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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블록화되는 미중 패권 경쟁, 균형 있고 실용적인 통상정책 확립해야 한다
홍지상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연구위원 2022년 06월호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통상질서의 조류 변화가 빨라지고 있다. 중국의 부상과 함께 시작된 미중 패권 경쟁은 냉전시대와 같은 진영 대립으로 확대되고 있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공급망 병목현상이 심화되면서 전 세계가 자국 공급망을 재점검하고 핵심자원 수급 안정을 위해 발벗고 나서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도 진부한 구호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구속력을 동반한 신통상규범의 출현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오늘날 국제통상질서의 재편 움직임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세계경제의 상수로 자리 잡았다. 복합적인 이해가 얽힌 국제관계는 전략적인 판단과 선택을 실시간으로 요구하고 있다. 무역의존도가 60%에 달하는 우리 경제에는 더 큰 도전이 아닐 수 없다. 

꾸준한 공급망 다변화 노력과 경제안보 핵심품목 재고여력 확대 필수적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이후 본격적으로 중국 견제에 나서고 있다. 2001년 중국의 WTO 가입 이후 전 세계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GDP 비중은 4%에서 18%로 급등했다. 같은 기간 동안 미국의 GDP 비중이 31%에서 24%로 급감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중국은 이미 미국 GDP의 70% 이상을 따라붙었고 글로벌 경제전망 기관들은 대체로 2030년을 전후로 중국의 경제규모가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국도 혼자서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동안 미국이 대중 안보협력체인 쿼드(QUAD)를 결성하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복귀를 선언하고, 한국을 포함한 인도·태평양 지역 13개국과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를 출범시킨 것도 모두 중국 견제를 위한 동맹국 결집의 일환이다. 특히 이번 IPEF 참여국의 GDP 규모는 전 세계 40%에 달하며, 반도체·배터리 등 차세대 첨단산업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등 중국의 추가적인 성장을 견제하기 위한 방안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물론 중국도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은 동남아 및 아시아·태평양 지역 15개국과 함께 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적극 참여하면서 미국의 고립작전에 대한 자구적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이와 같이 미중 패권 경쟁은 진영 대립의 양상으로 확대되면서 앞으로도 상당 기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대미·대중 교역의존도가 37%에 달하는 만큼 우리가 한쪽을 위해 다른 한쪽을 포기하는 일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단기적으로 많은 이해관계가 상충하더라도 균형의 묘를 발휘해 장기적으로 명분과 실익의 두 마리 토끼를 놓치지 않는 유연한 대응이 꼭 필요하다. 

한편 코로나19는 공급망에서 ‘효율’보다 ‘안정’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남겼다. 기업들은 재고를 최소화하는 ‘just-in-time’ 생산방식에서 만약의 경우를 염두한 ‘just-in-case’로 선회하고 있다. 맥주생산 업체 하이네켄은 멕시코 등 해외 양조장의 생산가동 중단에 대비해 본사가 있는 네덜란드에 대체 생산허브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의류 기업 휴고보스도 섬유공장 셧다운으로 생산차질이 막심했던 동남아시아 생산기지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비용을 감수하면서 유럽 인근지역으로 생산기지 이전을 모색 중이다. 최근 맥킨지가 공급망 담당 고위 경영진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73%의 기업이 공급망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모두가 코로나19 이후 효율보다 안정이 더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으면서 나타난 변화다.

글로벌 가치사슬(GVC)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공급망의 핵심거점은 중국에서 대만·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등 제3국으로 재편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의 역할은 여전히 지배적이지만 GVC 연계는 느슨해지고 북중미, 아시아 등 역내 무역이 강화되는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GVC의 변화는 미중 패권 경쟁의 경제블록화 추세와 맞물려 지역 중심의 GVC 변화를 가속화할 가능성도 크다. 

다만 교역 부문에서 우리의 공급망은 여전히 중국에 편중돼 있다. 최근 3년 데이터를 기준으로 우리나라 전체 수입 HS코드 중 대중 수입의존도가 가장 높은 HS코드 수는 총 3,225개에 달하는데, 이 중 대중 수입의존도가 70%를 상회하는 ‘취약품목’은 총 397개로 추산된다. 이러한 취약품목의 개수는 전체 HS코드 수의 3.5%에 불과하지만, 수입금액 기준으로는 무려 23.6%를 차지하고 있다. 대략 전체 대중국 수입액의 4분의 1 정도가 단일국 수입에 의존하는 취약한 품목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글로벌 공급망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꾸준하게 공급망 수급처를 다변화하고 경제안보 핵심품목에 대해 정부가 재고비축량을 더욱 확대할 필요가 있다. 과거 일본 수출규제와 요소수 사태에서 경험했던 것처럼, 특정 품목 수급에 문제가 생기면 일사불란하게 대응할 수 있는 정교한 매뉴얼도 필수적이다. 

환경보호 의무 강화 등 신통상규범의 출현에 우리 기업 현실 감안한 정책대응을

전 세계적으로 환경에 대한 인식이 제고되면서 환경보호 의무 조항이 크게 강화되고 있다. 특히 최근 수정안이 발표된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조치는 타국에 환경부담 비용을 부과하는 강력한 제재에 해당하는데, 적용 품목이 탄소 다배출 산업인 유기화학품, 플라스틱 등으로 확대될 경우 우리 수출 업계의 비용부담도 상당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배출범위가 간접배출까지 확대되는 것도 탄소배출량이 높은 전력생산 구조를 가진 우리나라에 불리한 요인이다. 다만 역외국 중 탄소세, 배출권거래제도 등 명시적 탄소가격제도를 운영하는 국가에서 지불한 비용만을 인정한다는 내용이 수정안에 반영된 만큼 이미 배출권거래제도를 운영 중인 우리나라에는 유리한 상황이다. 

세계경제가 저탄소 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환경, 노동 등 통상마찰이 쟁점화될 수 있는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 정부는 우리 기업들의 분쟁소지를 상시적으로 점검하고, 기업들의 현실과 산업 특성을 감안해 단계적으로 탄소중립 사회를 유도해야 한다. 정부와 기업이 현실적인 대안을 소통하고 함께 감내할 수 있는 속도로 신통상규범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 저탄소 사회를 향한 정부의 구호가 아무리 절실한들 기업 현장의 뼈아픈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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