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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과학기술 역할 확장에 걸맞은 제도 인프라 구축 병행을
박찬수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 2022년 06월호


디지털 전환과 비대면 사회로의 전환, 기술패권 경쟁과 신기술·안보 협력 중심의 국제질서 재편 등 전 세계가 격변의 시기에 있다. 또한 코로나19의 충격은 국내경제에 여전한 부담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 2019년 20조 원을 돌파한 한국의 연구개발(R&D) 분야 재정지출은 올해 29조8천억 원의 예산이 편성됐으며, 앞으로도 유지·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가 현재의 국가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기대를 의미한다.

좁게 보면 과학기술의 진보가 신산업 창출로 연결되고 국가경제의 성장을 이끌게 되는, 소위 국민경제 총공급 요인이 주도하는 성장 모멘텀에 대한 기대라 할 수 있다. 내연기관의 발전은 운송·정유뿐 아니라 도로·여가·석유화학 등 다수 산업의 도약을 이끌었으며, 1990년대 낸드플래시 메모리 기술은 사람의 경험과 기억을 실시간으로 저장하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며 모바일 시대로의 전환을 가능케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편 과학기술의 역할을 넓게 본다면, 경제성장을 넘어 외교, 국방·안보, 의료·복지, 지역 균형발전 등 사회 현안에 직접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까지 확대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과학기술 분야는 국가경제를 한 단계 더 도약시키는 가장 확실한 선순환 투자영역으로, 그간의 양적 확대를 뒷받침하는 질적 성장과 시스템 고도화가 필요하다. 이 글에서는 미래산업 발굴을 위한 R&D 투자의 전략성 제고와 경제·사회 혁신을 위한 과학기술의 기여 확대, 그리고 이를 위한 제도개선 과제를 향후 정책 방향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전략기술 기반의 미래 먹거리 탐색에 시장의 판단과 선택 과정 반드시 요구돼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한 과학기술 정책의 방향성은 미국이 지난해 6월 발표한 「혁신경쟁법(US Innovation and Competition Act)」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법에서는 자국 산업의 글로벌 리더십 재건을 위한 국가 전략으로 인공지능(AI), 양자컴퓨팅, 첨단제조 등 10개 분야에 향후 5년간 총 1,500억 달러 이상의 연방 R&D 투자를 한다는 방침과 함께 반도체, 대용량 배터리, 의약품, 희토류 등 4대 품목의 공급망 전략 등을 제시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국가경쟁력 및 경제안보를 목적으로 전략기술(critical technology)을 지정하고 관리하려는 세계 여러 국가의 노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기술의 자체 개발을 위한 투자 확대뿐 아니라 기술 확보, 안보·보호 등의 노력을 포함한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12월 국가안보와 공급망 등을 기준으로 기술주권 확보가 필요한 10대 국가필수전략기술을 선정, 발표한 바 있다. 

 

 
국가필수전략기술을 개발·육성·보호해 미래 신산업으로 연계시키는 시도는 정책의 연속성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미래성장동력, 혁신성장동력 등 다양한 신산업 정책이 R&D 전략과 함께 추진돼 왔다. 각 시기별로 대상 기술 분야와 추진체계는 변동성이 있었으나, 신산업 발굴이 과학기술의 역할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특별한 이견이 없었다. 「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조치법」,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등 유관법령과의 정합성 검토와 함께 구체적인 개발·보호 지원의 내용과 국가 차원의 청사진 수립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편 올해 정부의 R&D 투자계획에 따르면, 탄소중립과 D.N.A(데이터·네트워크·AI), 디지털 전환, 소재·부품·장비 등에서 과학기술을 통해 신산업을 발굴하고자 하는 정책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반도체(지능형 메모리), 차세대 AI, 수소, 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등 에너지 신기술에 대한 투자 확대가 필요하며, 감염병 대응을 위한 바이오 분야 투자의 성과와 우주, 양자 등 미개척 신산업 분야 투자 등도 주목된다.

