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가 코로나19 팬데믹의 충격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2023년도에는 좀 더 안정적인 회복과 성장세가 기대됐으나, 올해 2월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급등, 물가 상승에 따른 미국발 금리 급등 등이 일어나며 장기 불황에 대한 우려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IMF는 지난 10월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서 내년도 세계경제 성장률을 지난 4월 전망치보다 0.9%p 낮아진 2.7%로 전망했다. 특히 IMF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직접적인 영향으로 유럽경제가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해 내년도 유럽지역 전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9%에서 0.6%로 1.3%p 하향조정했다.
이 중 유로존 국가들은 2.3%에서 0.5%로, 북유럽 4개국(덴마크,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웨덴)은 2.4%에서 0.9%로, 영국은 1.2%에서 0.3%로 각각 내년도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크게 낮아졌다. 유럽지역 선진국만큼 급격하지는 않지만 유럽 개도국 역시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1.0%에서 0.5%로 0.5%p 하향조정됐다.
독일·이탈리아, 에너지 집약 산업에 큰 타격 받으며
역성장할 것으로 전망돼
무엇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유럽경제가 에너지, 물가, 금리의 트리플 충격에서 벗어나기란 당분간 쉽지 않아 보인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원전과 석탄 비중을 줄이는 에너지전환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한 결과 유럽의 에너지믹스 가운데 천연가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25%에 달한다. 문제는 천연가스의 러시아 수입 의존도도 꾸준히 증가해 2020년 약 43.4%에 달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는 것이다. 서방 국가들의 대러시아 경제제재와 그에 따른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 중단은 에너지 가격 급등을 야기했고 무엇보다 천연가스의 러시아 수입 의존도가 절대적인 유럽경제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천연가스 수급 불안정에 따른 전기요금 급등과 산업용 전력 사용 차질은 결국 기업의 생산비용 증가와 수익성 악화로 이어져 특히 에너지 집약도가 높은 산업군에 큰 타격을 입힐 것으로 보인다. 유럽 국가들 중에서도 독일과 이탈리아의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가 높아 이들 국가의 철강·금속·화학 등 에너지 집약 산업이 크게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이에 따라 IMF는 독일의 내년도 경제성장률을 올해 초 대비 3%p 하향조정한 –0.3%, 이탈리아는 1.9%p 하향조정한 –0.2%로 전망했다. 유럽의 가스 재고 수준이 당장 이번 겨울을 지낼 만큼은 충분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글로벌 에너지 기업 및 애널리스트들은 유럽의 에너지 위기가 재고 소진과 더불어 내년에 더욱 심화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EU는 러시아산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을 서두르고 있지만 대체시점까지 단기적으로는 에너지 위기에 따른 경기위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 위기에 따른 에너지 가격 급등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확장적 재정·통화 정책과 결부돼 물가 상승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유럽의 소비자물가지수 전망치도 크게 상향조정됐는데, IMF 전망에 따르면 올해는 15.1%, 내년엔 10.6%의 물가상승률이 예상된다. 이는 올해 초 전망치에 비해 각각 2.7%p, 3.1%p 상승한 수치다. 이 중 유로존 국가들은 5.7%, 북유럽 국가들은 5.8%, 영국은 9.0%의 내년도 물가상승률이 전망되는데, 특히 유럽 개도국은 올해 30.6%, 내년 20.7%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예상되고 있다.
여기에 에너지 가격과 더불어 식료품 가격이 급등해 유럽 곳곳에서 생활고로 인한 시위가 확산되는 등 정치적 불안요인까지 가중돼 제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높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미국을 중심으로 한 각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 인상을 통한 통화긴축 정책을 가속화하는 가운데 유럽중앙은행(ECB) 역시 지난 7월 11년 만에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0.5%p 올린 데 이어 9월에는 사상 처음 기준금리를 0.75%p 인상하는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했다. 그럼에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꺾이지 않자 지난 10월 두 번 연속 자이언트 스텝을 밟음으로써 유로존의 기준금리는 2%까지 올랐다.
이러한 금리인상 기조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ECB는 물가상승률이 목표치인 2%로 복귀할 때까지 단계적인 금리인상을 예고하고 있어 단기적으로 유럽의 경기둔화는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에너지 위기, 높은 인플레이션과 기준금리 급등까지 겹치면서 유럽 내 수요는 다른 어떤 지역보다도 크게 위축돼 기업의 경영활동을 더욱 악화시키는 악순환이 지속되는 상황이다. 이는 제조업을 중심으로 견고한 실물경제를 자랑하는 유럽 최대 경제국 독일에도 큰 파장을 미쳐 유로존 국가 중에서 독일이 내년에 가장 큰 역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변수가 유럽경제 변동성에 직결
에너지, 물가, 금리의 트리플 충격으로 내년 세계경제 상황은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크며, 특히 유럽경제는 이미 침체에 빠졌다는 의견이 다수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아직 종식되지 않았으며, 미중 패권경쟁 및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 등으로 글로벌 불확실성이 가중되면서 세계경제 특히 유럽경제의 단기적인 경기침체는 불가피해 보인다.
높은 에너지 비용, 경직된 금융시장, 전 세계적 불황 등이 상호작용하면서 유럽 내 낮은 경제성장률과 높은 인플레이션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러한 전망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이 핵심요인으로 고려된다. IMF의 세계경제전망 보고서 전망치들 역시 서방 국가들의 대러시아 경제제재가 지속되면서 내년에도 러시아로부터의 천연가스 공급이 중단(이전 수준의 15% 정도만 공급)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된다는 가정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전쟁 종식 등으로 이러한 기본 가정에 변화가 생기면 내년도 세계경제 전망치 역시 상향조정될 수 있는데,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는 유럽경제 상황은 다른 어떤 지역보다 크게 개선될 수 있는 여지 또한 남아 있다. 이러한 실질적인 변화가 아니더라도 제반 정부 정책에 따라 경제 상황은 나아질 수 있다. 성공적인 정부 정책 방향의 핵심은 결국 어떻게 경제 내 불확실성을 제거 또는 감소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불확실성하의 투자이론 등 제반 고전적 경제이론들은 이미 다른 어떤 정책변수보다도 경제 내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것이 경제 성과 개선에 가장 효과적일 수 있음을 설명한다. 기업의 투자결정 및 생산활동이 다른 어떤 요인들보다 불확실성에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이는 소비자 수요에서도 마찬가지다. 세계경제의 불확실성 제거와 글로벌 경기침체 탈피를 위한 국제사회의 연대와 정책적 공조가 중요한 시점이다.