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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환경정책이자 통상정책인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
이동규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 2022년 03월호


최근 기후변화는 글로벌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탄소를 감축해야 한다’라는 주장이 대중에게도 전혀 낯설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도 불과 2~3년 전만 해도 환경문제 하면 미세먼지가 가장 많이 언급됐으나, 2020년 10월 대통령의 ‘2050년 탄소중립’ 선언 후에는 탄소와 기후변화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기후변화가 사실이냐 아니냐의 논쟁은 더 이상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이제 기후변화는 학계에서도 다수설로 인정받고 있으며, 각국의 국내 정책뿐만 아니라 국가 간의 교류에 있어서도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이 중요한 어젠다로 다뤄지고 있다. 

특히 기후변화의 원인물질로 불리는 탄소를 비롯한 온실가스는 전 지구적인 배출총량을 관리해야 온실효과를 억제할 수 있기에 국제적인 공조가 반드시 요구된다. 지구 한쪽에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더라도 다른 한쪽에서 온실가스 배출이 증가하면 기후변화를 억제할 수 없으며, 이를 탄소누출(carbon leakage)이라 부른다. 유엔기후변화협약의 당사국들도 초창기에는 교토의정서를 통해 여력이 되는 주요 선진국 위주로 온실가스를 감축하도록 했다가, 이후 파리협정에서는 당사국 모두가 온실가스 감축에 자율적이지만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합의했다. 최근 탄소누출을 막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정책 중 가장 다국적으로 적용되는 정책이 EU에서 추진하고 있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다. 

CBAM은 EU 회원국들의 탄소 감축 노력에 준하도록 EU 역외에서의 탄소 감축을 함께 유도하기 위해 EU 역내 수준의 탄소가격을 역외에서 들어오는 수입품에 대해 부과하는 제도다. CBAM은 크게 두 가지의 목적에서 추진되고 있다. 하나는 EU 역외로의 탄소누출을 억제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EU 역내의 산업계에서 역외의 경쟁업체들에 비해 높은 탄소비용을 지불하는 데 따른 산업경쟁력 저하를 보완하는 것이다. 2021년 7월에 공개된 EU의 CBAM 입법안에 따르면, EU에 수출하는 기업들이 제품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에 대해 EU 역내 수준의 비용을 지불하지 않은 경우, EU 역내 수준만큼의 탄소가격을 수입업자가 배출권의 형태로 지불하도록 할 예정이다. 따라서 CBAM은 환경문제에 대응하는 정책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국가 간의 교역조건을 조정하는 통상정책이기도 하다.

수출산업의 탄소집약도 높은 나라에 CBAM은 민감한 조치 될 수도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교역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수출에서 탄소집약도가 높은 상품의 비중이 큰 국가에서는 CBAM이 상당히 민감한 조치가 될 수 있다. EU에 상응하는 탄소가격이 제품 생산단계나 수출단계에서 비용에 추가될 경우 수출기업의 부담이 증가하게 될 것이고, 이로 인해 산업 내 가격경쟁력이 떨어지고 수익성이 저하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CBAM이 국가 간 교역조건에 영향을 주는 일종의 무역장벽이라는 비판이 등장하고 있으며, WTO와의 합치성을 만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실제로 시행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CBAM은 기후변화라는 이슈가 더 이상 환경문제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국제통상을 포함한 경제문제로까지 연결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CBAM이 시행될 경우 우리나라에는 어떤 영향을 가져올까? 일각에서는 정부가 탄소세 등의 탄소가격 정책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어차피 발생할 탄소비용을 EU에 지불하는 대신 국내에서 지불하게 함으로써 국부의 유출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주장은 우리나라 국내 탄소가격이 EU보다 낮고, 따라서 CBAM이 도입될 경우 국내와 EU 사이의 탄소가격 격차만큼 비용을 추가 지불해야 해서 수출경쟁력이 저하될 것이라는 논리가 바탕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장의 구조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현실은 이보다 훨씬 다채로울 수 있다. 

