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극복 과정에서 방역·백신 등 과학기술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또한 비대면·온라인화가 급진전하며 디지털 기반의 구조적 변화가 한창이다. 특히 인공지능(AI)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각종 기술혁신의 융합이 가속화되고 광범위해지며 우리 경제사회 전반에 문명사적 전환이라 일컬어질 정도의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 중이다. 이에 주요국은 과거의 군사력·경제력 외에 기술력을 중심에 놓고 패권경쟁에 나서고 있다. 경제위기 속에서도 우리가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과학기술과 디지털에 대한 투자와 육성을 소홀히 할 수 없는 이유다. 특히 신흥 기술(emerging technologies)의 등장 및 확산으로 기존 정부 주도의 추격형 모델은 한계에 도달한 상황에서, 민간이 주도하고 국가는 지원하는 민관협력 기반, 선도형 모델로 과학기술·디지털 분야의 정책방향과 수행방식을 새롭게 설계해야 할 때다.
R&D 예비타당성 심사 대상 1천억 원 이상 규모로 상향하고
신속심사제도 도입해 빠른 기술 변화에 대응
먼저, 국가 연구개발(R&D) 시스템을 혁신해 기술 선도 국가로 발돋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문제해결 중심, 민간 주도, 선택과 집중, 산학연 협력 강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제5차 과학기술 기본계획을 대국민 의견수렴을 거쳐 올해 말까지 마련할 계획이다. 이미 세계 각국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 자체 원천기술 확보에 주력하고 있어, 우리도 경제·외교·안보 관점에서 대체불가 원천기술 확보를 위해 ‘국가전략기술육성특별법’을 제정함으로써 강력한 추진체계를 마련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범정부 협업체계를 구축하고, 민간 수요를 적극 반영한 핵심 전략기술을 빠르게 확보하는 데 집중한다.
국가 R&D를 보다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추진하기 위한 기반도 재정비한다. 기존 500억 원 규모 이상의 R&D 사업에 실시하던 예비타당성 심사를 1천억 원 이상 사업으로 상향하고, 신속심사제도(fast track)를 도입해 빠르게 진행되는 기술변화에 대응력을 높인다. 국가 R&D의 활용성 높은 성과 창출을 위해 평가시스템도 새롭게 개발·적용한다.
이러한 R&D 기반을 바탕으로 민간과의 협력을 통해 신기술·신산업을 육성해 나간다. 양자, 차세대원전 등 태동기에 있는 분야는 초기 원천기술 확보에 주력한다. 2030년대 폭발적 성장이 예상되는 소형원자로 시장에서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 안정성·경제성·유연성 측면에서 경쟁력을 갖춘 혁신형 소형모듈원전(SMR)을 부처 공동으로 개발 중이며, 산업적·안보적 파급력을 갖는 게임 체인저로서 양자 분야의 글로벌 선도를 위해 양자컴퓨터, 양자인터넷, 양자센서 개발 등도 본격 추진한다.
우리나라가 강점을 갖고 있는 반도체 분야의 경우 차세대 AI 반도체, PIM 반도체 등의 핵심기술 개발과, 이를 뒷받침할 우수인재 양성을 위해 산학연 간 상시 협력 플랫폼을 구축함으로써 현장 수요에 부합하는 인재양성 및 연구협력 체계를 조성하고, 대학과도 협력해 학·석·박사 인재양성을 추진한다. 이에 더해 국산 AI 반도체를 활용하는 데이터센터 구축비용 지원 등 민간의 수요 창출 및 실증도 지원한다.
민간이 우주개발을 주도하는 뉴스페이스 시대를 맞아 우리나라도 우주개발 진흥 기본계획을 마련하고 첨단기술의 국산화, 공공기술의 민간 이전을 촉진함으로써 성장 초기단계에 있는 국내 우주산업 육성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지난 6월 독자 개발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의 성공에 이어 8월로 예정된 국제 공동 달궤도선 ‘다누리’의 발사도 성공적으로 이뤄냄으로써 우리나라 우주산업이 급격히 성장할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외에도 대학·연구기관 등의 유망 R&D 성과가 기술 스케일업을 거쳐 실제 사업화까지 이어지도록 ‘기술개발 실용화 사다리’를 지원하며, 미국 등 주요 선진국과 아르테미스(달 탐사) 프로그램 추가 과제 발굴, 감염병에 대응할 mRNA 백신 공동연구, 전문가 워크숍을 통한 양자 분야 공동연구 과제 발굴 등 R&D 분야의 국제협력을 본격화해 기술동맹도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차세대 범용 AI 원천기술 개발에 5년간 3천억 원 투입
AI는 잘만 도입해 활용하면 10% 정도의 생산성 향상이 아니라 10배 증가에 가까운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한다. 이처럼 AI의 진정한 가치 실현을 위해, 세계 최고 수준의 AI와 빅데이터를 육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사회 디지털혁신의 전면화에 나선다. 이미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 5G 상용화 등 네트워크 인프라에서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은 바 있으나, 디지털의 핵심인 AI 수준 등은 선진국에 비해 미흡한 실정이다.
이러한 문제를 조기에 극복하기 위해 우선 AI 기술발전을 좌우할 데이터의 생산·거래·활용 촉진, 데이터산업 기반 조성 등을 위한 범정부 ‘데이터산업 진흥 기본계획’을 연말까지 마련한다. 또한 중소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초거대 AI 모델을 개발하고 대규모 AI 반도체가 활용된 데이터센터를 AI 개발기업이 활용할 수 있도록 무상 제공하는 등 민간의 AI 활용 확산을 유도한다. 아울러 현재의 좁은 범위(narrow) AI 한계를 뛰어넘어 학습능력·활용성이 개선된 차세대 범용 AI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데 5년간 3천억 원의 R&D 예산을 투입한다. 이를 통해 미국, 중국 등 선두그룹과의 기술격차를 빠르게 좁히면서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AI 기술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와 함께 과학기술·디지털 기반으로 민간의 혁신성을 높이고 고물가 시대 민생안정을 위한 현안 해결에도 적극 나선다. 국가기관 등이 발주한 소프트웨어 사업에 대기업 참여를 제한하고 있는 규제를 보다 합리화하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또한 혁신적이면서 공정한 디지털 플랫폼 생태계 조성을 위해 정부가 주도하는 입법 중심의 규제에서 벗어나 민간 주도의 자율규제기구 구성·운영을 지원함으로써 민간의 혁신성을 제고해 나가려고 한다. 아울러 어르신·청년의 생계비부담 완화를 위해 통신비부담도 경감한다. 5G 요금제를 다양화해 선택권을 확대하고, 청년 교육·취업 등에 필수적인 데이터 이용혜택 증가도 함께 추진할 계획이다.
과학기술과 디지털은 위기 때마다 우리 경제사회의 회복을 앞장서 이끌고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는 역할을 해왔다. ‘과학기술 입국’을 통해 1960~1970년대 경제발전과 산업화에 기여했으며, ‘ICT 강국’ 달성을 통해서는 1990년대 이후 정보화를 선도하며 미래 먹거리 마련에 성공할 수 있었다. 코로나19로 촉발된 위기와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 시대를 맞아 지금 또 한번 우리 과학기술과 디지털의 혁신으로 미래 구조 전환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며 지속 가능한 성장기반을 확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