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350개 공공기관 중 자산 2조 원 이상이거나 정부의 손실보전 조항이 있는 곳을 대상으로 중장기 재무관리계획을 작성하도록 하고 있다. 올해 39개 기관이 그 대상인데 이들이 전체 공공기관 부채의 90% 이상, 부채규모로는 633조 원을 차지한다. 8월 말 중앙정부 채무가 1,031조 원인 것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수준이다. 이는 전년 대비 82조 원 증가한 수치인데 한국전력공사(24조 원), 한국가스공사(11조 원)의 부채증가가 컸다. 연료가격 급등, 에너지 전환정책이 주요인이다. 2026년까지 부채규모는 705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39개 공공기관의 자산 대비 부채비율은 188%에 달한다. 전년의 162%에 비해 크게 상승했다. 민간기업의 경우 자산 대비 부채비율이 통상 100% 이하면 양호, 200% 이하면 보통, 200% 초과면 민간 신용평가사에서는 투자부적격으로 판정한다. 정부는 재무위험성이 높은 기관 14개(한국전력공사, 한국수력원자력, 5개 발전사, LH 한국토지주택공사, 한국철도공사, 한국지역난방공사, 한국가스공사, 한국석유공사, 한국광해광업공단, 대한석탄공사)를 선정해 특별관리하고 있다.
공공기관과 민간 간 경쟁으로
가격은 낮추고 서비스 질 높이는 노력 우선돼야
정부의 손실보전 조항이 있는 공공기관 부채는 결국 정부에 직접적인 부담이 된다. 명시적 조항이 없어도 공공기관은 사실상 정부보증을 받고 있다. 현재 공공기관은 심각한 부채에도 불구하고 정부재정을 배경으로 대부분 높은 신용등급을 받고 있다. 이자지급 부담이 커지면 결국 공공기관이 자본잠식에 이르게 되고 그러면 최근 광해광업공단 사례에서 보듯 정부의 증자를 초래하게 된다. 결국 공공기관 부채는 정부의 부담으로 귀착되고 궁극적으론 미래의 납세자에게 전가된다.
정부는 지난 8월 자산매각, 사업조정, 경영효율화, 자본확충 등을 골자로 한 ‘공공기관 재정건전화 방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방안은 기존의 빚을 줄일 수는 있으나 적자구조를 근본적으로 해소하지는 못한다. 비핵심사업 중단 정도로는 적자구조를 해소할 수 없으며 고유기능에 대한 수술이 필요하다. 공공기관 부채의 해결방향을 부채의 요인별로 알아보자.
첫째, 낮은 공공요금이다. 한전이 대표 사례다. 최근 전기요금을 조금 올렸지만 적자구조를 면하기엔 부족하다. 점진적으로 공공요금을 현실화해야 한다. 그래야 자원낭비도 막을 수 있다. 낮은 공공요금은 당장이야 환영받지만 결국 우리 후손에 부담을 지운다. 부유층까지 낮은 요금을 내게 할 필요 없이 보호가 필요한 취약계층은 에너지바우처 등을 통해 별도 지원하면 된다. 그러자면 공공요금 결정 시 정치적 영향력을 최소화하는 독립규제기관이 있어야 한다. 적극적으로 공공기관과 민간의 경쟁을 도입해 가격을 낮추고 서비스 질을 제고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전력판매시장이 그 예가 될 것이다.
둘째, 과도한 정책사업이다. 정부나 공공기관은 정책사업을 과도하게 확장하고자 한다. 자기 돈이 아니니 부담도 적고 사업을 키워야 조직과 예산이 늘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통령이 임기 내 성과를 다그치다 보면 정책사업은 과도해진다. 과거 광물자원공사는 독자적으로 해외진출을 추진하다 자본잠식에 빠져 지금은 광해광업공단으로 통합됐다. 4대강 사업도 과잉투자 사례다. 과도한 정책사업을 막는 방법 중 하나는 민간을 활용하는 것이다. 예컨대 광물개발은 민간이 주도하고 공공기관은 뒤에서 지원하는 것이 맞다. 정책금융 역시 OECD에서 가장 높은 수준으로 기업의 원활한 퇴출을 저해하는 요소다. 정책금융은 금융사에 대한 이차보전으로 대체하면 예산절감과 서비스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LH의 임대주택 역시 가격을 풀면서 민간을 시장에 참여시켜야 한다. 저소득층에게는 주택바우처를 확대하면 된다.
셋째, 기관의 높은 비용구조다. 예컨대 철도공사의 적자는 과도한 인력 등 높은 비용구조로 인한 책임이 다른 기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다. 철도공사가 독점공급자이니 이런 방만구조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향후 보다 강력한 경쟁체제 도입과 경영 효율화가 필요하다. 무궁화호, 새마을호의 적자노선은 정리해야 한다. 철도 노선이 닿지 않는 곳에는 정부가 다른 교통수단을 지원하면 된다. 공공기관의 비효율성은 주무부처와 공공기관 경영진, 노조가 담합한 결과다. 여기에 정치권은 지역구의 역 하나라도 없어질까 봐 철도공사의 비효율성을 묵인하고 있다.
정치적 영향력 최소화, 경쟁 촉진, 재정 활용으로
공공기관 부채 해소
공공기관 부채해결을 위해서는 공공요금 현실화, 과도한 정책사업 지양, 공공기관 경영효율화가 필요하다. 여기에 공통적인 3대 전략이 있다. 그것은 첫째, 정치적 영향력의 최소화다. 그래야 공공요금 독립규제기구를 통해 요금을 현실화하고, 과거 광물자원공사나 수자원공사의 사례에서 나타난 과도한 정책사업을 자제시키며, 주무부처-공공기관-노조 간 담합을 견제할 수 있다. 정치권의 바른 개입을 위해선 언론과 학자가 깨어 있어야 한다.
둘째, 경쟁 촉진이다. 공공기관 간 혹은 공공-민간 간 경쟁을 통해 공공기관 부채를 감축할 수 있다. 이는 전력판매 사례와 같이 공공요금도 낮추고 임대주택 경우처럼 정책사업의 비용도 절감하면서 철도공사 사례처럼 공공기관의 비효율성을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셋째, 재정 활용이다. 많은 공공기관 부채가 정부가 재정으로 할 사업을 공공기관 부채로 수행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정부는 낮은 공공요금 대신 에너지바우처를, 낮은 임대료 대신 주택바우처를, 적자역 운영 대신 대체교통수단을 제공해야 한다. 공공기관의 부채감축이 재정지출 증가로 대체되겠지만 그래야 재정의 책무성이 강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