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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0년의 세계화 시대 뒤로하고 탈세계화·지역화로 가나
윤석천 경제평론가, 이코노미인사이트 집필위원 2022년 09월호

 

20세기는 ‘성장의 시대’였다. 세계대전이란 참화를 겪었지만 일본, 독일 등은 눈부신 성장을 해 미국 등 기존 선진국을 따라잡았다. 그뿐만 아니라 많은 신흥국이 뒤를 이어 남루함을 벗었다. 우리나라가 대표적인 예다. 이는 상당 부분 ‘세계화’ 덕분이다. 세계화의 핵심인 신자유주의는 20세기를 상징한다. 국가의 시장 개입을 비판하고 시장 기능과 민간의 자유로운 활동을 중시하는 철학은 물리적 국경을 무력화하는 무역·자본 자유화로 연결됐다. 부작용도 있었지만 세계화로 인류가 한층 풍요로워진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수많은 사람이 헐벗음과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세계화를 이끈 건 미국이다. 가능했던 이유가 있다. 1980년대 후반 소련은 마침내 패배를 선언했다. 미국을 축으로 한 자유민주진영의 힘이 소련 주도의 공산주의를 패퇴시켰다 할 수 있다. 경쟁국이 사라진 세계에서 미국의 단극체제는 당연했다. 이때부터 미국은 자신이 가진 힘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타국에 대한 영향력을 극대화했다. 동시에 글로벌 공공재를 주도적으로 공급했다. 교역로 확보, 글로벌 경제정책 조율, 세계안보 등을 책임졌다. 무엇보다 최종 소비자 역할에 충실했다. 세계질서는 미국에 의해 정해졌고 유지됐다. 세계화는 그 주요 수단이었다. 덕분에 동아시아는 눈부신 성장을 하고 세계화는 질주할 수 있었다.

보호무역 기조와 코로나19 공급망 위기 등으로
자국 생산·제조로 눈길 돌려


이런 흐름은 2008년 금융위기 때까지 이어진다. 세계화는 영원할 듯 보였다. 하지만 2008년을 기점으로 상황은 바뀐다. 탈세계화 조짐이 여기저기서 보이기 시작한다. 영국의 브렉시트와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은 이를 상징한다. 세계화를 이끈 선진국의 태도와 관점이 변하고 있었다.

왜 질주하던 세계화는 주춤하기 시작했을까? 가장 큰 원인은 세계화로 인한 불평등의 심화다. 세계화는 개인은 물론 국가 간 격차를 더욱 늘렸다. 특히 선진국 중산층은 자신들이 세계화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봤다고 믿었다. 미국은 세계화로 가장 큰 이득을 본 국가라 얼핏 생각하기 쉽다. 맞다. 하지만 자국민 입장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 세계화로 인한 이득은 모든 미국 국민에게 골고루 분배되지 않았다. 세계화는 기업의 해외 이전을 자유롭게 했지만 이는 자국 산업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졌다. 양질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중산층 이하 가계의 소득이 줄거나 정체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대기업과 거대 자본은 이득을 봤지만 중산층과 중소기업은 손해를 봤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무엇보다 중국과 같은 신흥강국의 부상도 그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 모두가 세계화로 인한 것이란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중간계층의 불만은 결국 정치를 바꿨다. 트럼프의 등장이 이를 잘 말해 준다. 트럼프는 자국 이익을 우선시하는 신고립주의와 보호무역을 옹호함으로써 2017년 미국 대통령 자리에 오른다. 트럼프가 등장하면서 자유무역이란 가치는 서서히 그 빛을 잃어간다. 이때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덮쳤다. 바이러스는 이런 흐름에 기름을 부었다. 생산·물류 흐름은 일시에 멈췄다. 문제없이 작동하던 공급망이 흔들리자 각국은 위기를 맞았다. 필수 소비재 수입의존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더했다. 이때 주요국은 자국 생산과 제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감한다. 자본과 무역 자유화로 대변되는 세계화가 정답이 아니란 인식이 일반화됐다. 세계화 퇴조 현상은 이로써 한층 뚜렷해진다. 

이는 2021년 취임한 바이든 대통령 시대에도 크게 바뀌지 않는다. 자유무역 가치를 존중한다고는 하지만 자국 기업 우대와 중국 및 중국 기업에 대한 압박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러시아와의 갈등도 깊어지고 있다. 올해 초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세계화가 더 이상 지향해야 할 지상 목표가 아니란 것을 서구, 특히 미국이 확인한 계기가 됐다.

1960~1990년대까지 세계는 둘로 나뉘어 대립했다. 이른바 냉전시대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강대국 간 갈등은 미국이 주도하던 단극체제가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대만을 둘러싼 미중 대립,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이를 웅변한다. 러시아와 중국이 한 축, 미국과 서방이 한 축이 돼 서로 동맹을 규합해 대립하는 시대가 본격화하고 있다. 미국의 글로벌 공공재 공급 역할이 축소되면서 대륙마다 패권을 차지하려는 군웅할거(群雄割據) 조짐마저 보인다. 중동 패권을 둘러싼 이스라엘,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튀르키예(터키) 간 경쟁이 좋은 예다. 세계는 이미 다극체제로 접어들고 있다. 이 모두는 세계화 퇴조를 의미한다. 세계는 이미 탈세계화 혹은 지역화를 지향하고 있다.

3D 프린터, 로봇 등 신기술이 지역화 가속할 수도

이를 부추기는 건 정치적·경제적 요인만이 아니다. 눈부신 기술혁신도 ‘탈세계화’를 가속하고 있다. 지난 50년이 통신·유통·운송 분야에서의 기술진보에 따른 ‘세계화’ 시기였다면, 향후는 또 다른 기술진보에 의한 ‘탈세계화’가 촉진되는 시대가 될 수 있다. 지난 세기 세계화가 필요했던 이유는 화석연료의 원활한 수급, 저임금 수요 때문이었다. 21세기 인류는 여전히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지만 새로운 에너지 시대로의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종 소비자와 가까운 곳에서 에너지를 생산하는 신재생에너지의 등장은 세계화의 필요성을 그만큼 줄이게 될 것이다. 또한 3D 프린터나 가상·증강 현실, 로봇 등 기술 진보 및 도입 역시 지역화를 가속할 수 있다. 싼 노동력을 찾아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오프쇼어링 유인은 줄어들고, 대신 미국처럼 자국 내에 제조회사를 유치하는 ‘온쇼어링(onshoring)’이나 ‘니어쇼어링(nearshoring)’ 바람이 점차 거세질 수 있다. 이는 우호적인 공급망 확보, 경쟁국 압박 등이 목적이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론 새로운 기술에 힘입은 바가 크다. 노동원가가 높은 선진국에서 제조업을 육성할 수 있는 발판이 신기술로 만들어지고 있다. 

앞으로 50년은 탈세계화·지역화 시대가 될 수 있다. 최소한 세계화 추세는 약화할 것이다. 정치적·경제적 필요성과 새로운 기술이 그것을 가능케 하고 있다. 우리는 거대한 변화의 초입에 있다. 변화는 필연적으로 불안정을 야기한다. 기존 질서가 흔들릴 때 혼란은 불가피하다. 현명한 대처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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