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 수년 동안의 확장적 재정기조에서 건전재정으로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재정준칙의 입법화를 공헌했고 미래세대의 부담을 경감하기 위한 제도 개편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 5년 동안 국가부채가 GDP 대비 비율로 보면 10%p 이상 증가한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재정준칙 실행을 통해 국가부채를 일정 수준 미만으로 유지함으로써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자는 것이 정부의 의도일 것이다.
이 시점에서 여러 가지 의문이 생길 것이다. 재정의 지속가능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왜 지속 가능한 재정을 지금 논의해야 하는가? 부채 수준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재정준칙을 실행하면 ‘재정의 유지가능성’이 확보될 수 있을까? 재정준칙의 실현가능성을 위협하는 요인은 무엇이며, 이러한 요인들을 관리하기 위해 어떠한 조치가 필요한 것인가?
재정의 지속성, 수급권 보장 프로그램 통한
정부지출의 증가 손보지 않고 논할 수 없어
엄밀한 의미에서 재정의 ‘지속가능성’ 혹은 ‘유지가능성’은 현행 제도하에서 계획하고 있는 현재와 미래의 정부지출을 현시점의 정부순자산과 현행 제도하에서 징수 가능한 현재와 미래의 조세수입으로 충당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재정의 유지가능성을 평가하는 데 정부부채를 일정 수준에서 통제하고 재정수지를 적절히 관리하는 것뿐만 아니라 미래의 정부 수입과 지출까지 고려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부지출의 구성이 현저히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재정지출액 중 수급권 보장 프로그램(entitle-ment program)의 비중이 현저히 증가하고 있다. 복지제도가 수급권 보장 프로그램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은 일정 요건을 충족한 사람에게 의무적으로 해당 급여를 지급하게 한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공적연금 가입자는 연금보험료를 납부한 기간과 연동해 일정 수준의 연금급여를 받을 수급권을 획득하며, 질병치료를 받은 국민건강보험 가입자에게는 건강보험 급여가 지급돼야 한다. 고용보험 가입자들은 실업 시 실업급여를 지급받을 수 있는 수급권을 보장받고 있다.
현행 제도는 이러한 수급권 보장 프로그램을 통해 미래시점의 정부지출액에 영향을 미친다. 현재 공적연금 제도 아래 축적된 공적연금 가입자들의 수급권은 미래 정부지출에 영향을 주며, 현재 건강보험제도가 인구 고령화와 결합해 미래의 정부지출 증가 요인이 된다. 인구 고령화가 현행 제도하에서 정부지출을 증가시키는 요인으로는 건강보험 이외에도 장기요양보험, 기초연금,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등 다수 존재한다. 한국의 고령화 진전 속도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높아 21세기 후반기가 되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고령화된 사회가 되므로 정부지출은 다른 나라보다 더 큰 폭으로 증가할 것이다.
재정의 유지가능성을 이렇게 이해하면 현시점의 국가부채와 재정수지를 기준으로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평가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보기 어렵다. 현시점의 국가부채 수준은 OECD 평균보다 상당히 낮지만,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현 정책을 그대로 유지할 경우 국가부채가 2040년에 GDP의 100%를 상회하고, 2050년에는 130.0%, 2060년에는 161.0%, 2070년에는 192.6%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국가부채의 증가는 현시점에 실현되지 않은 정부의 암묵적 부채, 즉 현행 제도를 지속하면 미래시점에 실현될 부채에 기인한다. 현행 제도가 그대로 유지되면 암묵적 부채는 현실의 국가부채로 실현된다는 것이다.
부채관리만으로는 재정유지 어려워
재정준칙 준수 못하게 할 위험요인 해결해야
정부가 재정준칙의 입법화를 통해 국가부채를 일정 수준으로 통제하고 이를 위해 재정수지와 재정지출을 관리하겠다는 정책방향은 그 나름 큰 의미가 있다. 국가부채가 과도하게 증가할 경우 경제성장을 저해하고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을 높이며 금융위기의 위험성을 높인다는 기존의 연구는 이와 관련해 중요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부채관리만으로는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가 충분하지 않다. 부채 수준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더라도 미래세대의 조세부담은 큰 폭으로 높아질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공적연금의 성숙으로 급여지출이 증가할 것이며, 인구의 고령화와 더불어 고령층에 대한 급여비중이 높은 각종 복지정책을 통한 지출이 증가하고 생산가능인구 감소로 정부수입은 감소하면서 재정수지가 악화될 것이다. 국가부채의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미래시점의 조세부담을 상향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이로 인해 미래세대의 조세부담이 가중될 것이다. 그리고 그 조세부담의 상향조정은 생각보다 일찍 이뤄질 수도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수급권 보장 프로그램이 적절하게 개편되지 못할 경우 재정준칙 준수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2022~2026년 중기 재정지출계획에 의하면 2026년까지 국가부채를 GDP의 60% 이내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재정지출 증가율을 연평균 4.6%로 제한해야 하는데 의무지출 증가율은 연평균 7.5%가 불가피하므로 재량지출 증가율을 연평균 1.5%로 제한해야 한다. 의무지출 증가요인을 일반행정비 증가, 지방재정 및 교육재정 교부금의 경직적 구조 등에서 찾고 있지만 머지않아 의무지출 항목에 더 큰 금액이 편입될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수급권 보장 프로그램을 통한 지출이다. 이들 지출의 증가가 본격화되면 재정준칙은 도저히 지킬 수 없는 의미 없는 규칙이 될 것이다.
재정준칙을 시행하고 있는 나라에서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지출통제의 범위를 재량적 지출과 수급권 보장 프로그램으로 규정하는 사례가 많은 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수급권 보장 프로그램을 지금 개편하지 않으면 앞으로 개편하기 더 어려워진다. 고령화로 인해 수급권 보장 프로그램 수혜자가 더 증가할 것이며 이들은 이 제도 개편의 저항세력이 될 것이다.
언젠가는 개편될 것이다. 그 언젠가는 언제인가? 제도가 거의 붕괴될 시점에 불가피하게 개편해야만 하는 때일 것이다. 이러한 개편을 한다고 하더라도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것이 재정의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한 근본적인 개편이 지금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