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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적 식량 확보 위한 중장기적 투자와 취약계층에 대한 실질적 지원 필요
김종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2022년 07월호


미중 무역 분쟁, 코로나19 확산 등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위기로 2020년 하반기부터 상승 추세를 보이던 국제 곡물 가격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급등했다. 이러한 국제 곡물 가격 급등으로 식량 안보를 우려한 개도국들이 농산물 수출을 제한하는 정책을 앞다퉈 시행하면서 국제 곡물시장의 수급 불균형은 더욱 심화되는 양상이다. 

세계식량농업기구(FAO) 곡물가격지수(Cereal Price Index)는 지난 5월 기준으로 전년 동월 대비 29.7%, 평년(최근 5년 평균) 대비 62.7% 상승했다. 곡물 이외의 농축산물도 생산 및 소비 측면에서의 대체 관계와 농산물의 금융화 등으로 곡물 가격과 동조하는 모습을 보여 전년 동월 대비 기준으로 식용유는 31.1%, 유제품은 16.9%, 육류는 13.6%, 설탕은 12.6% 상승했다. 

이러한 세계 농산물 가격의 급등은 농식품의 수입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농식품 및 외식 물가에 상당한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국제 곡물 가격 변동성 증가의 원인과 전망을 살펴보고 정부의 농식품 물가 안정화 정책에 대해 정리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국제 곡물시장 위기 빈번해질 우려


30여 년간 안정세를 유지했던 국제 곡물 가격은 2000년대 중반을 넘으면서 급등락을 반복하는 모습이다. 1970년대 초 석유 파동에 이은 식량의 무기화 논란으로 식량 자급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증산을 위한 각국의 농업보조금 지급과 투자가 증가했다. 이러한 농업 부문 지원으로 세계 생산량이 증가하면서 국제 곡물시장은 2000년대 초까지 명목가격이 일정 수준에서 유지되며 실질가격은 하락하는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 기간 중국, 인도가 식량 자급을 달성했으며 EU도 순수출국으로 전환됐다.

그러나 2000년대부터 WTO 체제로 인해 농업보조금 감축과 자유무역이 강조되면서 글로벌 식량 공급망에서 농업경쟁력을 보유한 소수 국가의 역할은 증가한 데 반해, 농업경쟁력이 열위에 있는 국가들의 식량 수입의존도는 높아졌다. 이렇게 세계 식량 공급이 소수의 국가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기상 요인으로 인한 생산량 감소, 신흥국 수요 증가, 바이오 연료용 수요 증가, 세계경제 위기 등의 시장 충격은 곧바로 국제 곡물 가격 급등이라는 시장 위기로 귀결돼 2008년에 1차 애그플레이션(agflation), 2011~2012년에 2차 애그플레이션을 초래했다. 최근의 국제 곡물 가격 급등도 밀, 옥수수, 해바라기유 등 부문에서 글로벌 공급망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생산과 수출이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에 따른 측면이 크다.

현재와 같이 국제 곡물 공급망이 소수의 국가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높은 가격 변동성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더해 미중 무역 분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세계화의 후퇴와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기후변화 영향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높은 시장 집중도와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의 분쟁 발생 가능성은 향후 국제 곡물 가격 변동성을 높여 시장 위기를 더욱 빈번하게 만들 것이다.

세계 농식품 가격 상승은 쌀 이외의 곡물 및 유지류, 설탕 대부분과 육류, 유제품의 상당 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농식품 소비자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올해 5월 소비자물가는 쌀값 하락 등으로 농산물 물가가 안정적인 수준(전년 동기 대비 0.6% 하락)을 보였음에도 수입 농식품 사용 비중이 높은 가공식품·외식·축산물 물가가 전년 동월 대비 각각 7.6%, 7.4%, 12.1% 상승했다. 통상적으로 수입 곡물로 생산되는 식품소재(밀가루, 전분당, 대두유 등)와 배합사료 가격은 국제 곡물 가격을 3~6개월 후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아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국제 농산물 가격 변동 폭이 국내 가공식품·사료 물가에 본격적으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의미로, 올해 하반기에 농식품 물가 상승 압력은 더 커질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농식품 물가 상승에
세제·금융 지원, 대체 원산지 확보 등으로 대응


우리나라는 2008년 애그플레이션을 계기로 국내 식량 생산·공급 확대, 해외 농업 개발, 국가곡물조달체계 구축을 통해 국제 곡물 위기 시 대응수단을 마련하고 이를 바탕으로 조기경보시스템을 운영하는 시장 위기 대응체계를 구축해 왔다. 이러한 체계에 따라 2020년 후반부터 시작된 국제 곡물 가격 상승에 대응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인 2021년 4월 조기경보 단계를 ‘안정’에서 ‘주의’로 격상하는 한편 업계의 부담을 완화하고 국내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세제·금융 지원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대응책을 추진했다. 

2021년 6월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인 올해 3월에는 기존의 세제·금융 지원을 강화했고, 대체 원산지 확보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민관 합동 대응책을 발표했다. 이러한 대응에도 농식품 물가 상승이 심화되자 지난 6월에는 기존의 세제·금융 지원에 더해 농축산물 할인쿠폰 확대, 밀가루 가격 안정 지원 등의 추가적인 대책을 수립했다.

국내 농식품 물가 상승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정부의 통제권이 미치지 못하는 국제 농산물 가격 상승과 우리나라의 높은 수입의존도라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국제 곡물 위기 대응을 위해 추진됐던 정책들이 낮은 경제성, 초기의 실적 부진 등으로 실질적인 투자로 연결되지 못하면서 위기 대응 수단이 마련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국제 곡물 가격 안정화로 식량 안보 이슈가 국민적 관심사에서 멀어지면서 국제 곡물 위기 대응체계를 갖추기 위한 정책 추진이 지속되지 못했다.

국내 농업자원의 한계로 일정량을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식량 안보 확보와 농식품 물가 안정을 위해서는 국내 식량 생산·공급을 최대한 확대하고 글로벌 공급망을 안정시키는 정책 이외에 묘수는 없다. 이러한 정책은 장기에 걸쳐 대규모 자본투자가 이뤄져야 성과를 낼 수 있으므로 중장기적인 시각에서 정책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 농식품 물가의 상승은 특히 저소득 가구 등 취약계층의 식량 안보를 위협한다. 기존의 식량 안보 정책은 식량 확보에 초점을 두고 수행되면서 직접적인 위협에 노출되는 취약계층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다. 식량 위기 대응매뉴얼 등에 농식품 물가 상승 시에 취약계층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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