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세계경제는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의 ‘삼고(三高)’로 진통을 겪었다. 삼고의 원인은 단연 미국의 고물가다. 2022년 6월 미국의 소비자물가가 전년 동월에 비해 9.1%나 상승했다. 1981년 11월 9.6% 상승 이후 40년 4개월 만에 최고치였다. 물가가 이렇게 오르니 미국 연준은 금리를 과감하게 인상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의 금리 상승은 달러화 가치 상승을 초래했다.
삼고 현상이 어떻게 해소될 것인가? 미국의 실질금리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실질금리란 명목금리에서 물가상승률을 뺀 것으로 플러스 상태가 정상이다. 명목금리가 물가상승률보다 높아야 가계가 저축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의 10년 국채수익률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차감한 실질금리가 2019년 8월부터 마이너스로 돌아섰고, 2022년 3월에는 -6.4%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극히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수요 위축, 통화공급 둔화, 유가 하락, 금리인상 등으로
물가상승률 상당 폭 낮아질 전망
실질금리가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명목금리가 상승하거나 물가상승률이 낮아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금리가 오르고 있다. 2020년 3월 0.54%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던 미국의 10년 국채수익률이 2022년 10월에는 4.24%까지 상승했다. 그런데도 실질금리는 10월 기준 –3.8%로 아직도 큰 폭의 마이너스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금리가 더 올라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미국 금리는 이미 적정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 미국의 10년 국채수익률은 장기적으로 명목 GDP 성장률과 유사한 추이를 보였다. 실제로 1970~2021년 연평균 국채수익률은 6.1%로, 같은 기간 연평균 명목 GDP 성장률 6.2%와 거의 같은 수준이었다.
미국 의회 추정에 따르면 2022년 미국의 잠재 명목 성장률은 4% 정도다. 국채수익률의 적정 수준이 4% 정도일 것이라는 이야기인데, 10월 들어서 4.24%까지 상승했다. 그러나 아직도 실질금리는 큰 폭의 마이너스 상태에 머물고 있다. 실질금리가 플러스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물가상승률이 낮아져야 한다. 물가상승률이 4% 이하로 떨어져야 실질금리가 플러스로 전환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22년 6월 9.1%를 정점으로 꺾이고 있지만, 10월 상승률도 7.7%로 떨어지는 속도는 매우 완만하다. 그러나 2023년에는 물가상승률이 상당 폭 낮아질 전망이다. 그 이유를 네 가지 측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첫째, 수요가 위축되고 있다. 코로나19로 2020년 2분기에는 실제 GDP가 미국 의회가 추정한 잠재 GDP에 비해 10.4%나 밑으로 떨어졌다. 즉 GDP 갭률이 마이너스 10.4%였던 것이다. 그 이후 정책 당국의 과감한 재정 및 통화 정책으로 경기가 빠른 속도로 회복돼 2021년 4분기GDP 갭률은 플러스 0.5%를 기록했다. 그러나 2022년 들어 GDP 갭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지난 11월 블룸버그 컨센서스에 따르면 2023년 미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0.4%다. 이 경우 2023년에는 GDP 갭률이 -3% 정도로 확대된다. 수요 측면에서 물가상승 압력이 사라질 것이라는 이야기다.
둘째, 통화가 적정 수준보다 덜 공급되고 있다. 연준은 코로나19에 따른 극심한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서 통화공급을 크게 늘렸다. 2020년 2분기에서 2021년 1분기 사이에는 실제 광의통화(M2) 증가율이 피셔 방정식에 따른 적정 통화증가율(실질 GDP 성장률+물가상승률)보다 25.7%p나 높았다. 그러나 2022년 1분기에는 M2 증가율이 적정 수준보다 낮아졌고 3분기에는 –6.4%p로 마이너스 폭이 더 커졌다. 이러한 통화공급 변화가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5분기 정도 선행했다. 연준의 급격한 통화정책의 방향 전환은 물가상승률을 낮출 것이다.
셋째, 원자재 가격 특히 유가가 하락하고 있다. 2021년 배럴당 67.9달러(연평균)였던 서부텍사스산(WTI) 원유 가격이 2022년 6월에는 120달러를 넘어섰다. 그러나 그 이후 유가가 급락하면서 9월에는 일시적으로 80달러 밑으로 떨어졌다. 2000년 1월에서 2022년 9월 통계를 분석해 보면 유가상승률이 물가상승률에 1개월 선행(상관계수 0.77)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3년에도 유가는 하향 안정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세계경제가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넷째, 금리인상은 시차를 두고 소비와 물가상승률 하락 요인으로 작용했다. 2010년 이후 통계로 분석해 보면 금리가 상승했을 때 소비가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그 효과는 1년 후에 가장 컸다. 물가상승률도 금리인상 이후 3개월 후부터 낮아졌으며, 역시 1년 정도 시차를 두고 그 영향이 가장 크게 나타났다. 2022년 3월부터 연준이 금리를 급격하게 인상하고 있는데, 그 효과가 2023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제 남은 문제는 물가상승률 둔화 속도다. 지난 11월 블룸버그 컨센서스에 따르면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23년 1분기에 5.9%로 낮아지고, 4분기에는 3.0%로 떨어진다. 물가에 선행하는 주가가 크게 하락하는 것을 보면 그 속도가 더 빨라질 수도 있다.
연준의 금리인상 사이클은 마무리될 것으로 보여
연준은 물가를 잡기 위해 2022년 2월 0.00~0.25%인 연방기금금리를 11월에는 3.75~4.00%까지 급격하게 인상했다. 그러나 머지않아 금리인상 사이클이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결정할 때 참고하는 지표 가운데 하나가 ‘테일러 준칙’이다. 이는 실제와 잠재 GDP 차이와 실제와 목표 물가상승률 차이를 참조해 적정금리 수준을 결정하는 방법이다. 필자가 추정해 보면 적정금리 수준이 2022년 2분기부터 계속 낮아지고 있다. GDP 갭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서고 물가상승률도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통계를 보면 테일러 준칙으로 추정한 적정금리 수준이 낮아질 때 연준은 금리인상을 중단했거나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2022년 들어 10월까지 주요 선진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지수는 18% 정도 급등했다. 달러화 가치가 이처럼 상승한 이유는 연준의 급격한 금리인상에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 현상도 달러화 가치 상승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달러화 가치 상승세가 지나치다. 국제결제은행(BIS)이 매월 발표하는 주요국의 실질실효환율에 따르면 달러화 가치는 2022년 10월 34%나 과대평가됐다. BIS가 이 지표를 작성해서 발표하기 시작한 2000년 이후 최고치다. 미국의 물가상승률이 낮아지면 연준이 금리인상을 멈출 것인데, 그때 가서는 과대평가된 달러화 가치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물가상승률 둔화로 금리도 낮아지고 달러화 가치도 하락하면서 ‘삼고’가 마무리될 것이다. 그러나 물가상승률 하락은 수요 위축에 따른 경기침체를 동반한다. 2023년 미국을 포함한 글로벌경제의 화두는 인플레이션보다 경기침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