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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규제로 인식하지 말고 경영전략으로 접근해야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2021년 06월호


2021년이 한국의 ‘ESG 원년’으로 불릴 정도로 올해 들어 ‘ESG 경영’열풍이 불고 있다. 10대 그룹 모두 이사회 내에 ESG 위원회를 설치하거나 별도의 전담조직을 꾸리는 등 본격적인 ESG 경영에 나섰다. 전경련이 최근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절반 가까이가 ESG 위원회를 설치했거나 설치할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4월만 해도 대한상공회의소의 두 차례에 걸친 ‘ESG 경영포럼’ 개최, 한국경영자총협회의 ‘ESG 자율경영 실천을 위한 공동선언’ 채택, 전경련의 ‘K-ESG 얼라이언스’ 발족 등 주요 경제단체의 ESG 확산을 위한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ESG 열풍의 이면에는 허점이 많다. ESG가 서로 다른 환경·사회·지배구조 각각의 영역을 포괄하고 있고, 업종별·기업별로 사업환경이나 경영방식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ESG의 범위와 구체적인 개념이 명확하게 정립돼 있지 못한 실정이다. 이는 ESG 경영전략 수립의 애로요인을 조사한 전경련의 설문조사 결과에도 잘 나타났다. ‘ESG의 모호한 범위와 개념’이 애로요인이라는 응답이 29.7%로 가장 많았고, 뒤를 이어 ‘자사 사업과의 낮은 연관성(19.8%)’, ‘기관마다 상이한 ESG 평가방식(17.8%)’, ‘추가적 비용 초래(17.8%)’ 등이 꼽혔다. 이 결과는 ESG에 대한 기업들의 인식과 체감도를 잘 보여주고 있다.

기관별로 평가기준 상이해
평가기관과의 적극적 소통 필요

ESG가 글로벌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한 기업들의 필수요소로 떠오르고 있지만 평가기관별로 평가항목이 다르고 평가기준도 모호하다. 그 결과 동일 기업에 대한 평가 결과가 평가기관에 따라 다른 경우가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대다수의 기업이 ESG에 대해 정확히 알지도 못하고 사업과 직접적인 관련성도 없지만 대세라고 하고 남들이 한다니까 ‘하는 척’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진 건 아닌가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적지 않은 기업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소위 그린워싱, ESG 워싱을 할 위험성이 커지고 있다.
ESG 평가에 대비해 기업들은 평가기관에 대한 대응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내외 평가기관이 150개가 넘고 평가기준도 600개가 넘기 때문에 기업들이 이러한 평가에 전부 대응할 수는 없다. 투자자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ESG 이슈를 파악하고 그것에 적합한 평가기관을 발굴해서 그 기관에 맞는 적절한 대응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업 내 평가 담당자들이 지표를 잘 이해하지 못해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도 많다. 기업 내부에서 지표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기관이 어떠한 기준을 갖고 평가를 하는지 매뉴얼화해서 적합한 정보를 제공하면서 평가기관과 적극적으로 소통할 필요가 있다. ESG 평가는 평가를 받는 기업의 피드백이 중요하기 때문에 수동적으로 평가를 받기만 해서는 안 되고 기업 스스로 ESG 정보를 시장에 전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기업들은 ESG를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나 기업의 공유가치 창출(CSV) 활동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ESG를 지속 가능 성장을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경영전략으로 접근해야 한다. 경영진이 확고한 의지를 갖고 ESG 경영을 기준점으로 삼아 조직 및 인력, 제도, 관심사를 이에 맞춰 개선해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편 정부는 민간 주도의 ESG 생태계 조성·확산을 위해 시장과 소통을 강화하고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 ESG 인프라 고도화를 위해 정부는 ESG 정보 접근성 제고를 위한 플랫폼을 구축하고, 산업 생태계 전반으로 확산시키기 위한 인센티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현재 금융당국은 ESG 범주 및 가이드라인 정립, 기업 ESG 정보 공시·공개, ESG 기업활동 평가기준 마련 등을 추진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산업통상자원부도 평가기관과 항목이 난립함으로 인해 기업의 혼란이 가중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하반기에 ‘한국형 ESG(K-ESG) 지표’를 마련할 계획이다. 지난 4월 산업통상자원부는 주요 기업들과의 간담회에서 환경·사회·지배구조·정보공시 등 4개 분야 61개의 평가문항이 담긴 지표 초안도 공개했다.

ESG 공시·평가 관련 국제기준 정립 과정에
우리나라 입장 반영되도록 노력해야

정부가 선정한 지표들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금융·투자 업계나 해외 유수의 평가지표와 상호 인정돼 널리 활용될 수 있는 수준이 돼야 한다. 지금은 ESG 공시·평가 관련 제도들이 정립되는 초기 단계이므로 기후변화 연계 재무공시 전담협의체(TCFD) 권고안 등 글로벌 동향을 잘 파악해서 국제기준 정립 과정에 우리나라의 입장이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전통적인 방법에 따라 평가한 기업가치가 ESG에 따라 어떻게 바뀌느냐가 핵심이기 때문에 정부 정책도 ESG가 기업가치에 어떻게 정확하게 반영되게 할 것인지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자산 총액 2조 원 이상의 코스피 상장사들에만 부과되는 기업지배구조 보고서 공시 의무가 2026년부터 전체 코스피 상장사로 범위가 확대되고, 2030년부터는 전체 코스피 상장사의 ESG 정보공시가 의무화되기 때문에 많은 기업이 이를 또 다른 규제로 인식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기업 입장에서는 장기적 ‘상생경영’보다는 당장의 평가점수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기업이 ESG 정보를 공개하는 방법은 산업별 또는 기업별로 다양하고, 모든 기업에 통일된 원칙이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 정부도 ESG 공시 세부기준에 대해 규제 일변도로 접근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
또한 ESG 경영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주주 이익과 기업 실적의 ‘조화’가 중요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기업들의 혼선을 줄이기 위해 일정 부분 조속한 성과지표 표준화도 필요하지만, ESG가 기업 이익을 줄이는 ‘굴레’가 되지 않도록 보다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ESG가 생존전략으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돼가고 있기 때문에 점수 따기식 포장에 치중하지 말고, ESG를 내재화하는 능동적 체질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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