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을 위시한 서방세계는 ‘규범에 기반한(rule-based)’ 국제통상질서를 확립해 시장경제권의 번영을 도모하기로 했고, 이른바 관세와 무역에 대한 일반협정(GATT)과 WTO로 대변되는 다자통상체제를 확립했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 대중국 견제를 본격화하면서 WTO 고사(枯死)작전에 돌입했고, 이후 ‘힘에 기반한(power-based)’ 정글식 통상질서가 지속되고 있다. WTO의 무력화로 다자통상체제의 공백을 FTA가 메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4년 칠레와의 FTA 발효 이후 적극적인 FTA 추진전략을 펼친 우리나라는 2022년 2월 현재 58개국과 18건의 FTA가 발효 중이다. 3월 15일이면 한미 FTA 발효 10주년이 된다. 대외개방을 수반하는 통상정책이 그렇듯이, 보는 시각에 따라 FTA에 대한 평가는 사뭇 다를 수 있다. 피해 산업이나 무역피해 계층은 개방 자체를 불편하게 여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민적 공감대 형성 쉽지 않았던 한미 FTA 협상
하지만 좁은 국토에 지하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는 국제무역을 경제성장의 수단으로 활용하지 않을 수 없고, 비교우위에 입각한 국제무역 확대를 위해 FTA 추진이 불가피했다. IMF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21년 GDP 1조8,200억 달러로 세계 10위 경제국이고, 무역 규모는 세계 8위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 통상정책 사상 최대 이슈는 한미 FTA란 점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 이전 최대 통상 이슈는 1995년 발효된 WTO가 될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모범적인 개도국이었지만 보호무역주의에 익숙했을 뿐 제조업 외에 농업과 서비스업 개방은 우리 경제가 처음 직면한 도전이었기에 국내 반발이 적지 않았다. 그렇지만 무역으로 먹고사는 국가로서 WTO에 가입하지 않을 수 없다는 당위론이 우세했다.
하지만 FTA는 특정 국가와 선택적으로 체결하는 협정으로서, WTO보다 훨씬 넓은 분야에 대한 개방과 제도 개선이 필요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모든 상품에 대해 사실상 관세를 철폐해야 하고, 수십 년 동안 지속돼 왔던 국내 경제제도와 거래관행을 글로벌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하므로 이해집단의 반발이 컸다.
더구나 세계 1위 경제대국이면서 가장 선진화된 통상규범을 가진 미국과의 FTA는 경제통상 이해관계를 넘어 반미 정서와 결부되면서 반대론이 득세했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을 뒤흔들 정도로 국론이 분열됐고, 협상 타결 이후 국회 비준 역시 다른 국가와의 FTA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한미 양국 모두에서 어려운 과정을 거치게 됐다. 더구나 트럼프 행정부가 재협상을 요구해 우리 국민들의 반감을 초래하기도 했다.
또한 한미 FTA 추진 과정에서 여러 가지 괴담이 국내에 유포됐다. 대표적으로 모 지상파 방송사의 왜곡으로 시작된 광우병 괴담은 국내에 엄청난 폐해를 초래했다. 일부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광우병과 연관시키면서 한미 FTA 협상 타결을 저지하는 수단으로 변질됐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미국산 쇠고기 소비는 늘었고,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국가다.
미국과의 FTA 협상은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결단과 다양한 경우를 대비한 협상 당국자들의 협상전략과 노력이 있었기에 타결될 수 있었다. 한미 FTA 시작부터 국내에서는 반대여론이 비등했고, 당시 참여정부 지지층은 격렬히 저항했다. 노 대통령은 반대론자들을 설득하기 위한 메시지를 수차례 밝혔고, 관련 부처 장관들과의 면담을 통해 설득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공식 협상이 시작되기 전 미국은 스크린쿼터 축소, 약가 정책 개선, 자동차 배기가스 기준 적용 유예, 쇠고기 수입 확대 등 4대 선결조건을 내걸었다. 이들 사항은 당시 미국 업계가 우리나라에 통상 현안으로 제기했던 것으로, 공식협상 전에 미국이 제기한 선결조건은 한미 FTA 반대 명분으로 활용되는 폭발성을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투자자정부제소권(ISD)이 우리 정부의 공공정책을 마비시킬 것이란 우려가 더해지면서 협상 기간 내내 통상당국자들은 미국보다는 국내 여론 개선에 더 큰 힘을 쏟아야 했다.
10년간 우리나라의 대미 무역수지 누적 흑자액 1,800억 달러에 달해
한미 FTA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게 이뤄질 수 있다. 무역규모와 무역수지 흑자 변화를 중심으로 분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58개 국가와 FTA를 체결하고 있기에 특정 FTA의 무역효과를 정확하게 추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협정 발효 전인 2011년 우리나라의 대미 수출액은 562억 달러였으나 10년 후 959억 달러로 늘어났고, 같은 기간 수입액은 445억 달러에서 731억 달러로 늘어났다. 우리나라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액은 2011년 117억 달러에서 2021년 228억 달러로 늘어났고, 지난 10년간 우리나라의 누적 흑자액은 1,800억 달러에 달해 한미 FTA가 우리나라에 상당한 도움이 됐음을 시사한다.
협정 발효 초기 우리나라의 대미 수출은 빠른 증가세를 보인 반면, 대미 수입액은 정체를 보이면서 미국 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는 FTA와 무역수지 적자 국가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고, 특히 한미 FTA에 대해서는 입에 담기 어려운 독설을 내뱉기도 했다. 2017년 미국은 한미 FTA 개정 협상을 요구했고,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 완화 등 몇 가지 사항 위주로 개정협상을 타결했다.
한미 FTA는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 수준의 FTA망을 구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미국과의 FTA 협상으로 우리나라의 FTA 몸값은 크게 올랐고, EU, 터키 등이 우리나라에 FTA 협상 추진을 제안하도록 하는 역할을 했다. 또한 한미 FTA 협상 타결 이후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전 세계 많은 국가가 이 협정을 교과서로 삼아 FTA 협상을 했다.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지난 10년간 한미 FTA는 경제통상을 넘어 양국 간 외교안보적 측면에서도 큰 역할을 했다. 특히 미중 갈등이 심화될수록 한미 FTA의 가치는 더 커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