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당국은 지난 9월 13일 재정준칙안을 발표했다. 왜 재정당국은 스스로를 구속하는 준칙을 추진하려는 것일까?
우리나라의 재정은 국가신인도 유지와 경제위기 대응의 최후 보루로서 건전하게 운영돼 왔다. 그러나 최근 5년간 국가채무가 약 409조 원 늘어 올해는 1,069조 원에 달할 전망이고,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111조 원으로 만성적인 대규모 적자가 고착화돼 국제 신용평가사들의 우려와 재정여력 축소가 현실화되고 있다. 코로나19 대응 등으로 후퇴한 재정건전성을 신속히 회복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정부가 ‘건전재정 기조로의 전환’을 새로운 정책방향으로 제시하게 된 배경이다.
만성적 적자 고착되면서 재정여력 축소 현실화될 수도
재정당국은 「국가재정법」 제16조와 제18조에 규정된 ‘건전재정의 원칙’을 고려해 5년 단위 국가재정운용계획과 단년도 예산안을 편성해 왔다. 예산편성 과정에선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신규사업 재원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재정지출 증가를 억제했고, 국가재정운용계획은 5년간 지출규모를 엄격히 관리해 재정수지를 점차 개선하고, 국가채무를 안정화하도록 수립했다. 특히 국가재정운용계획은 지출규모를 엄격히 관리해 다음 해 예산편성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경제위기 후에는 그간 후퇴한 재정건전성 회복을 위해 필요한 5년간 구조조정 총량과 연도별 규모를 제시하는 등의 방식으로 건전성 유지에 기초를 제공해 왔다. 이러한 제도적 기반은 과거에는 효과적으로 작동했다. 그러나 최근 그 한계가 나타남에 따라 별도의 보완방안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대두됐다.
먼저 그 한계점을 살펴보자. 최근 들어 모든 일을 재정으로 해결하려는 재정만능주의와 교육재정교부금과 같이 상황 변화를 고려하지 않고 재정의 일정 부분을 성역화하는 재정봉토주의가 팽배하며, 전국 각 지역의 예산요구 급증 등으로 재정에 대한 정치적 압력이 꾸준히 증대됐다. 이러한 정치적 요인들은 국가재정운용계획 본연의 기능인 중기 건전성관리 기능을 심각하게 위협하게 됐다. 2019년 수립된 ‘2019~2023년 국가재정운용계획’부터는 중기 지출규모가 대폭 확대돼 재정수지가 계획기간인 5년간 더욱 악화되는 추세를 보이고, 국가채무는 중기적으로 안정적으로 관리되지 않고 계속 상승세를 보이게 돼 재정지출 총량관리 기능이 약화된 것이다.
앞으로도 우리나라는 복지제도가 점차 성숙해 가는 반면, 경제성장률은 점차 낮아지는 추세로 OECD, KDI 및 예산정책처 등이 모두 2060년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140%를 초과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어 재정당국은 총량을 관리하는 재정준칙 도입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게 된 것이다. 그간 준칙과 관련된 국회에서의 논의내용, 해외사례 및 전문가 의견수렴을 통해 수지준칙을 채택하고, 국가채무의 증가속도를 관리하는 데 중점을 두는 방안을 마련했다. 구체적으로는 관리재정수지를 GDP 대비 –3% 한도로 하되, 국가채무가 60%에 달하면 적자 폭을 –2%로 낮춰 보다 엄격하게 관리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관리재정수지 –3% 이내는 재정이 제 역할을 하면서도 긴장감을 갖고 지출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하는 수준으로 2019년 이전으로의 복귀를 의미하며, 만약 명목 GDP 성장률이 4~5%를 유지하면서 3%보다 낮은 수준의 적자를 내면 국가채무가 크게 증가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설정했다. 이러한 준칙안을 준수해 2023년 예산편성과 2022~2026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수립한 결과, 내년도 예산안은 24조 원 규모의 지출 구조조정을 추진해서 관리재정수지를 올해 –5.1%에서 –2.6%로 대폭 축소했고, 중기적으로도 2026년에 –2.2%로 안정화돼 결과적으로 2026년 국가채무는 52.2%로 2022년 49.7% 대비 소폭 증가하는 것으로 관리될 전망이다.
재정준칙 도입에 대한 가장 큰 우려는 취약계층에 대한 복지지출이 축소되거나 경제위기 시 재정의 탄력적 대응이 제한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핀란드는 재정적자 –1% 이내, 스웨덴은 재정흑자 1% 이상으로 우리나라보다 엄격한 준칙을 갖고 있음에도 모두 높은 수준의 복지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준칙이 복지지출의 축소를 초래하지는 않을 것이며, 준칙을 준수해 편성한 내년도 예산안도 취약계층 지원은 보다 촘촘히 계획한 바 있다.
재정준칙 도입해도 취약계층 지원 강화,
필요시 탄력적 대응 가능
경제위기 등 추경 편성 사유에 해당되는 경제·사회 충격에 대해서는 재정준칙 적용이 면제되는 예외조항도 함께 추진해 재정이 필요할 때는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경제위기 등 면제요인이 해소되면 즉시 준칙이 재적용되고 그간 후퇴된 재정을 정상화하기 위한 건전화 대책을 마련, 국가재정운용계획에 포함해 국회에 제출하도록 함으로써 탄력적 대응과 함께 보완대책도 마련했다. 아울러 경제·사회 상황이 급변한다는 점에서 준칙을 5년마다 다시 점검할 계획이다.
재정건전성을 담보하는 추가적인 방안으로 결산상 세계잉여금의 국가채무상환을 기존의 30% 이상에서 50% 이상으로 높이는 방안도 병행한다. 세계잉여금이 추경 편성의 재원으로 활용돼 왔기에 이러한 제도개선으로 추경 편성 시 국채발행 부담이 늘어남에 따라 보다 면밀한 검토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
재정준칙은 재정의 총량을 관리해서 궁극적으로 국가채무 증가 폭을 축소한다는 점에서 미래세대의 부담을 완화해 세대 간 정의 실현에 기여할 것이다. 동시에 재정 전반의 효과성 제고와 재정제도 개혁도 유도할 것이다. 재정사업은 우선순위가 높은 사업을 먼저 반영하므로 재정총량이 제한되면 보다 효과적인 사업에 재원이 우선적으로 배분돼 재정 전반의 생산성이 높아진다. 또한 재정준칙을 준수하기 위해 지출 구조조정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재정위험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재정개혁의 필요성이 부각되는 부수적 효과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정책목적이 제대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준칙의 구속력이 담보돼야만 한다. 이를 위해 재정준칙을 쉽게 바꿀 수 없도록 법에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올해 내에 법제화를 완료할 계획이다. 재정제도 역사에 큰 획을 긋는 재정준칙이 신속히 입법화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