업지배구조의 중요성은 대리인 문제(agency problem)로 야기되는 비합리적 경영 의사결정을 통제해 기업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이를 통해 기업 경영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있다. 실제 많은 연구에서 기업지배구조가 건전할수록 기업가치 제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한편 ESG활동에서도 이러한 대리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경영자가 개인의 명성 제고 등 사적 이익을 위해 ESG 관련 활동을 수행할 경우 주주 또는 이해관계자의 이해와 일치하지 않는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으며, 이는 기업 자원의 비효율적 사용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지배구조가 건전한 기업의 경우 경영진의 자원 유용을 통제해 대리인 문제를 해결하고 기업가치 제고에 기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국내 한 연구에서도 기업지배구조가 우수한 경우에 ESG활동이 기업가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반면, 지배구조가 취약한 경우에는 ESG활동이 기업가치에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이러한 점에서 ESG 투자를 수행하는 글로벌 기관투자자들도 투자 의사결정 과정에서 ESG 요인 중 기업지배구조 요소를 절대적으로 고려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결국 기업의 ESG활동이 효과적으로 지속 가능하게 추진되기 위해서는 기업지배구조의 건전성 확립이 기반돼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기업들은 ESG 시대에 지배구조를 어떻게 재정립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우선, 기업의 핵심 의사결정 주체인 이사회의 역할과 책임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이사회는 기업의 업무집행과 관련한 주요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기관으로서 ESG 경영을 위한 중장기 목표 수립 및 성과 평가, 개선방안 마련 등 전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 이사회는 주기적으로 기업에 발생 가능한 ESG 위험요인과 기회요인을 발굴하고, 개선책을 마련해 개선성과를 점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최근 국내 기업들이 앞다퉈 ESG 위원회를 설치해 ESG 경영을 실천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사회 내 위원회로서 ESG 이슈를 점검하고 경영 의사결정에 반영하겠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여겨진다. 다만 이러한 위원회가 도입 취지에 맞게 실효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위원회가 실무자들의 업무를 보고받고 검토 의견을 제시하는 자문적 성격의 위원회로 운영되기보다는 의결주체로서 ESG 이슈를 경영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실무적 위원회의 성격으로 운영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한편 중소기업에서는 별도의 위원회를 구성하는 데 예산상의 제약 등이 존재하기에 핵심 사업과 연계된 ESG 이슈를 발굴해 이사회 차원에서 ESG 이슈를 관리하고 점검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
또한 이사회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 이사회의 다양성 확대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다양성은 이사회 성과를 개선시키고 장기적으로 주주가치를 개선하는 데 긍정적인 효과를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블랙록과 스테이트 스트리트와 같은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은 이러한 측면에서 이사회 다양성 정책을 도입하고 다양성이 부족한 투자 기업을 대상으로 반대의결권을 행사하기도 한다. 이러한 시장환경의 변화와 필요성에 따라 국내에서도 2020년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은 이사회를 특정 성(性)으로만 구성하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이로 인해 많은 기업이 여성 이사를 선임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사회 다양성은 인종이나 성별뿐 아니라 전문성 측면에서도 고려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때 ESG 이슈가 다양한 분야를 포괄하고 있다는 점에서 모든 분야의 전문가를 이사회 구성원으로 선임할 수 없기에 해당 기업의 핵심 ESG 이슈(예를 들면 작업장 안전 등)를 선정하고 해당 이슈에 전문성을 갖춘 후보를 선정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경영진 평가에 ESG 성과도 고려하길
다음으로 경영진의 성과 평가 및 보상 체계에 ESG 성과를 고려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현재 대부분의 기업에서 경영진의 보상은 재무적 수치에 기반해 있고 일부 기업에서 ESG 평가기관의 평가점수 개선 정도를 핵심성과지표(KPI)에 반영해 간접적으로 보상에 연계하고 있다. ESG 경영이 체계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ESG 경영전략을 구체적으로 수립하고 이에 대한 활동과 그 성과를 매년 평가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다만 ESG 특성상 계량화해 성과를 측정하기 어려운 한계점이 존재하고, 오히려 그러한 점에서 성과 평가가 자의적으로 이뤄질 우려도 있다. 따라서 이러한 한계점을 보완하면서 경영진의 성과 평가에 ESG 개선활동을 고려하기 위해서는 ESG 경영전략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수립해 이에 대한 객관적 평가기준을 마련하고 주주들에게 이를 공개해 성과를 평가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해관계자와의 소통 강화를 위해 ESG 정보 공개 노력이 필요하다. 올해 초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ESG 정보공시 강화 방안에 따르면 2030년부터는 모든 코스피 상장사가 의무적으로 ESG 정보를 공시해야 한다. 그러나 책임투자의 확대 등으로 ESG 정보에 대한 기관투자자들의 요구가 거세지고 있어 2030년까지 정보공시를 미루기 힘든 상황이다. 기업에서 선제적으로 ESG 정보를 공개하고 이를 통해 주주를 비롯한 주요 이해관계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만 현재 지속가능보고서 발간을 위한 보고표준으로 많이 활용되는 GRI(Global Reporting Initiative) 가이드라인에서 요구하는 정보 공개범위가 포괄적이다 보니 정보의 활용 주체들에게도 실효성이 떨어지고 국내 중소·중견기업의 경우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이에 ESG 관련 글로벌 이니셔티브에서 제시하는 가이드라인 또는 주요 주주인 투자자들이 요구하는 ESG 정보 등을 활용해 기업별 핵심 ESG 이슈를 중심으로 정보를 공개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국내외를 불문하고 ESG 경영이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시장환경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때 위험요인이 아닌 기회요인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기업지배구조가 기업의 의사결정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환경경영이나 사회책임경영보다 기업의 규모에 대한 의존도가 낮은 영역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국내 중소·중견기업에서도 핵심 ESG 이슈를 중심으로 기업지배구조를 정립하고 이를 중심으로 한 ESG 경영을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