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기술학교@한산캠퍼스’는 도시생활에 지친 청년들이 1,500년의 전통을 이어온 작은 마을인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에서 대안적 삶을 추구하며 나만의 삶기술로 함께 더불어 살기 위해 만든 자립공동체다. 또한 도시의 삶기술과 마을의 삶기술을 교환하는 ‘삶기술 프로젝트’ 실험을 통해 자기실현을 돕는 대한민국 청년 성장지원 코칭 시스템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삶기술’은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부터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기술까지, 삶에서 일어나는 기술 전체를 의미한다. 나아가 삶기술학교는 사회혁신공동체로서 활동하며 지역혁신형 인재를 발굴·육성해 중앙 및 지방정부, 전문가, 마을주민과 함께 지역소멸을 동시에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힘쓰고 있다.
지게미로 돈가스를 만드는 외식 전공 청년 등
지역의 자원과 청년의 특기가 만나
“작은 시골 마을이지만 젊은 청년들이 와서 삶의 터전을 일궈 잘 살면 좋겠다.”
처음 한산면에 왔던 날이 기억난다. 한산면 주민자치위원장님을 소개받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2,800명의 주민이 이곳에 살고 있는데, 매년 평균 100여 명씩 줄어들며 저출산 및 고령화 현상이 오래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다고. 한산모시와 한산소곡주 등 1,500년을 이어온 전통자원을 비롯해 그 전통을 이어갈 사람들이 머지않은 미래에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걱정을 오랫동안 하셨고, 잘 정착해서 한산초에 아이들도 보내고 더불어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하셨다. 그러면서도 한산의 우수한 전통자원의 명맥을 이어온 자부심과 노력이 위원장님의 얼굴에서 물씬 느껴졌다.
나는 지역특화 자원을 발굴해 문화콘텐츠를 기획하는 충남 기반 기업에 몸담고 있다. 충남 서천군 한산면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2017년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 ‘한산모시문화제’ 축제 기획을 맡게 되면서다. 마을이 참 매력적이었다. 그해 한산면에 방치된 빈집을 개조해 게스트하우스 ‘노란달팽이’를 만들었고, 내친김에 삶기술학교를 구상하게 됐다. 삶기술학교는 ‘취향이 있는 삶(살다)’, ‘배움이 있는 앎(알다)’, ‘혁신이 있는 팖(팔다)’을 모토로 운영되고 있다.
삶기술학교는 각자의 개성을 살린 삶기술을 바탕으로 한산의 DNA를 이어가고 있다. 대학에서 외식을 전공한 청년은 소곡주 지게미를 활용해 돈가스를 만들고, 요가가 특기인 청년은 비어(beer)요가처럼 소곡주 요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에서는 높은 임대료 탓에 작업장을 쉽게 찾지 못하던 미술 전공 청년이 이곳에서 미술교습소를 차려 마을 아이들과 어르신을 대상으로 미술교육을 한다. 서천군이 생태도시인데 이를 활용해 생태동물카페를 운영하는 청년도 있다. 이 모든 프로그램을 청년 스스로가 직접 기획하고 운영한다.
게다가 기존 공간을 재해석해서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기도 한다. 10년 이상 비어 있던 인쇄소 자리에는 독립서점과 사진관이, 다방자리에는 카페와 리빙랩, 대장간 자리에는 메이커 스페이스(maker space; 다양한 디지털 정보기술을 배우고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 있는 장비 시설을 갖춘 창작활동 공간)가 생겼다.
특별한 재능이 있다면 정착이 비교적 쉽겠지만 자기만의 삶기술이 없는 경우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럴 경우 삶기술학교 공동체에서 찾아준다. 대부분의 사람은 ‘난 스페셜리스트가 아닌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 공동체는 ‘너의 강점은 이것 같아’라고 알려주거나 ‘이러한 역할이 필요한데 해보지 않을래?’라고 권하기도 한다. 물론 자기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도 있다. 마을의 전통기술 명인과 주민에게 배워보기도 하고, 청년들이 기술을 서로 공유하면서 삶기술을 발전시켜나갈 수 있도록 다양한 앎의 기회를 프로그램으로 제공하기도 한다.
삶기술학교 공동체에서는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일오백 프로젝트’다. 1,500년 전통의 한산소곡주를 청년들의 감각으로 브랜딩해 온라인 홈술시장을 공략하는 거다. 주민의 전통주 제조기술과 청년들의 아이디어 협력을 통해 한산소곡주의 매력과 우수성을 글로벌하게 알리고자 하는 게 목표였다. 지난해 코로나19로 한산소곡주 매출이 30%가량 감소했는데, 청년들이 의기투합해 온라인으로 판매한 결과 일주일 만에 700병이 팔려나갔다. 최근에 진행한 온라인 펀딩에서도 목표금액의 869%를 달성했다. 주로 오프라인 판로로만 소곡주를 판매하고 있었던 지역 어르신들이 어려워하는 온라인 판로를 연 건데, 지역사회에서 이러한 시도 자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얼마 전 정착 청년들과 함께한 간담회 자리에서 마을주민과 서천군 관계자들의 격려로 많은 힘을 얻기도 했다. 현장에서 긴밀하게 협력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고민하고 지역사회에 잘 융합될 수 있도록 발로 뛰어다니면서 청년들이 지역에 정착할 수 있도록 들여다보고 도움을 주는 역할을 꾸준히 해야겠다는 동력을 얻게 됐다. 마을 주민과 정착한 도시청년들의 상생으로 지속 가능한 삶을 만들어나갈 수 있음을 몸소 실감하고 있다.
그동안의 지역정착 프로그램이 ‘여기 와서 살아’라고 하는 경향이 강했다면, 우리는 그러지 않는다. “네 삶을 위해 필요하면 도시와 지역을 오가며 삶의 질을 높여나가”라고 한다. 요즘은 교통이 발달하고 라이프스타일이 다양해지면서 도시에서 문화욕구를 채우고, 로컬에서도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게 됐다. 노트북 하나로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리모트워크(remote work) 시대다.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 인터넷과 업무에 필요한 기기, 작업 공간만 있으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사람)도 힐링하며 일할 수 있는 삶으로 환경이 확장된 거다. 더 나아가서는 이 청년들이 농어촌사회가 할 수 없는 역량을 채워주며 수익을 창출하기도 한다.
일하며 로컬 문화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마을호텔 등 제공해 지역정착 유도
삶기술학교는 디지털 노마드들이 함께 일하며 로컬 문화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마을호텔 ‘커뮤니티호텔 H’를 제공하고 있다. 오랫동안 방치된 여관을 주민들과 청년들이 직접 설계하고 재창조해 만든 공간이다. 올해 10월에는 마을형 코워킹 스페이스인 ‘노마드언택트센터’를 조성할 예정이다.
한산면에 더 머물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제2의 고향이 될 수도 있다. 많은 청년이 지역에서 나만의 기술을 가지고 삶의 방향성을 재설계하고 실험해 보며 더 많은 기회를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지역 기반 디지털 노마드 타운으로의 성장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