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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된 농식품체계 지속 가능하지 않아… 식량주권 확보로 우리 먹거리 지켜내야
윤병선 건국대 경제통상학과 교수 2022년 09월호


세계화 시대라고 하지만, 곡물을 비롯한 먹거리의 생산-가공-유통(무역)-소비로 이어지는 농식품체계는 구조적으로 취약하다. 곡물 수출국은 소수의 나라에 집중돼 있고, 국제 곡물 유통도 소수의 초국적 농기업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곡물의 수출에서 상위 3대 국가가 차지하는 비중을 살펴보면 콩 90%대, 옥수수 70%대, 밀 60%대에 이른다. 여기에 더해서 곡물 교역량의 60% 이상을 4대 곡물 메이저 기업(ADM, Bunge, Cargil, LDC)이 점유하고 있다. 

곡물자급률이 20.3%에 불과한 한국의 상황에서 식량의 안정적인 확보를 의미하는 식량안보(food security)는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탈세계화 시대에 우리의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식량안보’가 밥상의 불안을 일으키게 된 역사를 살펴봐야만 한다.

농산물 무역자유화는 자급력 회복 어렵게 하고
높은 화학비료 의존으로 기후위기 주요인이 돼


지난 50여 년을 되돌아볼 때, 세계는 1972~1973년, 2007~2008년 등의 식량위기와 함께 농산물 과잉도 경험했다. 농산물 과잉생산 문제에 직면한 국가들은 농산물 자유무역을 강조하면서 농산물 수출시장 확보에 주력해 왔다.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식량안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급할 수 있는 능력이지만, 자급력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기도 전에 자유로운 무역을 통해서 식량을 확보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논리가 세계화의 흐름 속에 힘을 발휘하게 됐다. 이로 인해 식량안보는 농산물을 수출하는 국가의 논리와 세계화를 옹호하는 논리로 사용됐다.

현실의 식량안보가 세계화와 동전의 양면을 이루게 되면서, 농산물 무역자유화에 반대하는 것은 국수주의자들의 속 좁은 주장으로 치부됐다. 농산물 수입이라는 거대한 맷돌 안에 들어가면 식량수입국은 자급력을 회복하기 어렵고 더 많은 수입에 의존하는 매우 불안정한 구조가 된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자유무역에 기반한 식량안보라는 최면에 빠져들었다. 이는 40년 사이에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이 3분의 1 수준으로 추락한 것으로도 확인된다(2020년 20.3%).

식량안보의 위력은 이코노미스트 임팩트(Economist Impact)가 발표하는 세계식량안보지수(global food security index)에서도 확인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언론 뿐만 아니라 연구보고서에서도 자주 인용되는 지수다. 이 지수에 의하면 2021년 한국의 순위는 세계 32위로 코로나19가 엄습하기 전인 2019년 29위에서 소폭 하락했다.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싱가포르의 지수다. 2019년 싱가포르의 순위는 놀랍게도 1위였다. 식량자급률 10%에 불과한 도시국가 싱가포르가 1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농산물 수입자유화와 높은 구매력 덕이었다. 그런데 2021년에는 15위로 내려앉았다. 자급력에 바탕을 두지 않은 식량안보는 허울에 불과하다는 점이 이 지수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왜곡된 식량안보에 기반한 농산물 자유무역의 확대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했다. 농업이 기후위기의 가해자로도 등장하게 된 것이다. 과거에 농업은 생태계의 유지와 사회적 회복력의 원천이었으나, 대규모 기업농이 늘어나면서 높은 화학비료 투입에 의존하는 체제로 변화됐다. 온난화의 주범에 공장식 축산이 자리를 잡고, 이들 축산은 사료곡물에 의해서 유지되고, 그 사료곡물의 생산은 식량작물의 생산과 경합을 벌이면서 화학비료에 더욱 의존하는 체계가 됐다. 

기후위기에 큰 영향을 미치는 질소질 비료의 사용량이 농산물 수출국을 중심으로 급격하게 늘어났다. 우크라이나는 230% 증가했고, 러시아 90%, 브라질 150%, 아르헨티나 140%, 인도 80%, 호주도 40% 증가했다. 세계화된 농산물시장이 기후위기를 초래하는 주요인으로 지목되기에 이른 것이다.

우리나라 쌀 제외 식량자급률 10.2%…
밀, 콩 등 재배면적 확대하고 직불금 적극 활용해야


사실 ‘세계화된 농식품체계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주장은 농산물 자유무역의 확산과 맞물려서 다양한 층위에서 제기됐다. 특히 2007~2008년 식량위기는 ‘값싼 먹거리 시대의 종언(the end of cheap food era)’을 고한 큰 사건으로 기록됐고 이를 계기로 유엔 등에서는 농업과 먹거리를 지키는 것은 초국적 농기업이 아닌 소규모 가족농이라는 점을 천명한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도 농식품체계의 전환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문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2014년을 ‘가족농의 해’로, 2019~2028년을 ‘가족농 10년’으로 선포하는 등 식량의 안정적인 생산에서 가족농의 역할을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세계적으로 확산됐다. 

더욱이 2018년 12월 유엔 총회에서 ‘식량주권’을 주요 축으로 하는 ‘농민과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선언’이 채택되기에 이르렀다. 이런 일련의 흐름은 규모화·화학화·단작화에 기반한 기업농체계가 아닌 지역의 농민이 주도하는 농식품체계를 강조하고 있다. 지난해 9월 뉴욕에서 개최된 ‘식량시스템 정상회의’를 주도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우리는 지금까지 먹거리의 가치를 평가하던 방식을 재고해야 한다. 하나의 거래 상품 종목으로 봐서는 안 되며, 인간 누구나 공유하는 하나의 기본권으로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무차별적 자유무역의 대상에 농산물이 포함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경고라고 할 수 있다. 

탈세계화 흐름과 함께 기후위기로 인해 세계화된 농식품체계의 한계가 명확해진 이상, 우리의 먹거리와 농업에 관한 정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식량주권의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국이 식량자급률 45.8%라도 지탱할 수 있는 것은 쌀 덕분인데, 쌀을 제외하면 식량자급률은 10.2%에 불과하다. 1980년대에 쌀을 수출했던 필리핀이 농업 보조금 삭감과 시장 방임으로 망가진 경험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 자급률이 낮은 밀이나 콩, 사료작물 등의 재배면적을 확대하면서 쌀의 자급력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계속 늘어나는 휴경지와 휴경률을 줄이기 위해서 직불금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새 정부의 국정과제에서 제시된 ‘식량주권의 확보와 농가경영안정 강화’가 대통령 공약인 5조 원 농업직불금과 서로를 보완해서 실천된다면 탈세계화·기후위기 시대에 우리의 농업과 먹거리를 지켜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지금 실천하지 않으면 이로 인해서 초래되는 희생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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