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30년 세계 최고의 반도체 공급망 구축을 목표로 한 ‘K반도체 전략’을 지난 5월 13일 발표했다. 우리나라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반도체산업이 최근 ‘산업의 쌀’이자 ‘전략무기’로 부각되면서 반도체 기술력 확보 경쟁은 민간 중심에서 국가 간 경쟁으로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반도체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수립된 이번 전략은 K반도체 벨트 조성, 인프라 지원 확대, 반도체 성장기반 강화, 반도체 위기대응력 제고 등 4개의 전략으로 구성됐으며, 이를 통해 반도체 공급망을 안정화하고 반도체 제조 중심지로 도약하며 국내 산업 생태계를 보호한다는 구상이다.
소부장 특화단지, 팹리스 밸리 등을 K반도체 벨트에 조성
첫째, 정부는 ‘K반도체 벨트’를 구축해 국내 반도체 공급망 보완에 나선다. 판교·기흥·화성·평택·온양이 서쪽 축을 이루며, 동쪽으로는 이천과 청주가 각각 용인에서 연결돼 알파벳 ‘K’자 모양의 반도체 벨트가 완성된다.
평택·화성·이천·청주의 첨단 메모리 제조시설 증설·고도화를 통해 메모리 초격차를 유지하고, 용인의 대규모 반도체 제조시설과 소재·부품·장비(이하 소부장) 기업을 연계·집적해 소부장 특화단지를 조성한다. 소부장 연구개발(R&D) 제품의 조기 상용화를 위해 세계 최초로 양산팹과 연계한 반도체 테스트베드 구축을 추진한다. 국내에서 단기 기술추격이 어려운 극자외선(EUV) 노광, 첨단 식각 및 소재 분야는 화성·용인·천안에 외투기업을 유치해 소부장 글로벌 연합기지를 구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판교 부근에 시스템반도체 설계지원센터, 인공지능(AI) 반도체 혁신설계센터, 차세대 반도체 복합단지를 조성해 판교를 한국형 팹리스 밸리로 만든다.
둘째, 세제혜택과 기반시설 지원 등을 확대해 기업들의 투자를 촉진한다. 반도체 업계의 향후 10년간 누적 투자 계획은 약 510조 원 이상으로, 정부는 이러한 민간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해 R&D와 시설투자 세제 인센티브를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우선 일반 투자와 신성장·원천기술 투자의 2단계 구조로 된 현행 세제 인센티브 제도에 세번째 단계인 ‘(가칭)핵심전략기술’을 신설할 예정이다. 국가경제 차원에서 중요한 핵심전략기술의 R&D 및 시설 투자에 대해서는 현행 신성장·원천기술 투자 시보다 공제율이 대폭 확대되며, 이를 통해 반도체 핵심기술을 확보하고 시설투자를 확충할 방침이다.
국내 반도체 제조 기업(파운드리), 중소·중견 소부장 기업 등이 적극적으로 시설투자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금융 지원도 확대한다. 반도체 업계의 투자 프로젝트가 구체화되는 대로 총 1조 원+α 규모의 설비투자 특별자금을 신설해 반도체 설비투자를 지원한다. 사업경쟁력 강화 지원자금 등의 지원 규모를 최대한 확대하고 다양한 금융 프로그램도 적극 지원해 나갈 계획이다.
아울러 반도체 제조시설 구축·운영 시 수요변화에 대응한 반도체 적기 공급이 가능하도록 고압가스, 화학물질, 온실가스 등과 관련된 주요 규제를 합리화할 예정이다.
「고압가스 안전관리법」 관련 규제를 반도체 제조 여건에 맞게 개선하고, 반도체 생산설비 신·증설 시 「화학물질관리법」 인허가 소요기간을 75일에서 30일로 단축하는 패스트트랙을 도입한다. 내년부터는 신·증설 시설에 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최적가용기법(BAT; Best Available Techniques)을 적용하면 배출권을 100% 할당할 계획이다.