우선, 우리 수출기업들의 경쟁상대는 EU 역내 기업만이 아니다. 기존의 다른 국가 수출기업들이 더 직접적인 경쟁상대다. 코트라에 따르면, 철강재에 대한 대EU 주요 수출국은 러시아, 터키, 중국, 인도 순이다(KITA K-Stat, 2020년 철강재 품목 중량 기준). 이상의 주요 수출국 중 우리나라보다 국내 탄소가격이 더 높다고 할 만한 국가를 찾기 어렵다. CBAM이 시행되면 상대적인 가격상승 부담은 우리나라가 더 낮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EU 역내 철강기업들도 CBAM의 WTO 합치성을 위해 기존의 배출권 무상할당 혜택이 유상할당으로 전환되기에 타국 기업들보다 가격경쟁력이 무조건 개선된다고 평가할 수도 없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의 분석에 의하면, CBAM으로 철강산업에서 EU 수출 시 비용은 러시아가 26%, 터키가 10%, 중국이 17%, 인도가 32% 상승하며 우리나라도 12%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또한 각 시장참여자의 시장지배력에 따라서도 탄소가격의 효과는 달라질 수 있다. CBAM 입법안은 인증서의 구매·제출 의무를 수출기업이 아니라 수입업자에 부과하고 있다. 그러므로 수입업자가 수출기업에 해당 비용을 100% 요구하게 될지는 의문이다. 이것은 수입업자와 수출기업 간의 시장지배력 차이 때문일 수도 있지만, 수입업자가 제품시장에서 해당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제품소비자의 수요탄력성에 따라 탄소가격이 제품가격에 반영되는 수준이 달라질 것이며, 상황에 따라 수출기업의 부담보다는 소비자의 부담이 더 크게 증가하는 것으로 귀결될 수 있다. 이러한 효과를 확대해서 생각하면, 해당 제품을 중간재로 사용하는 후방산업(예를 들어 철강제품이라면 자동차산업)에서 연쇄적으로 생산비용이 증가하게 돼 후방산업이 세계시장에서 가격부담을 떠안을 수도 있다. 즉, EU 역내 철강재 가격이 상승하면 역내 자동차산업의 생산원가 부담이 증가하며, 이는 세계 자동차시장에서 EU 역내 기업들의 경쟁력이 오히려 저하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탄소세 등 국내 탄소가격 제도는 정책 여건, 파급효과 고려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결국 CBAM의 효과를 제도에 직면하는 대상에만 국한해 대응할 경우 너무 평면적으로 해석해 적절한 조치가 되지 못할 수 있다. 국제통상에서의 정책효과는 상당히 입체적이어서 연관된 집단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이는 경제적인 이해관계뿐만 아니라 환경적인 효과에서도 마찬가지다. 단적인 예로, CBAM은 탄소누출을 억제하기 위해 추진되는 정책이지만, 이 제도가 전 세계 시장에서 모두 적용되는 것이 아니기에 여전히 탄소누출의 유인은 남아 있다. EU에 수출하는 기업들은 CBAM 제도로 비용부담이 너무 커진다고 판단하면 탄소집약적인 제품은 비EU 국가에 수출하고 탄소집약도가 낮은 제품만 EU에 수출하는 방식으로 수출 포트폴리오를 바꿀 수도 있다.

탄소세 등의 국내 탄소가격 제도는 정책 여건과 파급효과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중하게 접근할 문제다. CBAM이나 여타 해외의 탄소국경세 정책 때문에 제도를 서둘러 강화할 경우, 자칫 국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인 효과를 대비하지 못한 채 설계할 우려도 있다. 오히려 지금 시급한 조치는 이미 시행 중인 다양한 탄소가격 제도(배출권 거래제, 에너지세제, 부담금 등)가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협상할 수 있는 근거와 자료를 확보하는 일이다. 지난해 말 EU는 CBAM의 개정 검토보고서를 발표했다. 해당 문서에서는 적용대상, 적용시기, 인증서 미제출 시 벌금수준 등에서 제도를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수정하고 있다. 각국의 탄소가격도 명백한 것만 인정하는 쪽으로 제안했다. 해당 문서의 내용이 EU 의회에서 얼마나 지지를 얻게 될지는 지켜봐야겠으나, 우리가 이미 하고 있는 노력이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하고 부족한 것은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최선일지 다각도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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