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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중립 정책, 국가 잠재성장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설계되길
박호정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2022년 06월호


국가 실용주의를 기반으로 한 탄소중립 정책이 추진돼야 한다. 매우 분명하고 간단한 메시지다. 기후 위기는 다가올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지금부터 나라 곳간을 채워놔야 한다. 명분만 앞세우면서 실용을 갖추지 못한 탄소중립 정책은 그 자체가 지속가능성을 상실하게 된다. 이와 같은 간단명료한 메시지가 지난 수년간 허공을 도는 사이 우리나라의 2030년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가 상향 조정됐다.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에너지와 탄소중립 정책, 다른 국정과제와도 긴밀히 연계할 필요 

글로벌 사회는 2100년까지 지구 평균기온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C 이하로 억제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지만, 이미 2020년대 중반에 1.5°C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전망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글로벌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15%와 30%를 책임지고 있는 미국과 중국에서 당장 비약적으로 온실가스를 줄이지 않고서야 기후 위기는 피할 수 없다.

더군다나 전 세계 배출량의 1%를 담당하는 한국이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으로 수많은 논쟁을 거쳐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고 설사 넷제로를 달성한다 할지라도 말 그대로 1%만 줄었을 뿐이다. 기후 위기는 어떠한 형태로든 다가온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탄소중립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1.5°C 상승은 그렇다 할지라도, 전 지구적 재난을 막기 위해서는 2.5°C 상승은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복병을 만나게 된다. 지금 배럴당 110달러가 넘는 유가와 지난 1년간 2~3배 상승한 천연가스, 그리고 니켈, 코발트 등 천정부지로 치솟는 광물자원의 가격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이전부터 이미 상승랠리였다. 석유와 천연가스 메이저사는 주요 선진국의 탄소중립 선언으로 설비투자 확대를 꺼리게 됐고, 이는 공급 부족으로 인한 가격상승으로 연결됐다. 주요 광물자원은 배터리·태양광·전기차 시장 확대로 수요가 폭발하면서 가격이 치솟았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가 진정된다 할지라도 에너지 인플레이션은 지속된다는 것이다. 

에너지 공급망 위기는 식량 위기로 연결됐다. 안 그래도 이상기후와 기후변화로 인해 글로벌 식량공급의 변동성이 높아졌는데, 천연가스 공급 부족은 비료가격 인상으로 연결돼 식량공급에 적신호가 켜졌다. 에너지 안보가 식량 안보로, 이는 또 국가 안보로 밀접하게 연계된 초불확실성의 시대에 접어들게 됐으며, 국가 간 자원경쟁과 탄소무역 라운드는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지난해 발표된 우리나라 탄소중립 정책에서의 2050년 에너지 믹스 시나리오는 국제정치 질서가 지극히 평화롭고 안정적인 상태를 가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무탄소 연료인 수소를 사용하는 무탄소 가스터빈의 비중을 약 15~22%로 설정했는데, 수소는 2개월 이상의 장기적인 비축이 물리적·경제적으로 가능하지 않아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취약한 에너지원이다. 물론 수소경제로 나아가야 하지만 에너지 포트폴리오는 항상 리스크를 헤지(hedge)할 수 있는 방향으로 구성돼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상 나머지 에너지원은 거의 60~70%가 태양광과 풍력으로 구성돼 있어 비축 이슈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

이제 탄소중립 정책은 다른 정책과제와 긴밀히 연계해 수립돼야 한다. 격동하는 포스트 세계화 시대에서 두 번의 실기는 우리에게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줄 수 있다.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 그리고 이로 인한 에너지 안보 이슈는 국가의 잠재성장률과 장기 재정건전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입되는 2040년에서 2050년 무렵에 한국은 이미 저출산 고령화와 4대 연금 고갈로 최대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이처럼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에너지와 탄소중립 정책을 중요한 다른 국정과제와 무관하게 디커플링하는 오류를 되풀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재생에너지산업 생태계 구축 시간 확보 위해서라도 NDC 목표 현실화해야 

우선 2030년의 NDC가 현실성 있게 수정될 필요가 있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2030년까지 30%가 되기 위해서는 태양광과 풍력이 100GW에서 120GW 정도가 필요한데, 이는 현재 약 20GW의 5~6배 되는 규모다. 설사 이 정도 규모가 국내에 설치된다 하더라도 거의 10년의 기간이 소요되는 송전망 구축이 뒤따르지 못하기 때문에 계통에 접속되기도 힘들다.

무엇보다 재생에너지의 국내 산업 생태계 구축을 위한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NDC 목표는 수정돼야 한다. 탄소중립이 우리가 가야 하는 길일지라도 국가의 잠재성장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수립돼야 하며 이를 통해 국내의 재생에너지산업이 육성돼야 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국제정치 질서의 변화를 고려할 때 이제 에너지 안보와 해외자원개발의 역량 역시 확보돼야 한다. 에너지 안보의 개념은 합리적이고 수용 가능한 가격 조건에서 차질 없이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된다. 이것이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꾸준한 해외자원개발이 이뤄져야 하는데, 고위험·고수익인 자원개발 투자에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것은 미국이나 일본, 중국 등의 사례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자명하다. 2021년 기준으로 겨우 350억 원에 머물고 있는 해외자원개발의 정부 특별융자 예산은 한국의 자원개발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로 촉발된 에너지 위기를 계기로 자원개발과 에너지 안보 역량 강화는 더 이상 정치적 협상 대상이 아닌 주요 국정과제로 확립돼야 할 것이다. 

탄소중립과 관련해 육성돼야 하는 신산업 분야도 다양하다. 발전 부문에서 수소와 암모니아 혼소(두 종류 이상의 연료를 혼합해 연소시킴)를 통한 온실가스 감축, 배터리산업의 수출전략화, 소형모듈원자로(SMR) 산업화 등 탄소중립 분야의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노력이 배가돼야 할 것이다. 

앞으로 21세기는 기후 위기와 에너지 위기가 동시에 퍼펙트 스톰처럼 다가올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이러한 배경 아래 기후변화에 강건한 경제시스템을 미국의 자본과 미국의 노동력으로 구축하고자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 정책’을 추진 중에 있다. 우리 역시 탄소중립에 투자하되 국내 산업 육성과 장기적인 자본축적에 기여하는 국가 실용주의 철학을 갖고 정책이 설계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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