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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균형적인 과학기술 보호·협력 전략으로 기술주권 확립하자
백서인 과학기술정책연구원 과학기술외교정책연구단장 2022년 09월호


무역 마찰에서 시작된 미국과 중국의 충돌이 본격화하면서, 양국 간 전략경쟁은 첨단산업과 이를 구성하는 원천기술 영역에 집중되고 있다. 오랫동안 글로벌 패권국 지위를 유지해 온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혁신 강국 미국은 중국의 추격을 저지하고, 지속적인 과학기술혁신의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다.

2021년과 2022년 미국의 상·하원은 각각 ‘미국혁신경쟁법(US Innovation and Competition Act)’과 ‘미국경쟁법(America COMPETES Act of 2022)’을 발의해 미국의 과학연구를 지원하고 중국에 대한 견제조치를 대대적으로 강화하는 전략을 제시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 법안들이 각각 1945년 국립과학재단(NSF)에서 미국의 원천기초과학 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통령에게 보고했던 ‘과학, 끝없는 프론티어’의 내용과 2007년 부시 정부에서 미국의 과학·기술·교육 분야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발의했던 「미국경쟁법(America COMPETES Act of 2007」의 내용을 계승했다는 것이다. 

양원이 발의한 두 개의 법안은 결국 2,800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및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으로 조정돼 최종 통과됐는데, 원천기술과 첨단산업에 대한 강력한 지원정책과 함께 중국 견제를 위한 연구안보 심사 및 관리·감독 강화, 연방 인센티브 수혜 시 중국 내 공장 신설·증설 금지 등 다양한 보호조치도 함께 포함됐다. 

미국뿐 아니라 EU 역시 대외의존도 완화를 통해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신산업 전략과 ‘유럽 반도체 법안(European Chips Act)’을 발표하고, 임무지향형 과학연구 프로그램인 호라이즌 유럽(Horizon Europe)에서 비회원국의 참여를 제한하는 등 기술보호 기조를 강화하고 있다. 일본 역시 「경제 안전보장 추진법」 제정을 통해 핵심산업의 공급망 안정화와 전략기술의 비밀특허제도 도입 등 보다 강력한 기술보호조치를 도입하고 있다.

응용기술과 산업의 디커플링 현상 보이지만
기초연구 분야 국제협력은 여전히 활발


우리나라 역시 이러한 글로벌 추세에 맞게 「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제정해 첨단산업의 종합적인 육성과 보호조치를 법제화했으며, 연구·국방·산업에 걸친 광범위한 기술의 보호체계 고도화에 힘쓰고 있다. 이러한 글로벌 패러다임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현행 기술보호 전략을 고도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그에 앞서 우리가 처한 상황과 우리의 역량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네이처 인덱스에서 올해 발표한 글로벌 과학기술협력 현황을 보면, 여전히 미국과 중국은 가장 많은 과학기술협력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외에도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과 같은 주요 과학강국 간의 과학기술협력도 여전히 긴밀하게 일어나고 있다. 기관별로 살펴보면 중국과학원, 프랑스국립과학원, 독일의 막스플랑크연구소 등 각국을 대표하는 연구기관이 활발한 국제 과학기술협력의 중심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미국 스탠퍼드대 인간중심 AI연구소(Human-Centerd AI Institute)가 발표한 AI 분야 학술연구 국제협력 동향을 살펴보면, 미국과 중국 간의 공동연구는 최근 소폭 감소했지만 여전히 다른 국가 간의 협력을 크게 앞서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파이브 아이즈(Five Eyes, 미국·영국·호주·캐나다·뉴질랜드가 결성한 기밀 정보공유동맹)’ 동맹국인 영국과 호주는 최근 들어 미국보다 중국과 더 많은 AI 공동연구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와 출판의 시차를 고려하더라도 중국-영국, 중국-호주 간의 AI 공동연구가 가파르게 증가하는 데 비해 미국-영국, 미국-호주 간의 AI 공동연구는 정체되거나 일부 감소하는 추세다.

물론 이러한 결과는 학술연구와 기초연구 분야의 협력 현황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 응용기술과 산업의 디커플링 현상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AI의 경우 미중 간 개인정보 수집과 데이터 이동, 데이터 현지화 등의 규범은 매우 상이하고 양국 간 충돌로 인해 중국 기업의 미국 기업 투자, 중국 기업의 미국시장 상장 등이 사실상 어려워지고 있어 산업에서의 디커플링은 현실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기술과 산업의 원천이 되는 기초과학과 학술연구 분야에서 미국과 중국 그리고 주요국 간의 협력이 아직도 활발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점은 우리가 글로벌 패러다임 변화를 편향적으로 바라보는 것을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의미한다.

외국인 투자, 연구안보, 전략기술 지정보다 
보호할 만한 기술 확보·육성에 힘써야


한국은 현재 전 세계 10위의 경제 규모와 세계 5위의 R&D 투자 규모를 보유한 경제·과학 선진국으로 도약했고, 세계 최고의 메모리반도체, 이차전지, 디스플레이 기술역량을 갖춘 전략기술 강국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보호해야 할 기술이 많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이처럼 화려한 현실의 이면에는 공공의 투자 대비 저조한 과학기술 성과, 우수한 질적 성과 부재, 산학연관협력 및 국제협력 부족 등 수많은 해결과제가 산적해 있다.  ‘소수의 대기업을 제외하면 과연 우리나라의 혁신 주체 중 전 세계의 원천기술·첨단산업 생태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대학·연구기관·기업이 있는가?’를 고민해 본다면, 국가 차원에서 엄격하게 관리하고 보호해야 할 기술이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미래 핵심기술로 주목받고 있는 AI, 양자기술, 우주·항공 등의 영역에서 이와 같은 경향은 더욱 두드러진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재 다른 나라에서 추진되고 있는 다양한 기술보호제도 역시 우리의 현실에 맞지 않아 실효성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비밀특허제도의 경우, 내수시장이 작아 해외시장 진출이 필수적인 한국 기업에 실효적인 효과를 제공하기 어렵다. 또한 AI 등 대다수 디지털 기술의 알고리즘은 점점 오픈 소스화되고 있어, 비밀특허제도를 통해 보호할 수도 없고 더 정확히 말하면 보호할 필요도 없다.

지금 우리는 수출통제, 외국인 투자, 연구안보, 전략기술 지정보다 보호할 만한 기술을 더 많이 확보하고 육성해 내는 데 힘써야 한다. 이를 위해 급변하는 글로벌 규범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해 다양한 새로운 기술 협력·획득 기회를 창출해야 한다. 또한 미·중·EU·일 등에서 추진 중인 소모적인 기술보호 및 기술 역내화 정책이 결국 자원 낭비, 공급 과잉을 초래해 전 세계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저해한다는 것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원천기술과 과학연구에 대한 과도한 안보화와 정치화를 경계하고, 부당한 요구나 보복에 대해서도 보다 전략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기술보호와 기술협력은 공존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무수히 많은 영역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낳으며 혁신의 원천이 됐다. 특허제도와 국제 공동연구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의 지속 가능한 과학기술혁신을 위해서는 파괴적 견제와 맹목적 보호가 아닌 상호호혜적 협력과 건설적 경쟁을 가능케 하는 균형적인 기술보호 및 기술협력 전략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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