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간의 전략적 경쟁, 4차 산업혁명, 코로나19로 인한 세계 보건위기를 겪으면서 세계 통상환경과 무역질서가 급변하고 있다. 공급망의 효율성·비용이 아닌 공급망의 복원력·안정성 강조, 첨단기술 선점을 위한 경쟁과 유사입장국 간의 기술협력 강화, 상품뿐 아니라 데이터의 국경 간 이동과 사이버보안 이슈까지 포괄하는 디지털경제 전환,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탄소중립 사회로 이행하기 위한 준비, 코로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보건의약 분야의 협업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다자무역체제의 불확실성이 가중되고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면서 자국 우선주의 경향도 본격화했다. 디지털·그린 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주요국 간의 첨단기술 경쟁이 경제·산업 안보 논의로 이어지면서 통상정책에 안보 관점의 전략이 포함될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처럼 대외 경제·통상 환경이 전례 없이 변화하는 가운데, 전략적 경제협력과 통상 네트워크를 확대하려는 정부의 노력은 지속돼 왔다. 15개국(아세안 10개국과 한국, 일본, 중국, 호주, 뉴질랜드)이 8년간의 협상을 거쳐 2020년 타결한 세계 최대의 메가 FTA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올해 2월 1일자로 우리나라에서 정식 발효됐다.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필리핀과 연이어 양자 FTA도 체결해 신남방 핵심 파트너와의 FTA 네트워크를 완성했다. 신남방 지역은 지난해 수출 1천억 달러를 넘어서는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는데, 신남방 FTA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새로운 주력 수출시장으로서의 역할이 더욱 공고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아시아 최초로 중미 5개국과 FTA를 체결하고 기술 강국 이스라엘과도 FTA를 완료함으로써 글로벌 FTA 네트워크를 2016년 세계 GDP의 79%(52개국, 15건)에서 2021년에는 85%(59개국, 22건)로 끌어올렸다. 2018년 추가적인 시장개방 없이 협상범위를 최소화해 개정 협상을 신속히 타결했던 한미 FTA는 올해 3월에 발효 10주년을 맞이한다. 지난해 12월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디지털 통상협정인 한·싱가포르 디지털동반자협정(DPA)을 타결해 디지털 신산업 분야의 협력을 강화하고 디지털 방식의 새로운 수출동력을 창출할 계기를 마련했다.
주요국과 공급망 협력 통해 공급망 안정 나서
세계 통상 패러다임의 대전환이라 부를 중차대한 시기를 맞아 산업통상자원부는 글로벌 통상 파트너십을 한층 강화해 우리 기업의 해외시장 진출과 우리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지원하면서, 공급망 안정화, 기술 통상 협력, 디지털 통상, 기후변화·탄소중립 대응과 보건위기 극복 등 5개 주요 신통상 이슈를 전략 분야로 설정해 통상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통상환경의 변화를 불러온 요인들과 각국의 대응 현황을 살펴보고 올해 우리 정부의 통상정책 방향을 개관한다.
코로나19로 인한 공급망 충격이 자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으로 이어지면서 각국의 산업경쟁력 강화 노력과 첨단기술 확보를 위한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은 각각 행정명령과 신산업전략을 통해 주요 산업의 공급망 실태분석을 진행하고 반도체산업 지원 법안을 마련 중이다. 각국은 신흥 첨단기술과 공급망 핵심기술의 중요성을 안보 차원에서 규정하고 수출통제와 외투심사 등 전통적인 방식으로 기술유출 방지와 기술보호에도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과 EU가 발족한 통상기술위원회(TTC), 4개국(미국·일본·호주·인도) 간의 쿼드 첨단기술 작업반 구성, 글로벌 공급망 정상회의 개최가 보여주듯이, 각국은 공급망과 기술 경쟁에서 앞서 나가기 위한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는 중이다.
이에 정부는 공급망 안정화와 복원을 위해 주요국과의 공급망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과는 지난해 5월 한미 정상회담에 이어 상무장관·통상장관 회담을 통해 공급망 협의를 강화하고 반도체 파트너십 대화 채널을 구축했다. 호주와는 핵심광물 공급망 협력, 인도네시아 및 베트남과는 각각 요소 공급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지난 2월에도 영국과 핵심 공급망 협력 MOU를 체결하는 등 핵심 분야별 공급망 협력도 구체화해 나가고 있다.
아울러 글로벌 기술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고 유망산업 분야에서 글로벌시장을 주도하기 위해 디지털·탄소중립 분야의 국제표준 선점 노력을 지원하고, 선진국과의 기술 통상 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개도국에 대한 그린·디지털 기술 전수를 추진할 것이다. 산업안보 차원에서 국가핵심기술의 유출을 방지하기 위한 체계적 기술보호 조치를 시행하고 첨단기술 보호를 위한 대외 정책공조도 강화할 것이다.
세계경제의 디지털·그린 전환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글로벌 보건위기 대응을 위한 국제적 협력도 지속되고 있다. 코로나19로 활성화된 비대면 경제하에서 온라인 거래와 데이터 이동이 급증함에 따라 디지털 통상규범 마련의 시급성이 부각되고 디지털 통상협상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지난해 11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를 계기로 각국은 국가별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상향 발표하고 탄소중립을 위한 기후협력을 확대하는 한편, 유럽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 같은 환경규제 도입이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작용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제기 중이다. 또한 코로나19 상황에서 의료물품과 백신 부족을 겪으면서, WTO를 비롯해 APEC, OECD 등 주요 국제기구에서도 필수 물자와 인력의 국경 간 이동, 의약품 지식재산권의 보호 수준 등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국제적 협력에 논의를 집중해 왔다.
디지털경제동반자협정 가입 협상 개시하고 사회적 논의 거쳐 CPTPP 가입 추진
정부는 지난 1월 싱가포르·뉴질랜드·칠레가 구축한 최초의 복수국 간 디지털 통상협정인 디지털경제동반자협정(DEPA)에 가입하기 위한 1차 협상을 개시하고, WTO 전자상거래 협상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아울러 디지털 유관 분야의 국내 제도개선과 통계·인력 등 디지털 통상역량 강화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WTO에서 진행되는 환경 상품·서비스의 교역 자유화 논의에 적극 참여하고 미국·호주 등과 탄소중립·청정기술 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무역과 관련된 환경조치가 세계적으로 확산될 움직임에 대해서는 통상규범에 합치돼야 하며 수출기업들의 행정 부담이 최소화돼야 한다는 점을 적극 제기하고 있다. 미국과 글로벌 백신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등 ‘K-글로벌 백신 허브화’ 비전 구현도 통상 측면에서 지원하고 있으며, WTO의 ‘무역과 보건’ 이니셔티브 및 FTA 협상을 활용해 필수 의료물품의 수출제한 자제, 관세 인하, 신속 통관 등을 적극 제기 중이다.
올해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아태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새로운 통상질서에 기민하게 대응하고 필요할 경우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글로벌 공급망과 아태지역 통상질서 변화에 대응하는 데 있어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의 경제적·전략적 가치를 감안해, 정부는 사회적 논의를 거쳐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CPTPP 가입을 추진해 나갈 계획임을 이미 밝힌 바 있다. 아울러 미국이 인태지역 내의 포괄적 경제협력 플랫폼으로 구상 중인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와 관련해서는, 한미 간의 강화된 통상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디지털·그린 경제 전환과 공급망 회복을 위한 역내 협력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협의를 지속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