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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세계 각국 반도체 자립 나서고 기업별 투자 확대
김영은 중앙일보S 이코노미스트 기자 2021년 07월호


‘21세기 석유’라 불리는 반도체를 둘러싼 국가별 패권전쟁이 시작됐다. 미국은 반도체산업을 국가안보 차원으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중국은 2015년부터 반도체 자립에 속도를 내며 자체 기술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EU 역시 최근 10나노미터(nm) 이하 초미세공정을 이용한 반도체 공장을 유럽 내에 구축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반도체 자립 선언은 미래 산업의 필수 요소인 반도체 패권을 다른 나라에 뺏길 수 있다는 위기감의 발로다. 그간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구축했던 반도체 가치사슬 역시 재편될 가능성이 있다.

아시아에 편중된 반도체 ‘생산’ 미국으로
미국 정부는 미국 내 반도체 공급망 확충을 위한 법안을 발의하고 반도체 등 핵심산업에 대한 투자를 공식화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올해 초부터 지속적으로 반도체 공급망을 둘러싼 중국과의 투자 전쟁을 예고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4월 백악관에서 ‘반도체 대응 CEO 화상 정상회의’를 개최하고 세계 주요 반도체 관련 기업을 불러 모았다. 이날 삼성전자와 TSMC를 비롯해 인텔, 마이크론, NXP 등 반도체 생산 업체와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 통신사인 AT&T, 자동차 업체 포드와 제너럴모터스(GM), 방위산업 회사인 노스럽그러먼 등 19개 기업이 참여했다. 주요 반도체 공급자와 수요자를 모두 부른 것이다. 이 자리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이 반도체시장을 주도해야 한다”며 반도체 인프라 투자 계획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미국 정부는 최근 4대 핵심 분야 전략 보고서를 통해 반도체 공급망에서 ‘제조’ 역량을 강화해야 함을 역설했다. 미국은 명실상부 반도체 강국이다. 생산 점유율만 낮을 뿐 미국은 반도체 설계와 장비 등 공급망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지난해 기준 전 세계 15대 반도체 업체 중 8개가 미국 회사다. 하지만 제조에서 뒤처진다. 현재 글로벌 반도체 생산은 대만 TSMC와 한국 삼성전자가 70%를 차지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첨단 시스템반도체는 대만이 92%, 메모리반도체는 한국이 44%, 중국이 14%를 차지한다.
최근 산업 전반에 걸쳐 반도체 품귀현상이 발생하며 파운드리산업의 중요성이 대두됐고, 미국 정부는 설계부터 생산까지 반도체 공급망 전반에 걸친 ‘자립’을 결정했다. 동아시아 지역 반도체 생산이 멈추면 자국 경제에 엄청난 피해로 돌아올 수 있어서다. 실제로 한 보고서에서는 대만의 반도체 공장이 멈춰서면 미국 전자산업 전반에 5천억 달러(558조 원)의 손해가 날 것으로 추산했다.
의회에서도 미국 내 반도체 공급망 확충을 위한 다양한 법안이 발의되고 있다. 반도체 생산 업체의 시설투자 등에 대한 세액공제, 연구개발(R&D) 비용 지원 등 다양한 방안을 담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 6월 17일 미국 상원에서 반도체 제조업 투자에 25%의 세액공제를 부여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미국 내 반도체 생산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며, 반도체 제조 장비 및 설비에 투자하는 업체들이 세액공제를 받는다. 세액공제가 시행되면 미국 업체뿐 아니라 애리조나주에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는 TSMC도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이 법안이 발의되기 바로 전 주에도 상원은 반도체·통신 장비의 생산 및 연구에 520억 달러(약 58조8천억 원)를 지원하는 법안을 승인했다.