다만 전략기술 기반의 미래 먹거리 탐색에 있어서 시장의 판단과 선택의 과정이 반드시 요구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과거 기술·공급자 중심의 신산업 정책이 결과적으로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일부의 지적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형 뉴딜이나 데이터댐 등 기존 투자·인프라를 활용한 후속 R&D 연계 가능성, 투자 확대의 이면에 숨겨진 디지털 양극화 우려와 디지털 안전망 구축 노력 등은 여전히 남겨진 숙제라고 볼 수 있다. 

전체 R&D 사업 미션에 맞게 재구성하는 등 R&D 전략성 강화 위한 방안 필요

정부 R&D 투자 및 관련 활동이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의 범위와 파급효과는 점점 확대되고 있다. 한미 공동우주기술협력과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에서 달 탐사 등이 구체화되고 있는 것은 인류 생활영역 확대를 위한 글로벌 과학기술 협력의 긍정적인 움직임이며, 개발협력(ODA)에서 기존의 교육·복지 분야 외에 혁신 거버넌스 및 정책로드맵 수립, 벤처·스타트업 생태계 구축 등으로 범위가 확대되는 것 역시 유의미한 변화라고 하겠다. 국민 대부분은 감염병(백신, 치료제)과 고령화(항노화, 뇌과학)에 대한 해결책을 과학기술에서 찾고 있으며, 의료·복지 전달체계 및 사회통합을 위한 갈등관리 등도 디지털 포용이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발전하고 있다.

공기질, 생활소음, 폐기물 등 생활밀접 분야에서 국민의 의견을 직접 반영한 R&D 사업이 확대되는 것도 주목할 만한 변화다. R&D-공공조달 연계사업, 국민참여예산제도, 시민참여형 R&D 사업과 리빙랩 등이 여기 해당하는데, 자칫 공급자 중심으로 편향되기 쉬운 과학기술 예산투입 과정에서 산업현장과 시민사회의 참여를 통해 정부 R&D 투자의 민주성을 강화하고 국민 삶의 질 제고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도록 하는 새로운 정책 시도로서 확대될 필요가 있다.

급변하는 대내외 경제환경과 요구되는 역할 변화에 부합하는 제도개선은 성과창출의 필요조건이다. 양적 확대와 미션 확장에 걸맞는 제도 인프라 구축 노력이 반드시 함께 고려돼야 하는 이유다. 

지난해 「국가연구개발혁신법」 시행에 따라 연구자 중심의 연구행정 간소화와 기획평가비 체계 개선 등 예산편성의 효율성 제고 노력이 진행되고 있으며, 연구기관별로 정립된 역할과 책임(R&R)에 따라 주요 사업의 이행을 점검하고 차년도 예산·인력에 반영하는 시도는 충분히 긍정적이다. 그럼에도 기획·평가 등 연구관리 부문에서 불필요한 규정을 과감히 없애려는 노력이 여전히 요청되며, 정부 R&D의 전략성 강화를 위해 R&D 예산 심의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보완도 요구된다. 예컨대 대규모 R&D 사업(예타와 타당성 재조사 등), 부처의 자율 통제(예타 비대상 사업), 국가 전략적 긴급 필요에 따른 예타 면제사업 등의 판단을 효과적으로 조합해 전체 R&D 사업을 미션에 맞게 재구성하고 요구예산 규모에 따라 조사내용을 차등화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기술 분야 중심의 현 R&D 예산 심의 체제에 중소기업, 지역혁신 등 임무·기능 기반 분과를 신설하는 것도 바람직할 것이다. 신성장동력 정책의 효과성을 높이기 위해 국가필수전략기술의 개발·활용, 보호를 전담 지원하는 역할을 신설하거나 과학기술 분야의 질 좋은 일자리가 성장 모멘텀으로 선순환될 수 있도록 학생 연구원 등 전체 연구인력의 성장경로에 대한 정책지원 체계를 구축하는 미시적인 관리 개선전략도 검토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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