반도체 제조시설의 원활한 운영을 위한 기반시설은 선제적으로 지원한다. 용인·평택 등에 위치한 반도체 제조시설의 안정적인 가동을 위해 10년치 용수물량을 확보하고, 반도체 제조시설이 위치한 산업단지의 전력 인프라 구축 시 정부와 한전에서 최대 50%를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반도체 제조시설에 필수적인 공공폐수처리시설의 경우 폐수재활용 R&D 등을 적극 지원할 예정이다.
‘반도체 특별법’ 제정 추진
셋째, 인력·시장·기술 등 반도체 성장기반을 확보한다. 학사에서 석·박사, 실무교육 등 전 주기 지원을 통해 10년간 학사인력 1만4,400명, 전문인력 7천 명, 실무인력 1만3,400명 등 총 3만6천 명의 반도체 산업인력을 육성할 계획이다. 반도체산업의 만성적 인력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국내 대학의 반도체 관련 학과 정원 확대를 추진할 예정이며, 이를 통해 10년간 1,500명을 추가 배출한다. 실무에 적합한 학사인력 양성을 위해서는 대학에 시스템반도체 전공트랙을 신설하고 반도체 장비 계약학과를 확대할 예정이며, 산학연계 R&D 및 기업 참여형 커리큘럼 개발·운영을 통해 석·박사급 우수 연구인력 육성 생태계를 조성해 나간다. 핵심인력 지원을 위한 제도적 기반도 강화한다. 국가 반도체산업 발전에 중요한 업적이 있는 산학연 인력을 ‘반도체 명인’으로 선정해 핵심역량을 브랜드화하고, 현장경험이 풍부한 퇴직인력의 국내 재취업 및 창업을 지원할 방침이다.
정부는 또한 반도체 전후방산업의 연대·협력 생태계를 구축해 공급망을 견고하게 만들 계획이다. 시스템반도체 융합얼라이언스 연대·협력 협의체를 통해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수요산업과 협력을 확대하고, 소부장 중소기업과 소자 대기업 간 연대·협력 과제를 발굴한다.
아울러 핵심기술 확보에도 집중한다. 차세대 전력반도체, AI반도체, 첨단 센서 등에 대해 1조5천억 원 이상의 신규 R&D를 추진하고, 10년간 1조 원 규모의 차세대 지능형 반도체 기술개발 지원사업을 마련하는 등 총 2조5천억 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국내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반도체 위기대응을 강화해 나간다. 우선 정부는 국회 및 관계부처와 협의해 ‘반도체 특별법’ 제정을 추진한다. 미국 등 주요국은 반도체산업의 전략적 육성을 위해 반도체 지원 내용을 법문 등으로 명시하고 있다. 미국은 2021년 「국방수권법(National Defense Authorization Act)」 내에 반도체 지원 규정을 담았고, 중국은 지난해 8월 발표한 ‘신시대 집적회로산업 및 소프트웨어산업 고품질 발전 추진 정책’에 반도체 지원 내용을 포함했다. 이에 국내외 반도체산업 여건이나 주요국 반도체 입법 동향 등을 고려해 법 제정을 검토하고 있다. ‘반도체 특별법’ 제정 시 규제 특례, 인력양성, 용수·전력 등 기반시설 지원, 신속투자 지원, R&D 가속화 방안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방침이다.
이 밖에도 국내 주요 기업 간 차량용 반도체 협력모델을 발굴·지원하는 등 중장기적으로 미래차 핵심 반도체 공급망 내재화를 추진하는 한편, 국내 기업의 기술·인력 해외유출을 방지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국가 핵심 기술·인력에 대한 보안관리를 강화하는 등 국가 안보와도 직결된 반도체 핵심기술 보호를 위한 제도개선에 나선다. 아울러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R&D 및 인증·실증 기반을 강화해 탄소중립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나갈 계획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K반도체 전략이 차질 없이 추진된다면 반도체 수출은 2020년 992억 달러에서 2030년 2천억 달러로 증가할 전망이다. 생산은 2019년 149조 원에서 2030년 320조 원으로, 고용 인원은 18만2천 명에서 27만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