미국 정부의 본격적인 지원이 가시화되자 산업계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세계 최대 반도체 업체 인텔은 지난 3월 파운드리 사업 재진출을 선언했다. 인텔은 애리조나주 오코틸로에 반도체 팹 2곳을 짓는다며 200억 달러 투자 계획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2018년 수익성 저하를 이유로 파운드리 사업을 대폭 축소시킨 지 3년 만의 복귀다. 인텔은 빠른 시장 진입을 자신하고 있다. 미세공정 기술 개발을 위해 IBM과 손잡고 빠른 시일 내 7나노 공정에서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한발 더 나아가 5나노 이하 초미세공정 수준에 도달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팻 겔싱어 인텔 CEO가 “아시아에 편중된 파운드리의 대안을 제공하기 위해 연내 미국과 유럽 등에 추가로 공장을 확장하는 계획을 발표하겠다”고 밝히는 등 TSMC와 삼성전자를 직접 겨냥하고 있다.
하지만 관련 업계와 전문가들은 당장 인텔이 파운드리 업계 1위인 TSMC와 2위인 삼성전자에 큰 위협은 되지 않을 것으로 내다본다. TSMC가 올해 250억 달러 규모의 설비투자를 계획하고 있고, 삼성전자 역시 미국 파운드리 공장 신·증설에 170억 달러 상당의 투자 계획을 세우고 있어 결코 규모의 경제에서 밀리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은 대만과 ‘반도체 외교’ 나서고 중국은 정부 주도로 반도체 자립 속도 내
다른 나라들도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나섰다. EU집행위는 2030년까지 전 세계 반도체 제품의 20%를 EU 내에서 생산하겠다고 했다. 폭스바겐 등 EU 주요 기업들마저 반도체 부족으로 생산 차질을 겪자 정부가 역외 반도체 의존도를 낮출 필요를 절감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 역시 대만 업체에 반도체 생산을 요청하며 ‘반도체 외교’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가 일본 이바라키현에 반도체 후공정 관련 연구거점을 설립하는 데 이어 일본 구마모토현에 첨단 반도체 공장 건립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부터 반도체 굴기에 나선 중국의 역습에도 대비해야 한다. 중국은 지난해 반도체 장비 분야 최대 시장으로 올라섰다. 미국이 반도체 패권 전쟁을 선언하는 등 중국을 견제하고 나선 가운데 중국 역시 반도체 장비 수입에 열을 올리며 반도체 자립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중국은 2020년에 전년보다 39% 증가한 187억2천만 달러(21조원)에 달하는 반도체 장비를 사들였다. 중국이 반도체 공급망 사슬에서 중추 역할을 담당하는 반도체 생산 장비에 대한 투자를 대폭 늘린 만큼, 중국의 반도체 자립이 가속화될 것이란 분석이다.
미국의 공급망 재편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중국의 반도체 공장 투자 총액은 무려 2,150억 달러(240조 원)를 넘어섰고, 2023년까지 정부 자금을 기반으로 세워지는 반도체 공장은 지금의 2배 수준인 70여 개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무늬만 민간회사지, 실질적인 주인은 대부분 중국 정부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현재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은 16% 남짓이지만 정부의 막대한 지원을 등에 업고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중국 정부는 2019년 2,041억 위안(35조 원) 규모의 2차 반도체 펀드를 조성해 경쟁력 확보에 직접 나섰다. 반도체 기업 간 인수합병에도 정부가 직접 나서고 있다. 2014년까지 전무했던 중국의 반도체 관련 기업 간 통합은 이후 25건에 달한다.
반도체를 둘러싼 국제 정세가 급변하자 메모리반도체 세계1위 한국도 움직이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지난 5월 역대급 투자 계획을 발표했고, 정부는 파격적인 세제·금융 지원, 규제완화로 뒷받침할 것을 약속했다. 국내 반도체 기업(협력사 포함)이 2030년까지 10년간 투자하겠다고 밝힌 금액만 510조 원 이상이다. 삼성전자는 시스템반도체시장 주도권 확보를 위해 2030년까지 171조 원을 투자한다. 2019년 내놓은 투자 계획(133조 원)보다 38조 원 늘어난 규모다. 메모리반도체 비중이 높은 SK하이닉스도 8인치 파운드리 사업에 투자하는 등 비메모리반도체 생산 능력을 키울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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