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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통화긴축과 국제공조 파편화 속에 억눌린 회복
안성배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거시금융실장 2022년 12월호


코로나19 팬데믹의 위협에 적응하고 디지털 및 그린 산업 투자가 주도하는 ‘글로벌 대전환’이 2022년 세계경제를 장밋빛 전망으로 덮고 있을 무렵 유럽의 요충지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일어났다. 전염병 대응을 위한 격리와 봉쇄의 반복으로 매끄럽게 작동하는 글로벌 공급망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는데, 전쟁으로 부각된 국경의 엄중함이 공급망 분절화를 가속하며 회복탄력성 유지를 어렵게 하고 있다. 전쟁은 또한 원자재와 식량 자원 무기화를 자극해 물가상승 압력을 높였고, 전방위로 확산된 상품과 서비스 가격 인상으로 세계경제는 오랜만에 돌아온 높은 인플레이션을 마주하고 있다. 대중의 인플레이션 기대도 흔들리면서 주요국에서 통화긴축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저금리·저인플레이션 시대로 돌아가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지난 11월 발간한 ‘2023년 세계경제전망’을 통해 2023년 세계경제가 2.4%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성장률 전망치 3.1% 대비 0.7%p 하락한 수준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에 따른 부정적 영향, 글로벌 인플레이션 대응을 위한 주요국의 통화긴축 등이 세계경제 성장을 둔화시킬 것이라는 판단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2023년 세계경제는 ‘긴축과 파편화 속에 억눌린 회복’을 겪을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인플레이션 완화에 예상보다 시간 걸릴 경우
금리 급상승에 따른 개인 및 한계기업 부담 가중


‘긴축’과 관련해서는 인플레이션 대응으로 인한 통화긴축의 압박, 코로나19 팬데믹에 대응한 거대 재정지출 이후의 추가적인 재정여력 제약, 민감해진 시장 심리에 따른 정책의 의도하지 않은 부정적 효과 등에 주의해야 한다. 한편 ‘파편화’는 글로벌경제의 오랜 패러다임이었던 ‘세계화’ 반대 방향으로의 움직임을 의미한다. 코로나19 팬데믹과 미중 전략 경쟁으로 서서히 진행되던 글로벌 공급망의 분절화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지정학적 급변과 맞물리면서 국제공조가 파편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G20과 유엔 안보리에서의 갈등이 표출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다. 빠르고 단기적인 경기회복을 위해서는 각국의 확장적 정책 수행과 국제공조의 원활한 작동이 필요한데, 이러한 시도들에 제약이 가해지면서 회복이 억눌리고 지연되고 있다. 경제의 문제가 안보 문제와 결합되면서 해법을 찾는 것이 더욱 어려워지는 상황이다. 구체적으로 다음의 세 가지 리스크 요인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금리 급상승과 민간 부채 부담의 실물경기로의 전이다. 팬데믹 대응으로 공급된 막대한 유동성이 자산시장으로 유입되면서 정부뿐만 아니라 가계와 기업의 부채도 크게 확대됐다. 문제는 완화적 통화정책을 되돌리는 속도와 강도가 매우 빠른 상황에서 공급측 요인이 겹치며 실물 침체가 나타나는 데 있다. 현재의 높은 인플레이션이 잡히는 데 예상보다 시간이 더 오래 걸릴 경우 역자산 효과, 개인 및 한계기업의 어려움 가중, 금융 경색 등의 우려에 시달릴 수 있다. 

둘째, 재정 역할의 딜레마다. 지난 몇 년간 주요국들은 보건 및 경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재정지출 규모를 추세 대비 빠르게 늘렸다. 현재 각국 정부는 그간의 막대한 추가 지출과 높아진 금리로 예산 제약에 걸려 있는 경우가 많다. 재정건전화가 중요한 상황인데, 당면한 글로벌경제 상황이 매우 복잡하다. 최근 영국 정부의 행보는 이와 관련한 어려움을 보여주고 있다. 장기 성장 제고를 목표로 하겠다 하더라도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채 발표된 확장적 재정정책이 민감해진 시장의 기대에 어긋나면 위기의식이 빠르게 확산될 수 있다.

셋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전략 경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다. 중국의 WTO 가입과 동구권의 붕괴로 시작된 지난 30여 년간의 세계화 시대가 막을 내리고, 새로운 단절의 시대, 블록 간 경쟁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중국의 양안 문제나 최근의 북한 위협 등이 글로벌 리스크로 전이될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선제적 지침의 합리적 운용 통해 중앙은행 신뢰성 유지하고
중기적 재정건전화와 함께 미래 성장동력에 대한 투자 필요


이러한 때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회복 지연으로 민감해진 시장에 대응한 정책 조합이다. 통화정책에는 물가안정과 금융안정 사이의 절묘한 균형이 필요하다. 원자재·식품 등 비근원 부문의 물가 압력이 인플레이션 기대를 흔들고 근원물가로 전방위 확산되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 최근의 높은 인플레이션은 40년 만의 일이라 이에 대응한 정책 경험이 당국과 대중에게 체화돼 있지 않다. 높은 인플레이션이 지속된다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시장을 통한 자원 배분에 왜곡을 가져올 수도 있다. 통화긴축 상황에서 선제적 지침(포워드 가이던스)의 합리적 운용을 통해 중앙은행의 신뢰성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다만 팬데믹 기간 급증한 민간 부문 부채가 금리 상승에 따라 부실화할 가능성이 높은데,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되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 

재정정책에서는 중기적 재정건전화를 추구하되, 취약층에 대한 선별적 지원과 미래 성장동력에 대한 투자가 지속돼야 할 것이다. 재정건전성 확보에 대한 시장 심리가 민감한 상황에서 시장의 기대에 합치하는 재정운용으로 금융경색의 가능성을 방지해야 한다.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생산성 향상을 위해 인적·물적 인프라 구축 지원이 필요하다. 

한편 안정적 공급망 구축을 위한 대내외적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지정학적 갈등과 파편화로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전망되고 있다. 민간 부문의 적응이 필요해 서서히 진행될 것이나, 안보와 관련한 일부 첨단기술 분야에서는 급격한 변화가 발생할 수 있다. 원천기술과 원자재의 안정적 확보를 위한 공급망 구축에 민관 합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변화하는 국제경제 환경은 큰 불확실성을 만들어내고 있다. 다만 이러한 변화와 불확실성이 우리 경제에만 제한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관행이 장기 성장 동력을 훼손하지 않는지 빠르게 검토하고 적응해 나가는 과정에서 경쟁력을 다시 확보할 수 있다. 긴축과 파편화 속에 ‘글로벌 대전환’이 다소 지체되고 있지만, 우리 경제가 가진 단단한 제조업 기반은 향후 복잡한 국제경제 관계에서도 변함없는 강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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